IMS Travel _ 샬롬(Shalom)!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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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지중해지역원 Hit 3,024 Hits Date 23-01-02 17:22Content
샬롬(Shalom)! 이스라엘
전지은(지중해지역원 차세대연구원, jje08@naver.com)
2022년 8월까지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의 지원을 받아 석사학위 현지조사를 위해 이스라엘에 다녀왔다. 이스라엘에 머문 기간은 대략 3주 정도였다. 논문연구 이외 시간을 활용해 이스라엘 곳곳을 여행하였다. 특히, 아브라함 종교라 불리는 3대 유일신교의 성지 예루살렘 여행이 가장 인상이 깊었는데,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록 글재주는 없지만, 당시 3주간의 여정을 더듬으면서 여행객의 입장으로 이스라엘 여행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유대교의 성지 : 통곡의 벽(Western Wall)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는 통곡의 벽(Western Wall)이다. 기원후 70년 성전이 파괴되고 유일하게 남은 서쪽의 성벽이 지금의 통곡의 벽이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유대인들이 날마다 벽 앞에서 통곡하며 기도한다고 하여 ‘통곡의 벽’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통곡의 벽에 도착했을 당시, 실제 전통 복식을 입은 수많은 유대인이 벽 앞에서 통곡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유대인들의 기도내용은 주로 자기 민족을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리는 내용과 성전의 회복을 담고 있었다. 통곡의 벽은 남자 구역과 여자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나도 여자 구역으로 들어간 뒤 이 땅에 평화를 위해 기도하였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만 해도 통곡의 벽은 단순히 고대에 세워진 건축물의 잔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은 24시간 기도소리가 끊어지지 않는 기도의 뜰이었다. 유대인들은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집중하면서 뜨겁게 기도했다. 누구는 기도문을 중얼거리면서, 울면서, 몸을 흔들면서 그리고 소리를 치면서 기도에만 오로지 집중하였다.
정통주의 유대인 그리고 세속주의 유대인
이스라엘에서 만난 유대인들은 나에게 두 종류로 나뉘었다. 종교심이 깊은 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다. 예루살렘에서 만난 유대인들은 대부분 전통 의복을 입었는데, 8월 그 더운 날에도 긴소매의 흰 와이셔츠와 검은색 겉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거리를 다니면 전통 옷을 입은 30대 커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주로 유모차를 끌고 2~3명의 자녀와 동행하였으며, 남자아이는 대부분 유대 전통 복장 중 하나인 키파 모자를 쓰고 있었다. 호스텔 주인의 말에 따르면 자녀가 어릴 때 유대교의 신앙을 심어주기 위해 가족끼리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많이 온다고 했다.
반면, 텔아비브는 예루살렘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텔아비브는 이스라엘의 수도 이자, 유대인과 아랍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많이 거주하는 국제도시이다. 텔아비브의 다문화적 성격 때문인지 예루살렘처럼 전통 의상을 입은 유대인을 만나지 못하였다. 내가 텔아비브에서 만난 대부분 유대인은 유대교를 하나의 전통으로 간주할 뿐 율법적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유대인도 있었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도 적었다. 유대인이라면 종교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민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속화된 유대인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텔아비브에서 이탈리아계 유대인 가정집에서 머물었다. 그들은 5년 전에 이스라엘로 이주했기 때문에 히브리어가 이탈리아어만큼 유창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정에서 쓰는 언어는 이탈리아어였으며 음식도 이탈리아 요리를 먹었다. 유대인과 함께 지낸다는 느낌보다 이탈리아 가정집에서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고등학교 3학년인 딸 쉬엘(Shirel)의 친구들이 집에 자주 놀러 왔다. 10명의 아이들이 일주일에 2~3번 놀러 와서 나와도 새벽까지 수다를 떨고 갔다. 대부분 동유럽, 구소련 연방, 북아프리카, 터키 등 다양한 문화의 이민 배경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밤새 유대인의 이민 역사, 한국인이 생각한 유대인의 선입견, 유대인이 생각한 한국의 모습들, K-POP, 북한과의 관계 등 오랫동안 다양한 주제로 수다를 떨었다. 그중에는 BTS를 너무 좋아해서 한국어 공부를 독학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림 3 키파를 쓴 남자아이>
<그림 4 이탈리아계 유대인 가정과 함께한 안식일 저녁 식사>
유대인을 실제 만나기 전에 나는 책과 미디어를 통해 학습된 유대인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유대인은 선민사상으로 인해 자기 민족이 우월하다고 느끼는 민족주의에 따라 타 문화권에 대한 배타성을 갖고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실제 보고 느낀 유대인 내부사회는 다문화 사회였다.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아 친해진 한 유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유대 사회는 다양한 문화권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시끄러운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즉, 밤마다 모여서 수다를 떠는 것이다. 나도 유대인 가정집에서 지낼 때 쉬엘의 친구들을 보면서 체험했기 때문에 크게 공감했다. 쉬엘의 친구들도 지중해 전역의 배경을 가진 이민 2~3세이었으며 생김새도 각기 달랐다. 유대인 내부사회가 다문화 사회라는 점을 확인하고, 이후 관련된 주제를 연구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기독교의 성지 : 갈보리(Calvary), 감란산(Mount of Olives), 마가 다락방(Cenacle)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성지를 꼽으라 하면 단연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이다. 성묘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당하고 죽은지 3일 후에 부활했다는 곳이다. 과거 이곳의 지명은 갈보리(Calvary)로 불렸는데, 한국어로는 ‘골고다’로 불리며 뜻은 해골이다. 당시 이곳은 범죄자의 사형이 집행된 곳이기 때문에 ‘해골’을 의미한 것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 30분 정도 대기해야 했다. 대부분 사람은 줄을 기다리면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기도했다. 특히 내 앞줄에 보이스카우트로 보이는 청년들이 줄지어서 성경을 읽고 기도에 집중하는 모습에 놀라웠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관리하는 사제들의 태도였다. 가톨릭 사제들이 하루에 1~2번 성물을 돌면서 의식을 치를 때마다 관광객들에게 무서운 얼굴로 조용히 하라고 외쳤다. 앉아서 쉬고 있는 관광객들에게는 일어서라고 강요했는데, 이는 굉장히 불쾌감을 주었다.
기독교인에게 중요한 성지로 알려진 감란산(Mount of Olives)과 마가 다락방(Cenacle)에도 다녀왔다. 감란산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한 이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설교를 주시고 승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감란산에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자신이 보낼 성령을 기다리고 하였다. 성령이란 기독교 언어로 성삼위 중의 하나인 하나님의 영을 뜻한다. 당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은 지명 수배 중이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계속 지내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제자들은 마가라는 제자의 다락방에서 숨어지냈었다. 그리고 10일 뒤 약속된 성령을 받아 전도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감란산을 등반하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으로 알려진 장소에 도착하였다. 생각만큼 감란산은 높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마가 다락방은 감란산에서 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마가 다락방에 도착했을 때 많은 기독교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처럼 성령을 받기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림 6 감란산>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혈통인 기독교인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기념품점에 들렀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가게였는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즉,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였다. 일반적으로 유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메시아닉 쥬를 유대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부부는 3대째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는 가문이면서 동시에 유대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사장님은 자신이 목사이며 가게 위층 예배당도 보여줬다. 사장님은 히브리어로 성경을 보여주었는데, 이 성경은 예수가 유대인이 기다려온 메시아이자 그리스도라는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다. 몇 년 전에는 이 예배당에서 한국인 목회자가 설교를 했다고 전했다.
나는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한 식당에 들렀다. 식당의 사장님은 팔레스타인이자 가톨릭 신자였다. 식당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갔다는 길로 유명한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길목에 위치해 있었고, 식당 사장님은 나에게 이 길에 대한 스토리를 설명해주셨다. 한국에서 온 내게 아랍 커피를 서비스로 주시면서, 팔레스타인으로서 그리고 가톨릭 신자로서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살아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기독교의 성지 방문과 메시아닉 쥬와의 만남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던 또 하나의 선입견이 극복되었다. 바로 인종이 곧 종교를 대변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여행하기 전까지 내게 유대인은 유대교인이고 팔레스타인은 이슬람교인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유대인 혈통의 기독교인도 있었고 팔레스타인 중에서도 기독교인이 있었다. 비록, 종교·정치적 이념 아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갈등 상황에 놓여 있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기독교라는 같은 종교와 이념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슬람교의 성지 : 황금 돔 사원(Dome of the Rock)
황금 돔 사원(Dome of the Rock)은 이슬람교의 중요한 성지로, 기원후 691년 우마이야 왕조 때 만들어졌다. 무슬림은 이 황금 돔에서 신의 천지창조가 시작되었고 최초의 인간 아담이 생명을 얻었다고 믿는다. 특히, 이곳에서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승천하였다고 하여 성스러운 공간으로 여겨진다. 황금 돔 사원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는데, 화려하고 정교한 문양과 선명한 색감들이 황금 바위의 성스러움을 더해주었다. 아쉬운 점은 다른 성지와 달리 시간적 물리적 제한이 있었다는 것이다. 황금 돔 사원은 월~목 오전 시간만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었다. 심지어 사원 내부는 무슬림에만 허용되었기 때문에 나는 들어갈 수 없었다. 아쉽게도 황금 돔 사원 주위만 서성거리다 돌아왔다.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상생 : 베들레헴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베들레헴이다. 베들레헴 지역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이기 때문에 주로 무슬림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지역과 다르게 무슬림의 정시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야외 시장에서도 무슬림 의복과 히잡을 싸게 팔았는데, 나도 기념품으로 히잡 2개를 구매했다.
역설적이게도 베들레헴에는 기독교의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지역으로 예수 탄생 기념교회(Church of Nativity)가 위치한다. 그래서 베들레헴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주로 기독교인들이다. 내가 베들레헴에 도착하자마자 팔레스타인 택시 기사님들은 서로 싼 값에 예수 탄생 기념교회까지 태워줄 테니 자신의 택시를 타라고 끈질기게 따라왔다. 택시를 타서도 기사님은 저렴한 값으로 베들레헴과 성경의 유명한 지역을 투어 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어느 관광지와 여행지를 가면 겪는 일이지만, 무슬림이 대다수인 이 지역의 경제가 기독교인을 대상의 관광 수익으로 경제가 유지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종교가 경제적인 수단으로 사용된 예시라고 생각되었다. 특히, 크리스마스 날에는 예수 그리스도 탄생 기념을 위해 크고 화려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진다고 한다. 아잔 소리가 크게 퍼지는 울려 퍼지는 공간에서 가장 화려하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곳은 아마 베들레헴 지역이 유일할 것이다.
<그림 8 베들레헴 야외 시장>
이스라엘 여행을 마치며
이스라엘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세 유일신교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국가이다. 따라서 유일신 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스라엘 여행을 적극 추천한다. 이스라엘 여행을 통하여, 아브라함 시대부터 지금까지 뿌리내려진 유일신 숭배의 종교적 이념을 보다 사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유대교인의 성지, 통곡의 벽을 방문하면서 유대교의 역사와 정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 이스라엘에는 종교 원칙주의인 유대인과 세속주의인 유대인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기독교인의 성지인 성묘교회, 감란산, 그리고 마가다락방을 방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과의 만남도 흥미로웠다. 마지막은, 무슬림의 성지인 바위의 돔을 방문하고 팔레스타인의 서안지구를 다녀왔다. 팔레스타인의 현지 삶과 유대인의 삶을 대조적으로 비교하면서 이들의 내전과 갈등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이 세 종교의 현 상황은 평화보다는 갈등과 분리로 인식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종교와 인종은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즉, 내부사회 안에서는 종교와 인종을 넘어 문화적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젊은 유대인들의 세속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중에도 기독교인이 적지 않았다. 하루빨리 세 유일신교가 평화와 공존으로 나아가길 바라며 이스라엘 여행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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