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S Culture _ 할랄과 코셔 : 금기된 음식과 타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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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과 코셔 : 금기된 음식과 타자화
지중해지역원 김지수
한국인은 밥에 민감하다. “밥 먹었니?”로 안부를 묻고 “밥 한번 먹자”로 다음을 기약한다. 가족(家族)과 식구(食口)의 차이가 ‘한솥밥’을 먹는가의 여부라는 글을 보고 다시금 한국인들은 먹을 것에 진심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두 종교(이슬람, 유대교)는 모두 그 특유의 식사규율을 갖추었다. ‘할랄’과 ‘코셔’는 그 내용과 변화양상은 다르겠으나 각 종교의 교리에서 비롯된 식사규율이라는 공통점을 보인다. 우리만큼이나 이 오래된 종교들도 밥에 진심인걸까.
1. 할랄과 코셔의 정의 (할랄과 코셔 식품으로 인증받기 위해서는 (육류의 경우) 허용된 특정 동물을 종교적 율법에 따라 도축해야하는 등 구체적 기준이 있으나 본 글에서는 진행을 위해 각 용어의 개념만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할랄(Halal)은 아랍어로 ‘허락된’이라는 뜻으로,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지칭하는 용어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할랄이라는 개념이 아우르는 범위가 확장됨에 따라 오늘날에는 ‘무슬림이 소비하는 모든 것’, 혹은 나아가 ‘무슬림 친화적인 모든 상품’을 지칭한다. 현대 할랄은 식재료, 완성된 음식, 의약품, 화장품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며, 이슬람에 대한 조예가 깊은 개인의 의견에 의존했던 과거와 달리 공식인증기관을 통한 국가적 규모의 산업으로 확장되었다.
한편 코셔(Kosher)는 히브리어 ‘카쉬롯(Kashrut)’의 영어식 표현으로 할랄과 동일하게 ‘허락된, 적합한’ 음식을 뜻하는 용어이다. 할랄과는 달리 아직 음식산업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산업의 규모도 할랄과 비교했을 때 작은 편이다. 각 식재료의 인증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식재료 간 조합의 금기도 있어 조리 전후처리와 도구의 구분까지 신경써야 한다. 코셔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육류와 유제품을 함께 먹을 수 없다는 것이 있으며, 같은 날 섭취할 때는 6시간의 시차를 두어야 한다는 점이 있다.
https://create.vista.com/photos/kosher-food/?sort=popular
2. 할랄과 코셔의 기원
우리는 매체를 통해 ‘부정탄다’는 표현을 종종 접하고는 한다. ‘정(淨)’의 반댓말로 ‘깨끗하지 못하다’, ‘꺼림칙하거나 불길한 데가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가르는 기준은 다양하겠으나 신의 가르침을 온전히 수용하고 복종해야 하는 종교에서는 그 기원을 단정짓기 어렵다. 본 글에서는 이슬람과 유대교의 경전에 명시된 금기된 음식의 기원을 살피고자 한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암소의 장’에서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알라께서는 믿는자들에게 ‘인간 아닌 것에게 도살된 동물’, ‘동물의 피와 그 부설물’, ‘돼지고기’, ‘알라 이외의 신에게 바쳐진 동물’을 먹지 말 것을 명하셨다” (2:173)
비슷하게 유대교의 토라(구약성서)는 아래와 같이 명시한다.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레위기 11장 7-8절)”
두 경전에 의하면 부정한 음식(혹은 동물)의 대표적인 예시는 돼지인 듯 하다. 그러나그 근거가 발굽이 갈라졌고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 명확하지는 않아, 오늘날까지도 학자들은 여러 이론을 제시한다.
본 글에서는 두 종교 모두 ‘허락’보다는 ‘금지’를 강조했다는 점을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먹어도 되는 것보다는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강조하고자 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종교적 관점에서 쓰인 이론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3. 할랄과 코셔 : 금기와 타자화
음식규율에 대한 대표적 이론은 각 종교에서 신도와 비신도 (믿는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하기 위해 음식규율을 지정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슬람보다는 유대교의 경우에 도드라지며 그 역사는 유다왕국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니엘이 네부카드네자르 왕(성경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으로 등장한다)이 내린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은 것(다니엘서 1장 8절)은 그 음식 자체가 유해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비유대인이었던 왕이 내린 음식을 먹음으로써 종교적으로 더럽혀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음식을 ‘먹었다’는 행위가 내포하는 (종교적) 타락의 의미가 크다는 것은 음식이 사회적 계급을 가르는 척도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여러 왕국(제국)의 지배를 거치며 유대민족은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구해야 했다. 그리스어를 구사하고 그리스 연회에 참석하는 사람을 당대 엘리트로 간주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미개인(Babarian)으로 취급한 것처럼 유대인들은 같은 규율(식문화)을 공유한 사람(유대인 : jewish)과 그렇지 못한 사람(비유대인 : gentile)을 구분했다. 과거 유대인들에게 음식규율(금기)은 그들 종교의 신성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타자(비유대인)를 구분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istockphoto.com/vector/profiles-with-islamic-and-jewish-symbols-gm91334028-8386252
이슬람 역시 금기된 음식과 식사규율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생태학적 요인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슬람이 출현한 아라비아반도는 대표적인 사막기후로 돼지의 주 먹이와 인간의 주식이 곡물로 겹치기 때문에 돼지를 사육하는 것이 인간 생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는 무슬림이 추후 점령한 지역의 원주민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돼지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을 때 사회의 혼란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는데, 기존의 식단에 돼지고기가 주재료가 아니었고, 환경적으로 사육하기에 적합했던 염소나 양이 금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음식규율에서 유대교의 타자화는 이슬람의 타자화보다 조금 더 엄격한데, 이슬람의 경우 유대인이 도축/생산한 음식을 할랄로 간주하지만, 유대교는 무슬림이 만든 음식을 코셔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러하다. 데이비드 프라이덴라이크(David M. Freidenreich)는 그 이유를 각 종교가 서로를 인식하는 방식에서 찾는다. (원문에서는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를 모두 포함하였으나 본 글에서는 설명을 위해 자료의 일부를 표로 제작하였다. (Freidenreich. 2011. Foreigners and their Foo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결론적으로 이슬람에서는 음식규율을 정립할 때 생존적 요인을 주로 간주했던 반면, 유대교에서는 민족의 단결성과 종교의 신성성 유지를 위한 타자화가 필요했기 때문이고, 그것은 유대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를 타자화하여 인식하는 사고방식에 기인했다는 것이다.
4. 나가며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 당시 식사규율에 대한 유대인의 의견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전통적인 유대인들은 식사규율을 복종의 의미로 따라야 하며, 신의 뜻은 인간으로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개방적인 유대인들은 헬레니즘적 사고방식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여 사회에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음식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인 동시에 종교를 붙들고 삶을 버텨왔다. 두 요소가 모두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느 한쪽도 놓으라는 말이 쉽지 않다. 그러나 과거를 보냈던 사람들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타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타인을 배척하는 일이 나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필자에게 할랄과 코셔는 단순한 음식규율보다 이슬람과 유대교가 어떻게 세상과 타인을 인식하는지 비추는 프리즘에 가깝다. 유구한 역사와 교리를 갖춘 종교들이 끝없는 타자화와 그 경계에 갇히지 않고 2023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안식처와 지혜를 제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