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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6,411 조회 날짜 20-07-07 14:24내용
코로나와 함께 확산되는 외국인 혐오증: 이탈리아 사례
김희정(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학술연구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 세계 확진자가 28일 오전 6시 12분(그리니치 표준시 27일 오후 9시 12분) 기준으로 누적 확진자는 1천1만3천690명에 이른다. 유럽에서는 러시아, 영국, 스페인이 이어 이탈리아가 약 23만 8 천 여 명으로 뒤를 잇는다. 코로나19의 확산이 커질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과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에 사람들은 엄청난 공포를 느끼며, 이로 인해 서로를 의심하고 증오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현상은 과거 역사에서도 반복되는 현상이다. 14세기 페스트가 창궐할 때 중세 교회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지자,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무능을 덮기 위해 질병의 이성적 원인 보다 증오의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수백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의 확산 속도보다 빠르게 ‘혐오’의 정서가 전 세계로 퍼져가고 있다.
수 세기 동안 지역, 언어, 문화적 측면에서 이탈리아는 점점 동질화과정을 통해 나름의 ‘정체성’을 형성해 왔기에, 가시적으로 떠오르는 이주민의 존재가 배타적이고 낯설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단일문화 및 단색(monocolour) 사회”에 익숙한 대다수 이탈리아인들은 한편으로는 이주민 공동체에 대해 외국인 혐오증과 이탈리아 문화에 침투하는 이문화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고 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의 13% 비중을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현재 이방인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위치에 놓여있다.
이주민과 관광객을 제외한 이방인으로 1990년대부터 쓰나미처럼 이탈리아에 들어온 불법체류자도 포함된다. 이탈리아 민족주의는 전체주의, 배타주의, 쇼비니즘의 특색을 지니기에 대체로 국수적이다. 자국의 특권과 세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것을 중시하면서 공격적이고 침략적인 성격을 나타내었던 이탈리아의 민족주의는 전쟁과 식민지배의 결과를 초래하게 됨으로 해서 국제적 갈등을 일으켰던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전통적 이탈리아 문화 속에서 이방인 유입에 배타적 시선은 만연되어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아래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이후 이탈리아 내에서도 중국뿐만 아니라 이방인 전체에 대한 혐오정서가 퍼져나가고 있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점 이탈리아에서 중국인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중국계 청년이 이탈리아 카솔라의 한 주점에 지폐를 교환하러 들어가자 직원이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라는 비난과 함께 제지했다. 이 가운데 주점 안에 있던 한 30대 남성이 유리잔으로 청년의 얼굴을 내리쳤고 피해자는 머리가 찢어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또한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로나 인근의 한 업체가 최근 코로나 방지용 마스크를 출시했다. 마스크 겉면에는 파시즘의 원조로 2차 대전 전범인 베니토 무솔리니가 군복을 입고 있는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극우 성향의 이탈리아 제1 야당인 동맹당은 "표현의 자유"라며 감쌌다. 20세기 초 유행한 스페인 독감이 나치 집권에 도움을 준 상황과 유사하게, 이탈리아에서도 이방인 혐오를 부추기며 지지를 얻으려는 현상이 보여지고 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감소세로 들어서고 완치자 수가 늘어나는 등 상황이 호전 될 때, 이탈리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최초 확진 판정을 받은 60대 중국인 관광객 부부가 자신들을 치료해준 로마 현지 병원에 거액을 쾌척했다. 이를 계기로 이방인에 대한 이탈리아 여론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힘을 얻은 중도좌파의 여러 운동이 확산되며 혐오 증오 분위기가 누그러지는 계기가 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이주민 집단 사이에서 연속 발생한 집단 코로나19 확진 사태로 외국인에 대한 호전적 분위기는 급냉하게 된다.
지중해를 건너온 불법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코로나19가 집단발발하면서다. 극우 정당의 이민자 혐오 주장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시칠리아 주지사는 "리비아에서 지중해를 건너 밀입국한 이민자의 물결을 관리하는 데 문제가 생겼다"고 발표했다. 이곳에서 이민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역을 하는데 사실상 이 방역 절차에 구멍이 뚫렸다는 뜻이다. 이어 남부 캄파니아주 나폴리에서 북쪽으로 약 60㎞ 떨어진 몬드라고네를 중심으로 49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한꺼번에 나오며 2차 확산의 공포가 시작되었다. 이곳은 농장에서 일하는 불가리아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동네다. 이 지역은 '레드존'으로 지정되고 주민 700여 명에게 이동 금지령을 내려졌다. 이러한 바이러스 위기 속에 일터로 나가려는 불가리아 이주민과 이동 통제 유지를 희망하는 이탈리아인 거주자들이 서로 대립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들은 고층 발코니에서 의자와 벽돌 등을 집어 던지고 차량을 파손하는 등으로 서로에게 불만을 표출했다. 출입 통제와 치안 유지를 위해 현장에 50여명의 군 병력을 배치한 캄파니아 당국은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이날 폭동 진압 경찰을 추가로 투입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며, 이들의 이동을 감시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대중의 공포와 불만을 악용해 유럽에서 극우 포퓰리스트 세력이 활개 치고 있다. 봉쇄령으로 발이 묶이고 경제적 타격을 입은 이들을 상대로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불어넣으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극우 정치가인 마테오 살비니 동맹당 대표는 중국이 박쥐와 쥐를 이용해 '수퍼 바이러스'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이 생물 무기를 개발했다는 음모론을 퍼뜨리는 것이다. 극우주의자들은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한다. 코로나로 인한 '인포데믹(거짓 정보 유행 현상)'을 극우 세력이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에는 코로나가 중국에서 퍼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아시아인을 싸잡아 혐오하는 글이 넘쳐나고 있다.
이탈리아 극우 세력이 지니는 배타성은 역사적으로 강하게 뿌리 내리고 있다. 1991년 창당된 극우보수세력인 북부연합당(Northern League) 영향이 크다. 움베르토 보씨Umberto Bossi가 리더인 이 정당은 창당시기부터 이민자 강압정책을 기본정책으로 내세워, 일명 '외국인 때려잡기 당'이라는 노선을 선택했다. 그 후 유럽사회에서 질타가 쏟아지고 입지가 좁아지자 '외국인 배타주의'에서 '불법이민자 배타주의'로 약간의 노선 변경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이탈리아는 외국인과 불법이민자 모두에게 배타성을 드러내며 전반적인 이방인 혐오증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 중앙은행을 비롯해 많은 경제기관들이 올해 이탈리아 경제성장률이 -10% 안팎으로 곤두박질칠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탈리아 절대빈곤 인구 460만명으로, 코로나19로 더 악화할 듯이라 평했다. 실업과 주택 부족 등에 불만을 품은 현지인들이 외국인 이주자들을 상대로 분노를 표출하는데, 현지인들의 높은 실업률과 빈곤에 허덕이는데 외국 이주자들 탓에 그나마 자신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고 일부에서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탈리아는 지난 3월 초부터 약 2개월간 시행된 고강도 봉쇄 조처의 영향으로 실직자나 영세 자영업자 등과 같은 취약계층은 실질적인 생계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가 이탈리아 사회경제 전반적으로 이렇게 직격탄을 날릴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크게 4가지 -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재정 악화, 공공의료 예산 부족, 세계 2위 고령 국가, 이탈리아 특유의 사교·가족 문화 –로 정리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중국과 가장 밀접한 국가다. 유럽연합(EU) 창립 회원국 중 유일하게 일대일로(一带一路·중국의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서방 국가들의 우려 속에서도 일대일로에 올라탄 근본 원인은 경제 문제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파급된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EU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131%, EU 국가 중 181%를 기록한 그리스 다음이다. 이탈리아는 중국과 경제협력을 통해 재기를 꿈꾸고 있었다.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중국인들은 이탈리아 사회 곳곳으로 진출했다. 이탈리아 코로나 위기의 배경과 중국인의 역사적 대이동이며, 실제 롬바르디아·토스카나·베네트·에밀리아·로마냐 등 이탈리아 중·북부 지역에 2만8000개의 중국계 기업이 존재한다. 더불어 중국인 관광객도 급증했다.
이탈리아는 ‘노인대국’이다.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23%, 일본(28.4%)에 이은 세계 2위다. 실비오 브루사페로(Silvio Brusaferro) 이탈리아 국립보건고등연구원(Istituto Superiore della Sanità) 원장은 “이탈리아의 높은 치명률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노령화된 인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의 코로나19 치명률이 높은 또 다른 원인은 공공의료 시스템이 부실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 전체 의료비의 77%가 공공의료 부문에 투입된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탈리아 정부 재정은 악화됐고, 이에 비례해 공공의료 분야 투자액도 지속적으로 감소세다. 재정 투입이 줄어들면서 의료 서비스 수준도 하락하고 있다. 의료진의 낮은 처우 문제가 되며, 이는 의료인력 부족 현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량 발생한 북부 롬바르디아주 중소도시 베르가모에서는 일부 병원들이 고령 환자 치료를 포기했다. 의료시설·장비, 의료진 부족 속에서 병원들이 선별 치료에 나선 것이다. 이는 ‘의료윤리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의 가족 공동체 문화와 사교성도 코로나19 확산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순한 혐오와 증오는 과학과 이성을 누른다. 이탈리아 내 코로나19 확산의 원인은 분명 정리된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로 인한 정신적 ‘쇠락'의 불안이 낳은 민족주의, 그 해결방안이 있을까?
외국인혐오증(xenophobia)이란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방인이나 외국인, 또는 낯설거나 익숙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 또는 증오"이라고 정의돼 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방인인가? 외국인혐오증적인 민족주의가 고개를 드는 상황이 있다. 한 국가의 국민들이 자기네 국가가 힘을 잃어가는, 즉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고 느낄 때이다. 이탈리아의 국가적 쇠락의 느낌은 요즘 세계가 처한 것과 같은 엄청난 경제적 위기의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악화될 수밖에 없다.
혐오바이러스를 글로벌 연대로 이겨낼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코로나19는 국경을 존중하고 여권을 검사하고 인종이나 성별이나 종교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한 사회경제체제는 바이러스의 병리학을 넘어 분명한 정치적, 계급적, 인종적, 젠더적 결과를 가져온다. 코로나 팬데믹이 촉발한 경제 위기로 이주민들은 제일 먼저 일자리를 잃었다. 또한 이들은 방역 때문에 국경이 닫혀 오가지 못하는 처지에서 비자 발급 중단 등 강화된 이민정책에 직면하고 있다. 이주민과 난민이 직면한 더욱 커다란 위협은 코로나 재앙 속에서 혐오의 타깃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감염병에 취약하고 생계도 위협받는 피해자들이 오히려 바이러스를 퍼트린 가해자로 낙인찍혀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코로나19와 경제적 불안정이 가져올 정치적 혼란과 위기는 오히려 극우세력을 물리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적 약육강식, 각자도생의 논리가 아닌 사회정의와 연대의 원리로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를 급진적으로 재구성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재난 속에서 서로를 걱정하고 돌보려는 사람들이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평등주의적 가치들을 끌어안는다는 것, 예컨대 어떤 종류의 공동체든 자치의 권리를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며 모든 형태의 자치체가 상호 관용의 정신 속에 살아가는 국가적 정치구조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규정하기도 또 유지하기도 매우 어려운 정치적 과제이다. 인류의 장기적 생존을 보장하는 유일한 희망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이들이 이탈리아 지성인이다. 이탈리아 민족국가는 수많은 언어 및 문화 동질화 노력을 통해 창출되었고, 정치적 정체성의 창출 이전에 작가들과 지성인들이 국가적 문화 정체성을 창출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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