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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지중해지역원 Hit 6,071 Hits Date 19-05-2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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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백색도시 - 알바이신, 알푸하라스 그리고 프리힐리아나 

A White City in Mediterranean - Albaicin, Las Alpujarras and Frigiliana 



김종현 _ 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지역원 HK차세대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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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이신에서 내려다 본 그라나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은 지중해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뜨겁고 정열적인 것을 떠올리게 한다. 열광적인 토마토 축제와 광적인 투우경기가 바로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에는 이러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너무나도 고요하고 그 고요함에 취해 시에스타를 즐기는 모습을 가진 곳들이 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알바이신, 알푸하라스 그리고 프리힐리아나를 소개한다.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의 쎈뜨로(중심지)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알바이신지구가 있다. 알함브라가 가진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을 마주하고 높은 언덕까지 하얀 색 집들이 옹기종이 모여있다. 알함브라의 야경을 보기 위해 오르는 많은 관광객들로 늘 붐비지만, 알바이신지구 속으로 점점 들어가다 보면 고요하면서도 슬픈 정적이 흐르는 느낌에 지나가는 여행객까지 그런 슬픔의 이유를 궁금해하게 한다. 알바이신은 언덕에 위치 해 있어 빠른 시간 안에 둘러보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좋다. 누에바 광장에서 알바이신 언덕이 보이는 쪽으로 가다 보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 그곳에서 31번이나 34번 미니버스를 타면 되는데, 가격은 1유로다. 미니 버스에서는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탑승 후 버스기사에게 내려야 할 곳을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좋다. 알함브라의 전경을 잘 보려면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내려서 전경을 보고 그 뒤로 사방으로 뻗은 골목길을 따라 아랍 마을을 느껴보는 것이 좋다. 알바이신은 대낮에도 사람들이 많지 않아 혼자서 다니다 보면 소매치기들에게 소지품을 도난 당할 수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오전에 알함브라를 관람한 후 오후 해가 질 무렵 알바이신으로 향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시간 대에 함께 올라간다면 여유롭고 한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알바이신을 올라가는 길에는 아랍목욕탕이나 아랍의 기념품 가게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아 이 모든 것을 천천히 느끼기를 원한다면 버스보다는 걸어서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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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이신 전경>

<알바이신에서 바라본 알함브라>


콜럼버스가 새로운 문화를 가진 대륙을 발견했던 1492년, 이 곳 그라나다에서는 또 다른 문화가 밀려나 지중해를 건너가고 있었다. 이슬람이 스페인까지 밀고 들어와 스페인에 이슬람 문화를 꽃피우던 때에, 이곳 그라나다에서는 스페인의 페르난도왕과 이사벨여왕이 가톨릭 국가의 재건을 위해 힘을 쏟고 있었다. 그러던 1492년 이사벨여왕은 그라나다 왕국의 항복을 받는다. 이사벨여왕은 그라나다를 무력으로 장악하지 않고 1년을 넘게 기다렸고, 열세를 극복할 수 없었던 나스리왕조는 800년을 살아왔던 그라나다를 떠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라나다를 미쳐 떠나지 못한 소수의 이슬람 인들이 남아 지금의 알바이신지구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낯선 이들의 방문에도 자신들 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코란 읽는 소리 등이 그라나다가 가진 스페인 속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곳의 독특한 동굴 플라멩코를 보기위해 언덕을 오르던 중 만난 한 주민은 고향이 아랍국가 임에도 자신을 스페인 국민이라고 말했다. 알바이신의 사람들은 서로의 문화를 비교하며 우월성을 말하기 보다는, 이렇게 스페인의 국민으로, 지중해 속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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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과 마주하고 있는 알푸하라스의 카필레이라>   

 <카필레이라의 굴뚝>

 
그라나다를 빠져나와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가다 보면 저 멀리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마을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바로 팜파네이라-부비온-카필레이라로 구성된 '알푸하라스'라는 스페인의 또 다른 백색마을이다. 네바다 산맥의 한쪽에 위치한 알푸하라스는 알바이신지구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아랍인 마을이다. 발 밑에 깔린 구름을 보며 마을을 돌다 보면 하몬(스페인 전통음식 재료, 햄과 유사한 음식)을 둘러메고 가는 사람들, 언덕에서 풀을 뜯는 양떼들, 굴뚝으로 올라오는 하얀 연기가 화려한 유럽 국가들 속의 여유를 찾은 듯한 느낌을 가져온다. 이 여유로운 마을에 가려면 그라나다 버스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면 되는데, 가격은 왕복 10유로 정도다. 버스가 많지 않으니 아침 일찍 갔다가 오후 4시경에 돌아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알푸하라스를 간다면 가장 높이 위치해있는 카필레이라에서부터 내려오면서 부비온을 보고, 팜파네이라를 구경한 후 팜파네이라에서 돌아오는 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 그리고 부비온과 팜파네이라 사이의 거리는 꽤 먼 편이므로 꼭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좋다.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팜파네이라에서 유명한 알록달록 카펫을 구경하며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는 것도 알푸하라스 여행을 정리하는 좋은 방법이다. 세 마을을 여행하다 보면, 지붕위로 돌출된 각기 모양이 다른 굴뚝들이 인상적이다. 하늘로 솟은 여러 개의 굴뚝들은 마치 이문화, 이교도 할 것 없이 지중해의 하늘로 올라가서도 아름답게 살고 싶어하는 이곳 사람들의 염원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이뿐만이 아니라, 알푸하라스의 세 마을을 돌다 보면 소소한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대문의 형태인데, 카필레이라에는 대문이 없고 길게 늘어뜨린 발이 대문역할을 하고, 부비온에는 줄무늬를 수놓은 천이 대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카필레이라와 부비온의 창문도 특이하게 나무로 된 블라인드로 되어 있다. 창문도 그렇고 대문이 이렇게 허술하다보니 집안에서 들려오는 티비보는 소리, 식사준비하는 소리, 물소리, 귓속말 소리까지 지나가는 행인이 귀기울이게 한다. 이런 소소한 즐거움으로 걷다 보면 알푸하라스는 생각보다 작은 마을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 속에는 스페인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학교, 성당, 가게, 식당,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왜 이곳 사람들은 마을을 온통 하얗게 칠한 것일까. 밥짓는 냄새와 향신료 냄새로 가득한 알푸하라스의 좁은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백색 도시에 대한 의문이 더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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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푸하라스의 나무블라인드 장식>

지중해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지중해 바다' 일 것이다. 푸른 지중해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보면 '프리힐리아나'라는 눈부신 곳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지난 한 해 스페인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힌 프리힐리아나는 내가 방문한 마지막 백색도시이다. 하얗게 칠해진 도시들만 여행하다 보면 뭘 볼게 있을까 싶지만, 천천히 걷다 보면 그곳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백색도시에서는 화려하거나 소란스러운 모습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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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힐리아나의 집과 골목>

우리나라의 절로 가는 곱게 닦인 흙 길처럼 고요하고 넘쳐나는 햇살로 눈이 부실 뿐이다. 골목골목 카페에 앉아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하얀 담장위로 걸으며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는 여유롭고 느린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생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옛날 기독교인들이 넘어가고, 아랍인들이 넘어가며 흘린 피와 희생은 이제 벽에 붙은 타일에 한자한자 기록되어 있을 뿐, 백색도시에는 지금 고요함만이 흐르고 있다. 프리힐리아나는 알바이신, 알푸하라스와 달리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백색도시이다. 하지만 프리힐리아나 역시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어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네르하 버스정류장에서 프리힐리아나행 왕복 2유로짜리 버스를 타면 된다. 시간대는 많기 때문에 시간에 너무 쫓겨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 프리힐리아나는 다른 백색도시들 보다 조금 커서 볼 것이 많아 보이지만, 이곳 저곳 너무오래 있다 보면 새하얀 색깔에 취해 나중에는 질리고 지친다. 그러니 그저 발 닿는 곳으로 천천히 보고 들으면서 걸어 둘러보면 백색도시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리힐리아나 만을 보기 위해 이곳에 간다면 지중해의 낮과 밤의 모습을 놓칠 수도 있다. 시간이 된다면, 네르하에서 1박을 하면서 '지중해의 발코니'에도 발자국을 남겨보고 지중해의 바다 내음을 느끼며 프리힐리아나를 갔다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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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와 마주한 프리힐리아나의 전경>


이곳만의 특징이 있다면 파스텔 톤으로 색칠된 나무 대문들이다. 알푸하라스의 집들이 대부분 투박한 색깔의 발이나 천으로 되어있다면, 프리힐리아나는 색깔의 수를 샐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파스텔톤으로 색칠된 나무 대문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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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와 마주한 프리힐리아나의 전경>


프리힐리아나는 지중해의 뜨거운 햇빛을 반사시켜 집을 시원하게 하기 위해 집들을 하얗게 칠한 지중해 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곳이다. 마을 이곳 저곳에는 프리힐리아나가 흘러온 역사의 장면들이 타일화로 장식되어 있는데, 지중해 문화의 한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충돌'의 장면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벽화의 인물들은 781년에 걸친 이슬람의 이베리아 반도 지배를 종식시킨 1492년 레콘키스타 이후 강압에 못 이겨 기독교로 개종한 이슬람인들 즉, 모리스코(Morisco)이다. 갑작스런 추방령으로 모리스코들은 이렇게 스페인 각지로 흩어져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프리힐리아나에서는 약 500년 전, 문명을 회복하고자 모리스코들이 반란을 도모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모리스코들이 피를 흘렸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새하얀 프리힐리아나의 모습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500년이 흐르고 난 지금, 그 비참하고 비극적인 역사적 순간들이 새하얀 프리힐리아나의 벽을 따라 기록되어 있다. 고향가까이 가서도 배신자로 낙인 찍히고, 이국에서 불안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들의 과거 모습이 잠시 왔다 떠나는 여행객들을 서서 생각에 잠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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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텔톤으로 알록달록하게 채색된 프리힐리아나 집들의 대문>


어떤 이들은 스페인의 백색도시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백색으로 칠해져 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가톨릭의 순결을 나타내기 위해 백색으로 칠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을의 고요함과 적막함 속에서 그 어느 것도 정확한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뜨겁게 내리

쬐는 태양과 짙은 바다 향은 이슬람과 가톨릭에 의해 반복적으로 정복되어 온 이 땅에 끊임없는 충돌이 있었음을 말해주는듯 하다. 두 문화의 충돌로 만들어진 핏자국을 지우기 위해 스페인 백색도시의 사람들은 이렇게 새하얗게 칠하고 또 칠하고, 그렇게 인고의 나날을 살아오며 지금이 되어서야 우리에게 그들의 아픈 내면까지 내보이며 이제는 활짝 웃고 있는 것일까? 프리힐리아나의 새하얀 벽에 지는 해의 붉은색이 더욱 짙게 묻어난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 지중해의 태양과 같이 가장 번성한 나라가 되기 위해 수많은 충돌과 희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순고한 역사를 품고 스페인 백색도시의 사람들은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오늘도 지중해를 새하얗게 칠하고 또 칠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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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을 따라 타일에 기록된 프리힐리아나의 옛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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