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공존을 위한 ‘타자(他者)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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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공존을 위한 ‘타자(他者)의 가치’
김정하(지중해지역원)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위기는 있었다. 위기는 관계의 말(末)이면서 변천의 본(本)이기에 새로운 차원으로의 흐름은 필연이다. 변화의 순간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위기이고, 원했다면 기회이다. 이처럼 변화는 상대적이며 형성과 재구성의 순환을 이끌어낸다.
우리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공간을 공유하고 삶을 섞으며 함께 변화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 정지된 것은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글로벌화의 현실도 멀리 보면 이 역시 나름의 의미를 가지는 하나의 흐름이다.
글로벌 시대에 위기의식이 언급되는 이유는 이러한 흐름이 위기와 기회의 사이에서 변화의 양면(兩面)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동전의 어떤 측면이 노출되든 이는 관계를 전제할 때 가능하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유이며 역사의 사회성이 공존의 삶에서 시작되었다는 증거이다.
공존(共存)은 삶의 편리성이며 생존 그 자체이다. 서로의 삶을 타자(他者)에게 담보할 때 생존 확률은 높아진다. 이미 고대부터 모든 전투는 집단체제로 전개되었다. 페르시아의 대군도, 알렉산드로스의 팔랑크스도, 로마군대도 전투 시에는 동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방어와 공격을 서로에 의지하였다. 공존은 단순히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공유와 분배 그리고 필요와 이해관계의 유기적인 관계망이다. 소규모 문명권에 속하는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들에게도 생존의 원리는 공유와 분배의 경제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역사에서 자원은 누군가에 의해 독점될 때 항상 부족하였고, 공유될 때 풍요의 가능성을 제공하였다.
글로벌 시대에도 공유와 분배의 원리에 기초한 공존의 삶은 여전히 유효하며 기술적 전문성과 편리함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처럼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공존의 밝음에는 항상 그 이면의 어둠이 동반되었다. 상반(相反)의 공존성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균형의 저울추를 달리하면서 관계의 주체들에게 유불리(有不利)를 달리하였다. 현대는 변화의 시대로서 기회의 견해와 더불어 위기에 대한 평가가 교차한다. 후자의 인식이 지속적이고 보다 심각한 이유는 변화의 높은 속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공존을 위한 사회성’의 위기, 즉 ‘사회적 관계 그 자체의 붕괴’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사회성 위기는 공동체 내 모든 구성원이 집단성을 상실한 채 개별 존재의 단순 공존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현대사회의 변천 과정에서 위기의식이 더 짙게 드리운 것은 사회적 (관계의) 동물인 우리가 ‘타자의 가치’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공존에 있어 타자의 가치는 곧 나의 가치이다. 타자와의 관계 상실은 나의 가치 망실(亡失)이며 사회성 해체(解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