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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S Culture _ 유럽 지성과 아프리카의 만남, 시디 부 사이드(Sidi Bou S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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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235 조회 날짜 19-05-3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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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유럽 지성과 아프리카의 만남, 시디 부 사이드(Sidi Bou Said)



박은지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튀니지안 블루(Tunisian blue)


시디 부 사이드(Sidi Bou Said)는 하늘과 땅과 바다가 하나가 되는 곳이다. 지중해와 맞닿은 이곳은 ‘튀니지안 블루’라는 색을 탄생시켰을 정도로 빛이 맑다. 파란 하늘, 파란 바다, 파란 대문이 어우러지는 삼청(三靑)의 마을이 튀니지의 지중해변 언덕 위로 펼쳐진다. 특히 파란 대문을 머금은 하얀 집들이 눈에 띈다. 아래로 카르타고 만과 투니스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눈부시게 흰 땅 위로 외벽을 하얗게 칠한 집집마다 청색에 흰색을 섞은 '튀니지안 블루'로 대문과 창들을 장식해 마치 그림 같다. 한 편의 화폭을 연상케 하는 지중해 정경이 따사로운 햇살과 어우러진다. 이 곳은 튀니지 내 최고의 관광지로 손꼽히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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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안 블루’: 파란 하늘, 파란 바다, 파란 대문> 


마을 이름인 시디 부 사이드는 서부 아랍국가에서 성자나 전도사 등 권위있는 남성을 부르는 존칭인 시디(sidi)와 마을을 의미하는 부(Bou), 12세기 마을에 거주하였던 유명한 이슬람 종교인인 아부 사이드(Abou Said)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명칭이다. 그의 시신이 이곳에 안치되어 있으며 그를 기원하는 이슬람 사원 역시 지어져 있다. 순례자들이 이 곳의 아름다움에 취해 성지로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자 돌로 변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부코르닌 산의 봉우리가 마을 어디에서나 보일 수 있도록 우뚝 솟아있다. 이렇듯 산과 바다, 하늘과 땅이 조화된 가운데 마을의 파란 대문에 저마다 달려있는 문고리들은 초승달, 첨탑, 별 등의 회교 전통 문양이다. 지극히 다양하고 장식미 넘치는 이 문고리들만으로도 사진집 한 권은 족히 나올듯한 이 곳 명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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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슬람 문양의 문고리 장식> 


그렇다고 이 마을이 이슬람적 색채로만 일관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튀니지안 블루’의 색채는 프랑스 화가이자 음악가였던 루돌프 데를랑게르(Rudolph d’Erlanger)에 의해 1920년 즈음에 시작된 것이다. 원래 이슬람에서 파란색은 ‘재앙, 고통’ 등을 의미하여 거의 사용되지 않던 색이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으로 인해 ‘튀니지안 블루’ 또는 ‘시디 부 사이드 블루’라고 불릴 정도로 이곳의 대표적인 색이 되었다. 이후 데를랑게르는 프랑스에서의 삶을 접은 채, 이 곳에 자신의 별장을 짓고 평생 아랍 음악과 미술에 심취한 일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를 받아들인 이 작은 마을의 명당자리에는 데를랑게르의 저택이 아직도 자리하고 있어서 손님들을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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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귀화한 데를랑게르의 저택: 오늘날 갤러리, 레스토랑, 노천카페를 겸하고 있다> 


튀니지는 이러한 면에서 열린 나라이다. 여느 이슬람 국가와 달리 다른 종교와 문화를 포용하는 등 일상의 종교적 규율이 그리 엄하지 않다. 이슬람을 국교로 채택한 나라이지만 이슬람 근본주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국부(國父) 부르기바는 1956년 프랑스의 73년 식민통치를 끝내고 건국하자마자 일부다처제와 히잡 의무화를 폐지했다. 수도 튀니스는 '북아프리카의 파리'라 할 만큼 서구적이고, '튀니스의 샹젤리제' 부르기바 대로엔 한껏 멋을 낸 여성들이 활보한다. 온건한 외교노선과 적극적인 경제개방을 통하여 이룩한 성과는 튀니지인들의 민심에도 반영되는 듯 하다. 아랍족과 베르베르족 혼혈이 대다수인 이 곳 사람들은 그래서인지 이방인을 살갑게 받아들인다. 이래서 튀니지를 가리켜 "머리는 유럽에, 가슴은 아랍에, 발은 아프리카에"라고 하는 모양이다.


카페 드 나트(Café de Nattes)


시디 부 사이드는 튀니지 문화의 개방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은 마을은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아프리카 내부에 존재하는 유럽 예술가 촌이었다. 유럽으로부터 이주해 온 예술가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거나 거쳐간 문화접변의 메카인 곳이다. 현재 이태리 미술가 사로 로 튀르코(Saro Lo Turco)가 이곳에서 작업실과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다. 전형적인 비좁은 골목길에 얼기설기 지어진 듯한 그의 집에서는 흐릿한 잉크와 파스텔 톤으로 채워진 튀르코의 작품들이 전시되는 중이다. 시디 부 사이드는 화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켜 온 매혹의 대상이기도 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걸친 기간 동안 유럽에서 온 화가들과 문인들로 넘쳐났다. 

인상파 화가인 파울 클레(Paul Klee)는 튀니지에서 진정한 색의 의미를 발견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단조로운 흑갈색에 갇혀있던 그의 그림은 시디 부 사이드를 거치며 빛과 색채의 향연에 의존하는 인상주의 화법으로 거듭나게 되었음은 사실이다. “색채가 항상 나를 지배하고 있다. 지금 행복한 시간을 누리는 것은 색채와 내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는 그의 유명한 말이 바로 이 곳에서 나왔다. 클레를 비롯하여 아우구스트 마케(August Macke), 이슬람 신자였던 프랑스 풍자만화가 귀스타브 앙리 조소(Gustave-Henri Jossot)등이 활동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유럽 화가들이 그토록 화폭에 담고 싶어했던 튀니지안 블루의 색감을 따라 올라가는 언덕 끝자락에는, 여기서 꼭 들러야 할 곳인 바로 카페 드 나뜨(Café des Nattes)가 있다. ‘nattes’는 프랑스어로 돗자리나 짚을 땋는다는 뜻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카페 내부는 대나무를 땋아 만든 돗자리가 정갈하게 깔려있다. 이 안에서 신을 벗고 마루에 벽을 기대고 앉아 작은 소반에 음료를 받아놓고 차를 마신다. 카페 드 나뜨는 이 마을 모스크의 첨탑 아래에 위치해 있다. 여기로 걸어 올라가는 22층의 하얀 계단은 아우구스트 마케의 유명한 그림 – 게다가 오늘날 시디 부 사이드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잡은 – ‘카페 드 나뜨’(1914)의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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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구스트 마케의 ‘카페 드 나뜨’>                                         <현재의 카페 드 나뜨>


이 카페는 유럽 지성의 보물상자를 열 듯 시종 놀랍고 다양한 마주침이 이어져왔다. 지드, 모파상, 카뮈, 클레, 콜레뜨, 생텍쥐페리, 드 보부아르 들이 민트차를 마시며 예술적 영감을 길어 올리던 곳이다. 지금도 이 곳에는 그들의 사인이 담긴 방명록이 남아 있다. 자주 드나들던 문인들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어서 이 시절을 증명해 주기도 한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시디 부 사이드로 향하는 발걸음을 끊이지 않게 하였을까. 예술가들이 왜 그토록 이 곳으로 몰려들었던 것인지 궁금하다면, 이 마을의 사랑방이자 북아프리카의 낭만으로 세계를 유혹했던 카페에 앉아서 찬찬히 음미해 볼 시간을 가져보아야 한다. 

일단 카페 드 나뜨의 내부는 기묘하고도 멋지다. 쿨하고 연한 지중해 색과 하렘을 연상시키는 짙은 탁색이 어우러지는 이 찻집은 그 색감만으로도 어딘가 비밀스럽고 데카당트한 데가 있다. 마치 돌로 만든 거대한 침대와도 같은 네 개의 무릎 높이쯤 되는 자리 위로 화려하고 난한 색들로 치장한 천장이 낮게 드리우고 있다. 각각의 침대는 네 개의 웅장한 돌기둥에 연결되며, 빨강과 진초록 색의 사선으로 칠해진 각 돌기둥의 줄무늬는 도발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시각적으로 어지럼증을 유발해 환각에 빠지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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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드 나뜨의 내부 전경> 


이 안에서 마치 19세기 아편굴의 실내장식과도 흡사한 내부에 앉은 채, 창 밖으로 펼쳐진 파란 대문의 향연과 지중해에 몇 분 간 눈을 담그고 있으면 저절로 영감이 떠오른다. 세상에 둘도 없는 유일한 카페 드 나뜨에서만 오직 가능한 일이다. 인류 문학사상 크게 이름을 떨친 작가들이 실제로 이 곳에서 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좁은 문』과 『이방인』을 각각 낳은 세계적 대문호 앙드레 지드와 알베르 카뮈가 이 카페를 자주 드나들며 영감을 얻었다.

누구보다도 카페 드 나뜨에 단골로 드나들었던 이를 찾는다면 바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일 것이다. 그의 철학은 광기와 성의 역사를 다루었지만, 푸코는 사랑하는 연인이 튀니지로 군입대를 배정받게 되자 그를 따라 프랑스 교수직을 버리고 튀니지 행을 결심할 만큼 낭만주의자이기도 했다. 제르바(Djerba) 섬에서 이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바다와의 경계에서 땅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면서 엽서 위에다가 『말과 사물』의 마지막 문장이 될 말을 휘갈겨 쓰게 되었던 것이다. 푸코는 1965년 인문과학고등교육원 부원장 임명이 좌절되자 미련 없이 튀니지로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튀니지 대학에서 가르쳤던 3년간 푸코는 투니스에서의 민주화 학생운동으로 위험에 처한 자신의 학생들을 숨겨주는 역할을 자처했다. 이들의 문서가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당시 시디 부 사이드에 있었던 자신의 저택 정원에 묻어놓은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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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드 나뜨 벽에 걸려있는 문인들 사진>


대표적인 메뉴인 ‘떼 오 피뇽’(thé aux pignons)의 맛과 향은 잊을 수가 없다. 이 곳 사람들은 이것을 주문해서 실내 혹은 발코니에서도 마신다. 끈적끈적할 정도로 달콤한 민트 차를 일컫는 ‘떼 오 피뇽’은 말 그대로 피뇽(불어로 땅콩을 뜻한다)이 둥둥 떠다니는 채로 차를 마시고 나면 나중에 땅콩이 입언저리에 맴돈다. 이걸 잘근잘근 씹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도 하고 사색에 빠지다 보면 무엇이 유럽인들을 그토록 북아프리카에 매혹을 느끼게끔 했는지 가늠해 볼 수도 있다.        


시디 부 사이드는 아프리카의 ‘몽마르트르 언덕’?


시디 부 사이드는 다만 도처에 이국적인 낙천성만이 가득할 뿐인 곳일까. 어쩌면 이것은 여행자의 피상적인 눈길로만 짚어보았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북아프리카의 역사를 뒤집어보면 조금은 다른 밑그림이 그려지기도 하는 것이다. 우선 19세기 말에 이르자 수도 투니스는 휴가를 즐기는 유럽인들이 파리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코스모폴리탄의 모습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서 불과 18km 떨어져 있는 시디 부 사이드는 수도인 투니스보다도 더 작고, 아귀자귀하고, 여기저기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한 곳으로서 이른바 튀니지의 ‘몽마르트르’가 되었다. 

굽어진 골목들에 계단이 많고 언저리 어디에선가 거리의 화가가 스케치를 하고 있을 법한 이 마을의 풍경은 아프리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몽마르트르적인, 식민지 종주국으로 한동안 다스렸던 프랑스의 정취가 분명히 스며있다. 그래서인지 영감을 갈망하는 유럽의 식자들이 그리 낯설지 않게 여기면서 이국의 자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신세계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이국을 지극히 유러피안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평가했던 오리엔탈리즘의 함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러하기에 과연 시디 부 사이드는 유럽 예술인들이 예술적 일탈을 경험하기 위해 한번쯤 거쳐가는 그들만의 은밀한 서식처였다. 문화의 접경지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아프리카와 유럽의 만남과 해후가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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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에게 친숙한 프랑스풍의 튀니지 건물들: 투니스 오페라 하우스와 개선문>


그러나 오늘날의 시디 부 사이드는, 몽마르트르의 현재가 그러하듯, 더 이상 자유를 찾는 예술가들이 숨어드는 비밀 따위는 없는 듯하다. 시내에 있는 거주지는 한눈에 봐도 부유한 튀니지인들의 동네임을 알 수 있는 저택과 고급 승용차들이 즐비해 있다. 실제로 이곳으로 경제성장으로 늘어난 신흥부자들이 유입되면서 정치인과 연예인들이 기사가 모는 검게 썬틴된 밴을 타고 출근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여기가 관광 상품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같은 관광객의 눈으로 보기에도 반드시 축복만은 아닌 듯 했다. 거리에 가지런히 깔려있는 조약돌 길은 몽마르트르의 골목처럼 단체 관광객의 물결로 쉴 틈이 없어 보였다. 

시야가 튀니지안 블루에 취해 현실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그림에 가깝다고 느낄 즈음에는 이미 여행을 접어야 할 때이다. 열대 붓꽃 부겐빌레아가 붉고 희고 노랗게 만발한 골목을 거슬러 내려온다. 유럽 지성을 꽃피게 한 아프리카의 샘, 시디 부 사이드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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