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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S Focus _ 동•서문화 교류의 가교로서의 지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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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93 조회 날짜 19-06-0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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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서문화 교류의 가교로서의 지중해 


이종화(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

 

세계문명과 문화의 흐름을 살펴볼 때 동양문화와 서양문화의 상호교류는 인류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고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지중해 지역에서의 동․서 문화교류는 이 지역이 인류문화의 중심지였었던 점에 비추어 세계문화사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동•서문화 교류의 증거로써 『부처설화』, 『칼릴라와 딤나』,『아라비안나이트』의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이되는 경로와 과정 그리고 서양에 전이되어 나타난 형태에 대해 고찰하는 것은 동서문화 교류의 실증적 증거를 밝히는 일로써 매우 의미 있는 연구가 될 것이다. 또한 이 연구를 통해 지중해 지역이 동․서 문화교류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는가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1. 『부처설화』의 전이과정


부처설화는 인도의 왕자로 축복과 기대 속에 태어난 부처가 왕궁의 화려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우연하게 성 밖에서 목격하게 된 장님과 병자, 노인을 만나 실존의 허무함에 고뇌하기 시작하게 되고, 인생에 관한 진실을 갈망하던 중, 수행자를 통해 삶의 진리를 깨우치고 난 후 출가하여 헛된 세속적인 가치를 모두 버리고 참된 삶을 찾아 금욕과 고행과 순례의 길을 찾아 결국 해탈을 이루고 열반에 이른다는 내용으로 산스크리트 문헌 『랄리타비스타라 (Lalitavistara)』에 나오고 있는 내용이다.  

 경전의 형식으로 정리된 부처설화는 인도 여러 지역과 동과 북, 남쪽으로 불교의 전승과 더불어 퍼져나갔으며, 당시 불교, 기독교, 마니교 등 여러 문화와 종교가 활발하게 교류하던 서아시아 지역으로 전승된다. 그리고 서기 3세기경에 부처설화는 인도의 북서쪽 중앙아시아의 박트리아 지역으로 전해졌고 그 증거로 고대 페르시아어인 소그디아노어로 기록된 아쉬바고사의 『부다차리타』라는 마니교 판본이 있다. 이 판본은 불교적 요소에 마니교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다. 그 후 9세기경에는 아랍 문화권에 유입되어 이슬람적 요소를 가미한 아랍어 판본인 『키탑 빌라와르 와-부다사프(Kitāb Bilawhar wa-Budasaf)』이 생성된다. 10세기경에는 그루지야 지역으로 전해져 그루지야어 판본 『정신적 스승 발라바르가 개종시킨 인도의 왕 아베네스의 행복한 아들 요다사프의 삶』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최초로 기독교화 된 텍스트이다. 11세기경에는 그리스로 전승되어 그리스어로 번역 및 증보된 『바를람과 조사팥』 판본이 출현하였다. 이 판본은 부처설화의 골격을 온전한 형태로 세세한 부분에까지 유지하고 있으면서 기독교 교리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불교적인 요소들이 기독교화 되는 과정과 근거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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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설화의 전이과정> 


그리스어 판본의 텍스트는 향후 라틴어로 번역되는 과정을 통해 유럽 기독교 세계로 확산되는 현상의 시발점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동서양 사이의 문화적, 종교적, 문학적 교류의 한 실례를 연속적으로 검토하고자 할 때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그리스어 판본에서 1048년 최초 라틴어 판본이 나오게 되고 이 판본은 11세기 이후 나오기 시작한 여러 서유럽어로 씌어진 『바를람과 조사팥』 텍스트들의 직접적인 원형이 된다. 라틴어 판본은 이후 유럽의 각 언어권으로 전이되면서 『바를람과 조사팥』텍스트들이나 그것의 영향을 받은 여러 장르의 문학 작품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원형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리고 라틴어 판본을 모체로 여러 유럽 언어로 번역 내지 각색되어 서양 중세 기독교 문화권에 확산된다. 특히 주목할 판본은 스페인 판본으로 『바를람과 조사팥』이야기가 12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스페인에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라틴어로 쓰인 판본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또 다른 한편으로 711년 이후 1492년에 이르기까지 이베리아 반도의 남부를 지배해온 아랍인들에 의해 아랍어 판본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부 스페인어 판본은 라틴어 판본이 아닌 아랍어 판본에서 직접적으로 번역을 하거나, 최소한 아랍어 판본을 참조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를람과 조사팥』의 전승 과정에서 부처의 가르침은 종교적인 교리로서의 불교라는 이름을 잃는 대신 각 문화권에 녹아 들어가 자리를 잡게 되는데, 특히 그루지야 판본부터는 기독교 교리 속에 용해되며, 최종적으로는 유럽 중세의 기독교 세계 속에서 당당히 성인열전(聖人列傳)으로 살아남아 그 생명력을 보존한다. 

실제로 기독교 성인으로 존경받는 요사파트(Iosaphat)의 이름은 부처라는 이름의 산스크리트어 표기 “붓다(Buddha)”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 “붓다(Buddha)” 또는 “보디삿따(Bodhisatta = 보살(菩薩))”는 마니교 판본에서는 페르시아어 보디사브(Bodisav)가 되고, 아랍어 판본으로 넘어가면서 “부다사프(Būdhāsaf)”가 되며, 그루지아어 판본에서는 “요다사프(Iodasaph)”가, 이어 그리스어 판본에서는 “요아사프(Iôasaph)”가 된다. 이것이 서유럽 라틴어 계열 언어권 속에서는 최종적으로 “요사파트(Iosaphat)/조사팟(Josaphat)”이 된 것이다. 

  

2. 『칼릴라와 딤나』의 전이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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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라와 딤나의 한 장면> 


『칼리라와 딤나』는 '칼릴라'와 '딤나'라는 두 마리 자칼 이야기를 중심으로 틀이야기의 형식으로 구성된 우화집이다. 이 작품은 인과응보, 선과 악, 삶의  이치, 인간의 도리, 처세술 등과 같은 인생에 필요한 다양한 교훈들에 관한이야기들로 구성된다. 인도의 『빤짜딴뜨라Pañcatantra』(3세기경)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인도의 수많은 문학작품들 중에서 세계 문학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이미 13세기에 유럽에 『빤짜딴뜨라』의 여러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라퐁텐(La Fontaine)은 물론 괴테(Goethe)에서도 그 흔적을 볼 수 있으며 실제로 비교설화연구가 탄생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작품이 바로 『빤짜딴뜨라』이다.  

 『빤짜딴뜨라』작품의 탄생 배경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남부인도의 마힐라뽀야라는 곳의 왕 아마라샥띠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우둔하고 배우기를 싫어해서 왕의 걱정이 컸다. 이에 쑤마띠라는 대신이 왕에게 비스누샤르만이라는 브라만을 초빙할 것을 권한다. 대신의 권유를 받아들여 왕에게 초빙된 비스누샤르만은 6개월 안에 이 우둔한 아들들을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갖춘 사람들로 교육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는 이 왕자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정치적 지혜를 배울 수 있도록 동물이 등장하는 우화를 다섯 부분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빤짜딴뜨라』이다.  

 『빤짜딴뜨라』는 6세기경에 인접지역인 페르시아로 전파된다. 페르시아의 왕 코스루 아누쉬르반은 570년 자신의 주치의 바르자위를 인도로 보내 『빤짜딴뜨라』를 중세페르시아어인 파흘라위어(Pahlevi)로 번역하게 하였다. 파흘라위어본은 570년 기독교 수도사 부드에 의해 『칼릴라그와 딤나그(Kalilag and Dimnag)』라는 제목으로 고대 시리아어로 번역되었고 이븐 알 무깟파에 의해 『칼리라와 딤나 Khalīlah wa Dimnah』라는 제목으로 아랍어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파흘라위어 본은 고대 시리아어와 아랍어로 번역된 후 소실되었다. 당시 아랍 압바시아 제국의 칼리프 만수르는 ‘지혜의 전당’을 통해 수많은 외국 서적의 번역을 장려하였으며 『칼릴라와 딤나』도 이러한 칼리프의 장려하에 번역되었으며 특히 이 책은 식자층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번역되었다. 이븐 알 무깟파는 이 작품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문에 얽매이지 않고 아랍․이슬람 사상에 맞추어 개작하는 동시에 자신의 정치사상과 철학, 그리고 사회개혁 의지를 투영시켜 재창작하였다.

 페르시아에서는 이 아랍어 본을 다시 페르시아어로 번역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알 와이즈가 페르시아인의 취향에 맞도록 개작하여  『안와르 수할리(Anwār Suhali)』라 제목을 붙여 1400년대말 출간한 것이다. 『안와르 수할리』는 1804년 캘커타에서 처음 출판되었으며 아랍어 원문에 대한 극도의 일탈 본으로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알 와이즈는 『칼릴라와 딤나』에 실리지 않은 많은 이야기를 자신의 작품에 덧붙여 페르시아의 민족적 색채를 불어넣으려 했다. 

 이 페르시아어 판은 16세기 초에 알리 잘비 이븐 살리흐에 의해 터키어로 번역되었고 『제국의 책(Hamayon Name)』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 번역본들은 17세기 유럽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특히 페르시아어 번역본은 프랑스 작가 라 퐁텐이 그의 우화집을 1678년과 1679년 출판시키는데 영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터키어 번역본인 『제국의 책』은 빈센트 브라투테에 의해 『정치와 도덕의 거울(The Mirror of Politics and Morals』이라는 제목으로 1654-1659년 마드리드에서 스페인어로 번역 출판되었고 앙뜨완 갈랭(Antoine Galland)에 의해 불어로 번역되어 1724년 2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또한 16세기 말에는 페르시아 황제 델히 아크바르의 명에 의해 아불 파즐이 『안와르 수할리』를 개작하여 『지혜의 시금석』이란 제목의 페르시아어 판을 1590년에 출판하였다. 

 1080년에 시몬 쎄스는 『칼릴라와 딤나』아랍어 본을 그리스어로 직접 번역하였고 『삭발사제와 연구자』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스어 본은 1697년 스타크에 의해 편집되었는데, 『칼릴라와 딤나』에 실린 대부분의 장을 포함하고 있지만 주요 등장인물 및 동물의 이름은 새롭게 바꾸거나 누락시켰다.

 『칼릴라와 딤나』의 히브리어로의 첫 번역은 12세기 이태리에서 살고 있었던 요엘이라는 유대인 성직자에 의해서였다. 이 번역본에서는 현자 바이다바의 이름이 센데바르(Sendebār)로, 다브샬림왕의 이름이 디슬스(Disles)로 바뀌었다. 그의 번역본은 이후 유대인인 요한네스 드 카푸아에 의해 『인간의 삶의 지침서(Directorium Vitae Humanae)』라는 제목으로 라틴어로 번역되었고 1480년경 듀크 에버하드에 의해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이 번역본에 관한 최상의 편집 본은 홀란드에 의한 것으로 그 제목은 『옛 현자의 설화』이다.  또한 요엘의 번역본은 익명의 번역자에 의해 까스티야어로 번역되었는데 『세상의 속임수와 위험에 대항한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으로 1493년 사라고사에서 출판되었다. 그리고 요엘의 번역본은 1548년 아그놀로 피렌주올라에 의해 『상호 추론된 동물들에 관한 담화』라는 작품으로 이태리의 플로렌스에서 출판되었다. 

 히브리어로의 두 번째 번역은 13세기 문법 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야꿉 벤 엘라자르에 의해서였다. 야꿉의 번역은 구약성서에 대한 많은 주석과 주해와 연결되어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엘 도니가 1552년 베니스에서 『칼릴라와 딤나』 이야기를 모방한 작품 『도덕철학』을 출간하였다.  도니의 작품들은 1570년 런던에서 토마스 노스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토마스 노스의 영어 본은 도니의 작품을 원문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1819년에는 옥스퍼드에서 아랍어에서 번역된 영어 본이 출간되었고 1905년에는 아드와르 판디크에 의해 재출간되기도 하였다. 

 삐에르 드 라 리베이는 피렌주올라의 『상호 추론된 동물들에 관한 담화』와 도니의 『도덕철학』에 기초하여 불어로 번역하였고, 이는 1579년 베노이스트 리구아에 의해 리용에서 『철학 우화에 관한 두 권의 책』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불어 본에서는 왕의 이름이 루토크랜(Lutocrène)으로 현자의 이름은 티아봉(Tiabon)으로 바뀌어 나타나고 있어 참고한 책과의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1644년에는 데이비드 사히드가 페르시아 어본 『안와르 수할리』를 불어로 번역하여 『빛의 책』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기도 하였다. 1889년에는 미카엘 아따야에 의해 러시아어 본이 모스크바에서 출간되었고 1948년에는 또 다른 러시아어 본이 모스크바에서 출간되었다.



3. 『아라비안나이트』의 전이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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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아라비안 나이트』라고 알려진 아랍의 설화집은 원 제목이 『알프 라일라 와 라일라(Alf Lailah wa Lailah:천일야화(千一夜話)』, 즉 천 하룻밤의 이야기이다. 이 설화집은 원래 인도의 이야기가 주축이 된 것으로 간주된다. 『천일야화』의 초기 작품의 이야기 앞부분에는 샤흐라자드의 아버지인 대신이 말하는 동물설화와 비슷한 내용을 불교설화집 『샤타카(Sataka)』에서 찾을 수 있으며 또한 『천일야화』전반에 농후하게 드러나는 ‘여성혐오’의 문학전통이 포함되어 있음을 볼 때 인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이후 이 이야기들은 6세기경에 페르시아로 전이되어 󰡔하자르 아프사네 Hazar Afsān󰡕(천 개의 이야기)로 편집되었다.  󰡔하자르 아프사네󰡕는 약 200 가지의 이야기밖에 수록되지 않았으며 많은 이야기가 변형되고 첨가되고 삭제된 채 아랍으로 전달되었다. 아랍에서는 9세기 경 󰡔알프 라일라 Alf Laylah󰡕(천일 밤)으로 번역되었으며, 이후 아부 압둘라 무함마드 븐 아부스 알 자흐시야시리가 아랍, 페르시아, 그리스, 그 외의 다른 지역의 이야기들을 첨가하여 『천일야화』의 기틀을 잡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천 개의 이야기를 수집하려 했으나 결국 480여 개 정도만 집필하고 사망했다. 그리고 15세기 압바스 왕조의 바그다드 시대를 거치며 여러 작가들에 의해 순수한 아랍적인 이야기들이 덧붙여졌고, 이후 이집트로 건너간 『천일야화』는 이집트의 이야기꾼들에 의해 1001밤에 이를 때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덧붙여졌다. 작가들이 중심이 되었던 바그다드와는 달리 이집트에서는 직업적인 이야기꾼들이 『천일야화』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많은 이슬람적 전통과 파라오의 전설, 유대인들의 전기를 포함한 아랍적인 이야기로 이 책의 부피를 늘렸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집트에서 덧붙여진 이야기가 『천일야화』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며, 이것은 11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이루어졌다. 

 『천일야화』의 서양으로의 전이과정에서 주목해야하는 곳은 스페인 안달루스이다. 이 지역은 아랍문화와 스페인 문화가 직접적으로 상호 교류하는 중심지였고 따라서 『천일야화』도 자연스럽게 안달루스 지역으로 전달되었다. 『천일야화』는 페르난도 3세의 아들이자 알폰소 현왕의 형인 파드리께 왕자의 명에 의해 1253년 아랍어에서 중세 까스띠야어로 『여인의 속임수에 관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으나 『천일야화』의 전편이 번역된 것이 아니라 스물세 편만을 번역하여 출간한 것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주로 여성의 비열한 속임수에 대한 것이며 이야기의 많은 내용이 󰡔천일야화󰡕의 578일째 밤에서 606일째 밤의 이야기와 상당히 유사하다. 이것은 아마도 구전으로 전해지던 여성의 비열한 속임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랍문학에서는 󰡔천일야화󰡕의 편집과정 속에 포함되었고, 스페인 문학에서는 󰡔여인의 속임수에 관한 이야기󰡕라는 독립된 이야기 집으로 편집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후에 󰡔센데바르(Sendebar)󰡕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번역되었다. 이 판본은 아랍어에서 스페인어로 직접 번역되는 동양전통에 따른 전이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센데바르󰡕가 스페인으로 전이된 또 하나의 전이과정이 존재하였는데 그것은 서양전통의 전이과정이다. 서양전통의 전이과정은 라틴어 판본인 󰡔일곱 현자의 이야기󰡕로부터 스페인어로 번역되는 과정이다. 

 현존하는 󰡔센데바르󰡕의 중세 필사본들은 크게 두 가지 전통의 줄기로 나뉜다. 하나는 동양 판본으로 인도에서 발생한 이야기들 혹은 이야기집에서 파생하여 발전된 것들로 추정되는 일련의 작품들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작품들로 구성된 서양 판본이다. 동양 판본에 속하는 작품들은 히브리어, 시리아어, 그리스어, 스페인어, 아랍어, 라틴어 등의 언어로 되어있고, 통칭하여『신드바드서(Book of Sindibad)』로 불린다. 서양 판본에는 라틴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 등으로 씌어진 작품들이 속하며 통칭 『로마의 일곱 현자 이야기』로 명명된다.

 17세기 이후부터 고조되기 시작한 유럽에서의 아랍에 대한 관심은 󰡔천일야화󰡕의 번역에 집중되었다. 유럽의 많은 번역가들이 이 작품을 번역하였으나 그들은 󰡔천일야화󰡕 의 아랍어 원본을 충실하게 번역하는 대신 유럽인들의 관심을 끄는 동방에 대한 호기심, 환상, 성애담 등의 소재에 집중하여 번역하면서 임의로 원본을 수정하거나 없는 내용을 첨가하기도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천일야화󰡕 의 번역은 프랑스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이후 영국으로 확대되었다. 󰡔천일야화󰡕초기 번역의 중심인물은 프랑스 작가 앙투안 갈랑이었다. 그는 󰡔천일야화 Les Mille et Une Nuit, contes arabes traduits en français󰡕 시리즈를 1704-1717년에 걸쳐 번역 출판하였는데 갈랑은 4권으로 된 시리아의 필사본을 원본으로 삼았지만, 구전된 이야기와 다른 자료에서 나온 많은 이야기를 포함시켰다. 그의 번역본은 19세기 중반까지 󰡔천일야화󰡕의 표준 작품으로 간주되어 그 일부 이야기는 심지어 아랍어로 다시 번역되기도 했다. 이후 리처드 버튼(Richard Francis Bunton, 1821-1890)의 영어 번역본 󰡔천일야화 The Thousand and a Nights󰡕(전 10권, 1885-1888)가 나오면서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유럽에서  󰡔천일야화󰡕 의 번역은 번역가의 번역의도와 번역과정에 따라 원본의 문학작품이 많이 달라지는데, 영국과 프랑스는 개인 번역가들이 본인의 노력에 따라『천일야화』원본을 수집하였고 번역함으로써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원본 내용을 수정, 변형, 첨가하였고 따라서 번역본이 원본과는 많은 차이를 가지게 되었다. 반면 스페인에서의 󰡔천일야화󰡕 아랍어 원본은 거의 변형 없이 전달되었으나 원본 내용의 전부가 아닌 필요에 의한 일부분만을 번역하고 이를 󰡔센데바르󰡕 라는 다른 이름을 붙인 스페인 문학작품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동양의 세 편의 문학작품들 『부처설화』, 『칼릴라와 딤나』,『아라비안나이트』는 인도에서 시작된 이야기들이 역사적 흐름과 지중해라는 지리적 공간을 넘어 유럽으로 전이되어 정착되는 공통적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의 단계는 서아시아, 아랍, 그루지야, 그리스, 라틴, 스페인으로 전이되는 과정이며 이 과정 속에서 각각의 이야기들은 각 언어․문화권의 특징적 현상들을 첨가하여 독특한 형태로 재창조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며 하나의 문화권에서 생성된 문화가 한 곳에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살아 움직여 다른 문화권으로 전달되고 다른 문화권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첨가하여 자신들의 독특한 형태로 만들어 나가는 현상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문화교류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지중해지역이며 이 공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인류문화가 끊임없이 상호교류하고 교감하며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우리는 이 세 편의 이야기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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