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난민문제와 한국난민정책의 미래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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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5,435 조회 날짜 20-08-28 13:13내용
시리아 난민 문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관점
글 : 지중해지역원_HK차세대연구원 전지은
난민 발생국, 시리아
최근 시리아 내전으로, 시리아 난민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큰 화두로 떠올랐다. 유엔 난민기구에 따르면 대략 630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발생하였다. 난민 발생의 주요인은 오랫동안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 이념의 갈등이다. 이처럼 시리아도 40년간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 아래에 지배되었으며, 독재 타도를 위한 시위를 시작으로 내전이 시작된 것이다.
시위대는 인종과 종교로 뒤섞여 있었기 때문에, 정권 타도 이외에 서로 추구하는 목표가 달랐다. 결국, 하나로 뭉쳐도 정부가 퇴각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위대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내부적으로 충돌과 분열을 일으켰다.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 민주주의 국가 건설이 목표인 시리아의 핵심 반군 조직 ‘자유시리아군’, 코란의 율법을 수호하는 ‘극단주의 반군’, 시리아 내에서 자치권이 목표인 ‘쿠르드 민족’, 그리고 IS 조직으로 분열되었으며, 외세의 지원으로 대리전으로 번지게 되었다.
결국,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인의 몫이 된다. 시리아인은 난민의 신분으로 전 세계에 흩어지게 된 것이다.
<그림1. 시리아 내전으로 생긴 분파와 외부세력의 개입을 나타낸 모습>
한때, 난민 발생국, 대한민국
한국도 한때는 일제의 식민 지배와 내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국을 떠나 난민이 되었다. 당시 조선 시대였던 한국은 붕당 정치로 인한 당파싸움으로 정치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 시리아가 내부분열이 일어났었던 것처럼, 당시 조선은 ‘민씨 정권’, ‘흥선 대원군’, ‘급진 개화파’ ‘동학농민’, ‘임오군란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외세에 개입으로 큰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이런 혼돈의 배경 속에서 사람들은 난민의 신분으로 중국, 러시아, 미국으로 흩어진 것이다.
하지만, 난민의 신분으로 외국 땅에 머물게 된 인물 중 대한민국 건국에 동참한 많은 지도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그리고 윤봉길 의사 등 일제에 독립하기 위해 애써주신 많은 분들이 난민의 신분이었다.
<그림2. 조선 말기의 모습은 현재 시리아 사태와 흡사하다.>
즉,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난민 발생국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현 시리아 난민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현재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올라 난민 수용국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난민 수용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고 회피적이다. 과거 역사를 교훈 삼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난민 문제를 접근하고 개선해야 함을 강조하고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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