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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S Travel _ 결국 먹고사는 일 : 말레이시아 국제할랄전시회(MIHAS)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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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1,994 조회 날짜 23-12-29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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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먹고사는 일 : 말레이시아 국제할랄전시회(MIHAS) 참가기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김지수



6월부터 9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장마도 작열하는 더위도 말레이시아에서 보냈다. 기온은 한국보다 조금 낮았지만 동남아시아 우기의 습도란! ‘쿠알라룸푸르 중심가(KLCC : Kuala Lumpur City Center)’는 사실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팜나무 농장을 지나고, 시내 중심도로 양 옆에 서 있는 인도풍 가로등 뒤로 자리잡은 색바랜 석회빛의 쿠알라룸푸르 기차역을 보면 비로소 18세기 영국문화가 뒤섞인 이국적인 동남아시아 어느 국가에 서 있는 실감이 난다. 지난 2020년 겨울에 건기를 보내고 올해 여름 우기를 보냈으니, 이리저리 짜맞추어 말레이시아에 ‘살아보았다’고 말해도 되려나, 생각해보았다.


말레이시아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이다. 민족적으로는 말레이계, 인도계, 중국계가 다수이고, 종교적으로는 이슬람, 힌두, 불교(도교)가 혼재한다. 그 중 무슬림 인구는 2023년 기준 말레이시아 전체인구의 63.5%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를 자처한 적 없다. 헌법에 명시된 “말레이시아의 종교는 이슬람이다”라는 구절이 사실상 이슬람 국가임을 선언한 것 아니냐는 꾸준한 이의에도 정부 관계자는 ‘국교 / 공식적 종교’ 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이슬람국가가 아니라고 답해왔다. 


비록 이슬람이 국교는 아니지만 인구의 60% 이상이 무슬림인 만큼 말레이시아는 전세계적으로 할랄산업의 선구자로 꼽힌다. 말레이시아는 종교적 관습에서 비롯된 ‘할랄’이라는 개념을 사업의 영역으로 가장 먼저 끌어와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해왔는데, 올해로 19번째 개최되는 ‘말레이시아 국제 할랄 전시회(Malaysia International Halal Showcase : 이하 MIHAS)’ 도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MIHAS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할랄 전시회로 2023년 행사는 말레이시아 국제무역투자부(MITI)의 주최와 말레이시아 대외무역개발공사(MATRADE)의 주관으로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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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HAS 방문증.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전시회장 입구의 키오스크에서 프린트 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국제 무역 전시장(Malaysia International Trade & Exhibition Center, 이하MITEC) 건물의 1~3층에 걸쳐 진행된 행사는 각 층별로 중소기업, 해외기업, 정부기관 등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각 층마다 지식허브(Knowledge Hub)와 강연회(Corner Talk)를 비롯한 세션이 상시 개최되었다. 행사는 9월 12일~15일까지 나흘간 진행되었는데 14일까지는 기업간 홍보를 중심으로, 15일에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제품판매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특히 기업간 홍보는 개념적으로 알고있던 할랄의 다양성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할랄전문 포장회사가 정말 있는 곳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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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HAS 내 할랄 인증기관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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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 물류기업 홍보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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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HAS 전시장 입구에서]

   

등록 키오스크가 있는 3층에서 내려오면 각국의 부스들이 모여있는 국제관(2층)이 자리해있다. KOTRA를 통해 참가한 국내기업의 부스도 있었는데, 각 기업마다 말레이시아 시장진출 과정과 전략이 달라 흥미로웠다. 특히 최근 회자되는 SMIIC (Standard and Metrology Institute for Islamic Countries : 이슬람 국가 표준 및 도량기구) 인증기준에 따라 할랄인증을 받은 업체도 보였다. 한국관에는 기초화장품, 약초를 활용한 건강기능식품, 떡볶이 등 현지에서 인기있는 한식 제조기업이 주로 참가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국내에서 비건인증을 받은 화장품 업계의 대기업들이 참가하지 않아 아쉽고 의아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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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HAS 내 한국관 일부. 할랄인증을 받은 기업은 인증서를 함께 전시해야 한다] 


책에서만 보던 정부기관들도, 반가운 한국기업들도 뒤로하고 1층 메인홀로 내려오면 현지기업의 전시장이 있다. 2,3층의 부스는 제품설명, 계약상담, 할랄인증상담 등에 집중되었다면 1층은 기업이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판매할 수 있어 더 화려하고 축제같은 분위기이다. (2, 3층 참가기업은 행사 마지막날인 15일만 제품 판매가 가능하다)


1층 전시장은 마치 2005년 개봉한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생각나게 한다. 빨간색 카펫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부스들, 공기가 섞이도록 높게 따르는 게 포인트인 말레이시아 밀크티 ‘떼 따릭(Teh Tarik)’을 즉석에서 따라 나눠주는 시음회, 바구니에 한가득 쌓인 성인 남성 얼굴보다 큰 망고(두리안은 특유의 냄새 때문에 모형으로 대체해야 한다), 양팔 가득 할인가로 구매한 제품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김치를 만들었다며 “한국인으로서 먹어보고 K-인증을 해달라”던 귀여운 청년들 (김치는 정말 맛있었다!). 커피원두를 전시하던 에티오피아 부스에서는 이름모를 북을 치며 커피주전자를 들고 다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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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HAS 내 Nestle 부스. Nestle는 말레이시아 내에서 Milo라는 초콜릿 음료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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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HAS 현지기업 부스들] 


공부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의 3층, 한국인이라고 하니 유독 반가워 해주던 사람들이 많은 2층, 그리고 그저 즐겁던 1층까지 돌아보고 일행들과 전시장 내 카페에 앉았다. 산 물건들을 나눠갖기도 하고 과자를 몇 봉지 뜯어 앞에 놓아주더니 나를 혼자 두고 다들 우르르 저녁기도를 하러 가버려서 꼼짝없이 가방 지킴이(?) 신세도 되어 보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에 둘러싸여 다시 ‘찰리와 초콜릿 공장’ 영화를 생각했다. 잠깐동안 윌리웡카의 초콜릿공장같은 다른 세상을 엿보고 온 것 같았다. 


할랄에 관한 글을 읽을 때 마다 할랄은 ‘더 이상 책 속의 가르침이 아니라 일상생활’이라는 문장을 자주 접한다. 그럼에도 이번 MIHAS가 조금은 당황스러운 이유는 나도 모르는 사이 할랄을 너무 진지하고 거룩한 주제로 여겨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던 할랄은 MITEC의 3층, 기껏해야 2층에서 끝났어야 하는 주제인데. 김치를 먹어보고 K-하트를 날려주는, 초콜릿 공장같은 즐거운 일은 잘 없어야 하는데. 


동시에 할랄이 그 자체로 자리잡기에 애매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할랄이 일상이라는 말은 결국 먹고사는 문제라는 뜻이다. 기업 내 할랄감사팀을 조직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인력의 직종을 세분화시키고, 새롭게 제정되는 국제기준에 대해 협의한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오늘 저녁 먹을 만두를 사고 BTS가 그려진 초코우유를 마시는 것 같은 일상적인 일. 

할랄의 기본 원리는 “사람에게 이로운 것은 허용되고, 해로운 것은 금지되는 것”이다. 축제같은 분위기의 할랄 전시회는 사실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을 따르는, 가장 종교적인 행사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신이 뜻하신대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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