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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14,944 조회 날짜 22-07-0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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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의 성지가 존재하는 예루살렘 


박웅철 대사(국립외교원)



1.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예루살라임(יְרוּשָׁלַיִם), 아랍어로 알꾸드스(القدس), 영어는 제루살렘(Jerusalem)으로 불리는데, 히브리어는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이고, 아랍어인 알꾸드스는 “신성한 또는 거룩한”이라는 뜻이다.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계승하는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있는 도시인데, 유대교, 기독교와 이슬람교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 도시이기도 하다.

지구상의 인구가 2022년 5월 현재 약 79억명으로 알려진다. 이중에 기독교 인구가 2020년 기준으로 약 23.8억명, 이슬람교 인구가 19억명이고, 유대교 인구는 약 2,500만명이라고 하는데, 대충 약 43억명(세계 인구의 54.4%)이 예루살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예루살렘은 인구가 1천만 명이 넘는 대도시는 아니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중에 하나라고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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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의 예루살렘과 좌측 상단에 멀리 보이는 감람산)



2. 세계의 3대 유일신 종교들


앞서 언급했듯이 세계 3대 유일신 종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을 계승하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다. 유대교인 들은 유대교의 마지막 선지자가 BC 400년경에 활동했던 말라기 선지자였는데 2022년 6월 현재까지 하나님의 메시아가 세상에 오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유대교 이후에 등장한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아브라함의 종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유대 민족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이며 자손인 자신들 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는 예수가 유대교 성서 토라 및 예언서에 언급된 메시아로써 유대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의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왔는데, 십자가에서 죽고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부활해서 승천했다고 믿는다. 예수와 관련된 이 복음(예수의 죽음, 장사, 부활)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다. 또한, 기독교는 마지막 심판 날에 예수가 재림한다고 믿으며, 기독교 발생이후 약 600년이 지나서 등장한 이슬람교를 아브라함의 종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가장 나중에 등장한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졌던 유대교와 기독교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유대교는 하나님의 분노를 샀고, 기독교는 진리의 길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아브라함 종교의 마지막 선지자인 무함마드가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바로 세웠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유대 민족의 종교인 유대교가 제일 먼저 시작하여 가장 오래되었고, 그 다음에 기독교가 약 2,000년 전에 유대교를 세계적 종교로 발전시킴으로써 인류 역사에 큰 기여를 하였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조차도 보편적으로 AD(Anno Domini, 주의 해(年)와 BC(Before Christ, 예수 이전)로 기독교의 신인 예수 탄생을 중심으로 구분된다. 이슬람교는 AD 610년경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무함마드에 의해 창시되었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622년 메카에서의 핍박을 피해 현재의 메디나로 피신하는데 이 해가 이슬람력인 히즈라력의 기원이 된다. 



3. 유대교 관점에서의 예루살렘


유대교 관점에서 예루살렘을 살펴보려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연구해야 하는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구약 성경의 역사서 들에 근거한다. 예루살렘은 모세 선지자 다음의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예루살렘왕 아도니세덱 연합군을 쳐부수고 땅을 점령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영토가 되었다. 이것이 약 BC 1,400년 경의 사건이며 이후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땅 점령으로 예루살렘을 포함한 가나안 땅 대부분이 이스라엘 민족의 거주지가 된다. 여부스 부족의 도시였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민족이 사사기 시대 약 400년을 지나는 동안 주목받지 못한다.

BC 1,000년경에 이스라엘 통일왕국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두 번째 왕인 다윗 왕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정하고,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내 성전산(Temple Mount)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설하면서 예루살렘은 유대교인들의 성지가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종교적으로 1년에 최소한 3번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리는 절기 들을 지켜야 했다. 솔로몬의 성전은 솔로몬 왕이 BC 968년부터 BC 961년까지 7년에 걸쳐 완공했는데,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기원전 605-562년 재위)이 BC 586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의 성전과 왕궁을 모두 파괴하였으며, 유대 민족을 포로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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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기념 박물관에 있는 나팔절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제사를 드리려 모여드는 유대 민족을 그린 상상도)


바빌론 왕국을 무너뜨린 페르시아 왕국의 고레스 왕은 BC 538년에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왔던 유대 민족의 가나안 귀향을 허락했는데 유대 민족을 이끌고 귀향한 지도자인 스룹바벨이 약 20년간에 걸쳐 성전을 재건하고, BC 515년에 봉헌하였는데 제2차 성전이다. 솔로몬 성전에 비해 매우 초라했던 제2차 성전은 알렉산더 대왕이 BC 330년경 가나안 지역을 점령하고 헬레니즘을 정착시키면서 유대교 성전으로의 모습을 상실했다. 특히, 역사가들은 알렉산더 사후 시리아 지역을 통치하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성전 앞에 제우스 신 제단을 만들어 놓았고, 돼지들을 제물로 바치게 했으며 그 일들을 위해 배도한 제사장들을 사용했다고 전한다. 

헬라 제국을 멸망시킨 로마제국의 유대 지역 본붕왕이 된 헤롯은 유대 민족의 환심을 사기 위해 더럽혀진 성전을 46년간 보수했는데, 헤롯 성전이라고 알려진다. 헤롯 성전은 BC 20년에 착공하여 주요 건물들을 완공하기까지 18개월이 걸렸으며, 성전을 둘러싼 바깥 뜰은 AD 64년까지 건축이 진행되었다. 헤롯 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을 보강하고 확장하여 건축한 성전이므로 제3의 성전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유대 민족은 AD 66년 로마 제국의 식민통치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예루살렘 반란을 진압한 로마의 장군 티토 군에 의해 AD 70년 헤롯 성전이 파괴되었다. 2022년 6월 현재 통곡의 벽으로 유명한 벽은 과거 헤롯 성전 외벽의 일부다. 

결론적으로 예루살렘의 성전산은 유대교의 성전이 있었던 성지이며, 헤롯 성전 외벽의 일부였던 서쪽 벽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4. 기독교 관점에서의 예루살렘


기독교 관점에서 예루살렘은 예수가 AD 30~33년간 복음을 전파하다가 고난을 당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무덤에 묻혔다가 부활하여 승천한 장소이기 때문에 성지다. 기독교는 유대교의 성서인 구약도 믿기 때문에 성전산의 중요성도 인정은 하지만, 유대교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육신 형태인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예수의 행적을 더욱 중시한다. 

예루살렘은 AD 33년경 예수 승천이후 교회가 최초로 시작된 장소인데, 기독교는 초기부터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은 유대교 지도계급으로부터 박해와 탄압을 당했고,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를 거부함으로써 로마 제국에서도 박해와 탄압을 당하여 수많은 순교자가 발생했다. 

로마 제국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AD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발표함으로써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발표하고, 로마 제국에서의 기독교 박해와 탄압을 중단하였으며,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했다. 특히, 기독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지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모친인 헬레나 왕비는 AD 326년에 성지 예루살렘을 순례하였고, 예수의 발자취가 있는 곳에 예배당을 건설하였다. 예루살렘은 아니지만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교회, 예루살렘내 예수를 재판한 빌라도의 집,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걸어간 슬픔의 길(비아 돌로로싸, Via Dolorosa), 예수의 무덤이 있는 성묘교회, 감람산에 지어진 겟세마네교회, 승천교회 등 수많은 교회들이 예루살렘에 건설되어 현재까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헬레나 왕비의 지시로 예루살렘 이외 팔레스타인 전 지역에 예수의 흔적이 있는 곳에는 교회가 건설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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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고다 언덕과 예수의 무덤이 있는 성묘교회 입구, 성묘교회 정문의 열쇠는 무슬림 가족이 보관, 관리하고 있다.)



5. 이슬람 관점에서 예루살렘이 성지인 이유


이슬람교에서 최고의 성지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있는 카바 다. 전세계 모든 무슬림들은 카바를 향하여 기도하는데 전 세계 모든 이슬람 사원(모스크)에는 카바가 위치한 방향을 알려주는 미흐라브 가 있다. 무슬림들이 기도하는 방향을 끼블라라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카바를 둘러싸고 있는 모스크를 마쓰지드 알하람이라고 하는데 이슬람교의 최대 성스러운 모스크다. 두 번째로 성스러운 모스크는 메디나시에 있는 알마스지드 안나바위인데 선지자 무함마드의 무덤이 있다. 세 번째로 성스러운 모스크가 예루살렘에 있는 알아끄사 모스크다. 

선지자 무함마드가 제일 처음 메카 아라파트 동산에 있는 히라 동굴에서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았을 당시에 최초의 끼블라는 예루살렘 방향이었다. 최초의 무슬림들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다. 그러다가 선지자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다신론을 신봉하는 유력 부족들에게서 핍박을 받고, 그동안 메카에서 포교하여 함께 하게 된 무슬림들을 이끌고 메디나로 이주한다. 초기 무슬림들은 메디나에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선지자 무함마드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도방향을 메카로 바꾸라는 계시를 받아 기도방향을 메카로 바꾸게 된다. 이 계시를 기념하는 이슬람 사원이 사우디아라비아 메디나에 있는데, 2개의 끼블라를 가진 이슬람 사원이라고 불린다. 

이슬람교에서 예루살렘이 성지인 두 번째 이유는 선지자 무함마드의 천상여행 경험 때문이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이슬람을 선포한지 10년이 되는 해에 메카에서 예루살렘으로 알이쓰라아와 알미라쥐라는 여행을 떠난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천사 가브리엘의 인도로 알부라끄라는 말처럼 생긴 동물을 타고 하룻밤 사이에 메카에서 예루살렘의 알아끄사 모스크 를 방문하고,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 여러 선배 선지자들을 선도하여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선지자 무함마드는 알미라쥐라고 알려지는 일곱 하늘을 방문하는 경험을 한다. 그때 알부라끄라는 동물이 무함마드 선지자를 기다리면서 메어져 있던 벽이 통곡의 벽으로 알려지는 성전산 서쪽벽이다.

즉, 예루살렘이 이슬람교의 첫 번째 기도방향이었고, 무함마드 선지자가 알이쓰라아와 알미라쥐를 여행한 장소이기 때문에 알아끄사 모스크는 전세계 무슬림들에게 제3의 성지가 되었다.

2022년 현재 예루살렘 알하람 알샤리프 (유대교에서는 성전산)는 요르단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요르단 국왕은 성스러운 첫 번째 끼블라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성스러운 모스크 두 개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사용하는데 성스러운 모스크 두 개는 메카의 마스지드 알하람과 알마스지드 안나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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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알하람 알샤리프 동쪽 모습)



6. 종교적 분쟁지인 예루살렘


유대 민족의 남유다 왕국 수도로써 예루살렘은 지정학적인 중요성으로 전쟁이 잦았던 도시인데, 본격적인 종교적 분쟁은 이슬람교와 기독교 간의 전쟁부터라고 할 수 있다. 

메카에서 시작된 이슬람교는 지중해 연안을 따라 세력을 확장하는데, 이슬람교도들은 AD 638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한다. 11세기 초에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되찾고자 유럽에서 제1차 십자군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진군하여 AD 1099년 예루살렘에서 이슬람교 세력을 쫓아내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예루살렘 왕국을 건국했다. 이슬람교 제3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사이에 전쟁이 계속되었는데 예루살렘 왕국은 AD 1187년에 수도 예루살렘을 이슬람 군대 장군인 살라흐 앗 딘 아뷰브에게 다시 빼앗긴다. 이후에도 예루살렘관련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분쟁이 있었지만, 예루살렘은 1967년까지 이슬람 교도들의 통제하여 있었다. 

그런데 1세기 로마 제국에 반란을 일으키면서부터 전세계에 흩어져 박해 당하던 유대 민족이 20세기에 발생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군에게 약 600만명이 살해당하는 홀로코스트(쇼아) 대재앙을 당한다. 유대 민족의 국가 건국을 추구한 유대 민족의 시오니즘 운동 결과로 1948년 5월14일 팔레스타인 유대인 기구의 대통령 다비드 벤 구리온은 “에레츠 이스라엘에서 유대 국가를 수립하고 이스라엘 국가로 한다”고 선언했다.(위키디피아). AD 70년 예루살렘 멸망이후 약 2,000년 만에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가 설립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 국가 건국을 반대한 이슬람 아랍국가 군대와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이스라엘 독립전쟁), 1952년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 운하 전쟁),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 1973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을 치렀지만 전부 이스라엘군의 승리로 끝나고, 성전산 지역을 제외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정부의 통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국제연합은 1947년 11월 19일 유엔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채택하여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이전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는 아랍 민족을 위한 국가 건국을 지지하였고, 중동 전쟁이 있을 때 마다 안보리 결의안을 채택하여 팔레스타인 지역내 아랍 민족을 위한 국가 건국을 지지했다. 국제사회는 2국가 해결법(Two state solution)이라는 이스라엘-아랍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평화협상을 종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국을 희망하고 있는데, 예루살렘 지위와 관련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이견이 너무 커서 분쟁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간사회는 어디든지 극단주의자들이 있다. 유대교의 성지인 성전산을 차지하려는 유대교의 극단주의자들과 이슬람교 제3의 성지인 알하람 알샤리프를 수호하려는 무슬림 팔레스타인 극단주의자들간 충돌은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화약고라고 하겠다. 


7. 메시아(유대교), 예수의 재림(기독교) 또는 마하디(이슬람교) 사상


유대교는 2022년 6월 현재 메시아가 도래하지 않았으므로 메시아가 올 것을 믿고 있다. 기독교는 예수가 세상에 왔다가 죽고 부활하여 승천했는데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감람산(예루살렘의 올리브산)으로 다시 올 것을 믿고 있다. 이슬람교는 예수를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선지자로 인정한다. 그래서 인류의 마지막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마지막 선지자 무함마드가 아닌 예수가 이 세상에 마하디로 다시 올 것을 믿고 있다. 3대 유일신 종교의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누군가를 보내신다면 또는 혹시 직접 오신다면 3대 유일신 종교를 믿는 신자들은 각각 자기들이 믿음이 옳았다고 주장할 것 같다. 유대교인들은 드디어 메시아가 왔다고,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재림했다고, 이슬람교도들은 예수가 마하디 자격으로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고 하면서 3대 유일신 종교 간에 분쟁이 발생할 것 같은데, 진실은 하나님만이 아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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