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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 문화에 나타난 물의 원형적 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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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154 조회 날짜 24-07-0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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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투르크 문화에 나타난 물의 원형적 심상



지중해지역원_양민지(HK 교수)



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개인, 사회, 국가, 문명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어머니 자궁 속 태아도 물에 싸여 생명을 이어나가는 것처럼 역사 속 수 많은 부족, 마을, 사회, 국가 또한 샘, 호수, 강 등 물의 원천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안정적인 물 공급은 한 사회와 문명의 번영에 도움을 주었다. 물은 생명의 탄생과 유지를 위해서는 필수적이므로 따라서, 이러한 속성에 따라 물은 삶, 번영, 부, 안녕, 축복 등에 비유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물에 대한 원형적 사고는 문학에도 반영이 되어 공통의 심상을 형성하였으며 각 민족, 나라, 문화권의 지리·환경적 요소와 신앙과 종교,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물에대한 경험과 의미를 바탕으로 인류는 보편적 사고의 원형을 형성했으며, 이는 신화와 전설, 민담 등의 구전에 반영이 되었다. 그 가운데 특히 신화는 우주 혹은 세상의 창조, 인간과 영웅의 탄생을 다루고 있으므로, 인류가 지닌 물의 원형적 심상이 최초로 등장하는 문학작품의 한 장르라고 말할 수 있다.


원형적 심상이란 개인, 민족, 사회, 국가, 문명 차원을 넘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반복되는 관습적이며 보편적인 이미지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태양, 달, 불, 나무, 산, 바다, 강, 호수 등을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태양은 하늘, 신, 지도자 등을 의미했으며, 달은 다산과 풍요를 의미했다. 물은 이와 함께 탄생, 번영, 정화, 이별, 죽음, 순환 등을 의미했다. 이러한 원형적 심상은 신화에서 비롯되어 이후 전설, 민담, 민요 등으로 이어졌으며, 고대의 우주관, 세계관, 삶에 대한 시각과 태도 등 종교적, 철학적 사고가 문학으로 흡수되었다. 투르크 민족의 신화는 신화가 풀어내는 서사내용으로 구별할 때 크게 창세신화, 민족파생신화, 영웅신화 등으로 나눌 수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 튀르키예 투르크인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알려진 오우즈족의 창세신화는 전해지는 것이 없다. 창세신화로는 유일하게 투르크계 알타이족과 야쿠트족의 창세신화가 전해진다. 


투르크 신화는 태초의 세상에는 신과 물 이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물속의 흙에서 인간을 만들어 냈으며, 만물이 생성되었다고 묘사된다. 신화에서 보듯 물은 창조의 원천(혹은 원수原水)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태고의 세상에 창조의 신 이외에 물속에 빛과 생명의 여신(악 아나)이 존재했으며, 그녀의 말에 따라 세상과 인간을 창조했다는 묘사를 통해, 고대 투르크인이 잉태와 출산의 기능을 신성시하였으며, 이러한 인식이 물에 직접 반영되어 상징화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오랫동안 고대인에게 물은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로 여성 혹은 여신으로 상징화되었다. 어머니가 자식을 품고 낳아 키워내듯 투르크 문화권에는 물이 전통적으로 생명의 창조, 잉태, 보호라는 이미지가 짙게 깔려있었다.


따라서 물은 어머니로서의 자연을 의미했으며, 나아가 생명의 터전인 자연 세상과 우주를 의미하였다. 즉, 창세신화에서 물은 창조의 원천, 풍요, 생명력, 여성(어머니)의 생산성을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창세신화에서 물이 원수로서 창조와 생명을 의미했다면, 민족파생신화에서는 이에 더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즉, 신화에서 보듯 신성한 물은 늙은 동물에게 다시 힘을 주고 젊게 만들어 주거나, 전쟁에서 죽은 영웅을 되살리는 기능을 한다고 묘사되었다. 이렇게 물의 원형적 심상은 초기에 창조와 생산으로써의 기능을 바탕으로 이후 이에 젊음을 가져오거나 죽은 자를 재생시키는 생명수로서의 이미지가 추가되었다. 이와 함께 민담에서 물은 불로장생의 묘약, 불로수로 등장한다. 초기에 물의 원형적 심상이 창조와 생명을 나타냈다면, 이후 죽은 사람을 살아나게 하는 재생의 이미지가 추가되었는데, 한국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물의 원형적 심상을 통해 특정 개인, 사회, 문화, 국가를 넘어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원형적 사고가 내재해있다는 근거라고 할 수 있겠다. 오우즈 칸 신화는 대표적인 투르크 영웅신화 가운데 하나로 오우즈 부족의 시조인 오우즈 (흉노의 목돌선우, ?~ 기원전~174년)의 탄생과 유년시절, 결혼, 통치, 전쟁 등 오우즈의 삶을 담고 있다. 오우즈 칸의 첫째 하툰은 하늘에서 내려온 빛 가운데 있었다고 한다. 이는 천신의 딸이 현신한 인물로 이마에 북극성을 닮은 푸른 점이 있다고 묘사되어 있다. 신화에 등장하는 왕이나 지도자, 부족장, 영웅 등의 아내는 그가 가진(혹은 후에 가질) 권력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는 데 역할을 한다. 주인공 남성은 하늘, 해 등이 의미하는 천신의 현신이거나 천신이 직접 권능을 부여해 태어난 인물로 혹은 그의 아들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인물의 아내 될 사람은 부족민이 받아들일 만한 그에 합당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즉, 천신보다는 하위에 있으며, 남성이 지닌 권력에 힘을 실어줄 만한 사회적 위치의 인물이다. 이러한 사회적 기대감은 민간신앙에 반영이 되었고, 따라서, 신화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하툰은 예르-수신(yer-su, 지신과 수신이 결합 된 자연신을 대표) 의 딸로 묘사되고 있다. 


강(또는 호수)이 물을 의미한다면, 나무는 대지를 의미한다. 또한, 나무 구멍은 동굴, 우물과 마찬가지로 신화에서 어머니의 자궁을 의미하므로 예르-수는 전통적으로 지모신과 수신의 기능을 동시에 담당한다. 그러나 투르크 창세신화에서 물은 혼돈의 세계에서도 신과 함께 존재했으며, 그 안에 세상과 인간 창조의 재료인 흙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투르크 신화에서 넓은 의미에서 수신은 지신의 상위개념 혹은 그것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신화에서 물이 생명, 창조, 재생, 목숨(삶)을 관장하는 능력을 지녔으므로 이후 민담과 전설에서 물은 신성하며 경외 시 되는 존재였다. 따라서 물을 더럽히거나 모욕하는 행위는 벌을 받거나 그에 상응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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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투르크 민담에 등장하는 쾨르오울루>



특히, 민담과 전설에서는 민중들의 삶을 다루고 있으며, 민중이 지켜야 할 당시의 도덕적 의식과 사회적 규범이 내재하여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금기에는 투르크 전통신앙과 이슬람 종교적 요소가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나무, 산, 바위, 돌, 땅, 강, 물 등을 더럽히거나 함부로 하는 행위는 예르-수신을 노하게 하는 것으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 여겨졌다. 튀르키예 민담에서는 약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이는 장수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물의 원형적 심상에 추가되어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예로 ‘아나톨리아반도 동부에 위치한 도시인 빈굘(Bingöl, 천 개의 호수)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어느 날 쾨르오울루(Köroğlu, 장님의 아들)가 이 지역을 지나다가 생명수로 가득 차 있는 호수를 발견하고 마시려고 다시 찾아가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호수가 수천 개로 호수가 나뉘어 있어 원래의 호수가 어떤 것이었는지 찾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그의 말이 처음 호수를 발견하고 물을 마셨는데, 아직도 살아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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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튀르키예 빈굘  무라트강>



이 이외에도 ‘빈굘을 지나던 쾨르오울르는 강 하나를 발견하는데 그곳에서 소용돌이치는 두 개의 물보라를 발견한다. 강물을 마신 쾨르오울르는 3가지의 신이한 힘을 얻게 되는데 이는 불사(불로장생), 용맹(용기), 오잔(음유시인, ozan)의 시성(詩聖)이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아름다워지는 샘물, 폭포, 호수 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그 가운데 하나로 베르가마-이즈미르(Bergama-İzmir) 근교의 시골에 사는 한 양치기 소녀는 매우 아름다웠다고 하는데, 그 비밀은 바로 신이한 샘물에서의 목욕하는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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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튀르키예 에르주름 토르툼 호수>



이 밖에도 튀르키예 동부지역 에르주름(Erzurum)에는 토르툼 호수(Tortum Gölü)가 있는데, 머리가 나는 샘이 있어 마을사람들은 이곳에 목욕탕을 세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았다. 그러나 샘을 지키는 뱀이 나타나 다시는 물을 이용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뱀은 가정신앙에서 업동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보통 수신의 현령으로 여겨졌다. 한국에서는 수신을 의미하는 용신의 현령으로 뱀(구렁이)가 등장하는데, 튀르키예 투르크 문화에서는 가정신앙의 업동물 가운데 하나로 샘, 폭포, 호수, 강 등을 지키는 수신으로 등장한다.


투르크 신화에서 물은 창조와 생명의 원천으로 나타난다. 이후 원수로서 창조의 원천인 물의 이미지는 물이 생명과 젊음을 주는 생명수의 기능을 하게 만들었다. 민담에서는 이와 함께, 병을 낫게 하거나 아름다워지는 약수로서의 이미지가 추가되어 나타난다. 후에 이를수록 민속에서의 물에 대한 원형적 심상은 역할적 측면에서 구체화되는 측면을 볼 수 있다. 특히, 물 숭배 사상은 초기에 천신숭배 사상과 함께 밀접하게 나타나지만, 이후에는 물의 어머니, 물의 정령 등 수신으로 독립되어 나타나 경향을 보인다. 


물이 생명을 지니며, 그릇되고 부정한 것을 물리치는 정화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과 여성 생산성의 상징이라는 믿음은 초기 신화 속에 등장하는 지도자의 배우자 즉, 왕비/하툰이 수신의 딸, 혹은 수신 그 자체라는 인식으로 확장되었다. 이는 이후 민담에 반영되어 어머니로서의 물이 그 지역의 부족민/민중을 보호하고 그 지역을 수호하는 역할로 그려지게 된다. 이러한 믿음은 물이 여성적 원리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출산에 도움을 준다고 믿게 되었다. 이에 따라 수-아나(Su Ana) 신앙이 이후 구체화 되는데 지역에서 신성시되는 샘이나 우물, 강물을 마시거나 그 물로 목욕을 하면 아이를 갖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기게 되었다. 가령 물을 지키는 수호령이 흰옷을 입고 있으며, 새(의 깃털)나 뱀의 비늘로 들어갈 수 있으며 물 깊은 곳의 바위 밑 궁전에 산다고 믿어지는데 이는 샘, 폭포, 강, 호수 등에 담긴 생명력의 이미지는 물을 수신의 집이자 수신의 권능이 집결되는 장소로 인식하는 바탕이 되었다. 이슬람화 이후 투르크 문화에서 물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몸을 정갈히 하는 우두의식에 사용됨으로써 수신을 숭배하던 이전의 물 숭배 사상에 이슬람적 사고가 첨가되어 물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쳤다. 물을 지키는 정령에 대한 예의보다는 이제 알라를 만나러 가는 길에 정결한 마음과 신체를 준비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물의 기능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었다. 많은 종교에서는 물을 이용하여 정화의식이나 회개의식을 치른다. 이는 물이 표면적으로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것처럼, 물로써 그릇되고 올바르지 못한 생각, 경험 등에 물들었던 마음과 정신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이른바 모방 주술에서 비롯된 행위라고 볼 수 있으며, 물이 지닌 정화의 능력이 원형적 심상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물의 원형적 심상이 창조, 삶, 목숨, 재생, 생명수, 약수, 정화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현대에 이르러서는 장수, 건강, 운명, 제액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과거 물이 신화적 존재물로 신성성을 내포하고 있었으나, 이슬람 기반으로 전통 민간신앙이 혼합되어 형성된 튀르키예 투르크 문화에서 물은 기존의 신화적 의미가 약화되었다.


투르크 문화권에서 물은 음유시인이자 샤먼인 오잔에 의해 신화에서 이어져 민담, 전설에 이르기까지 그 원형적 심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물이 지닌 신성성은 희박해지고 물과 관련된 민속 행위에서는 일상에서 건강과 장수를 빌거나, 운명을 점치거나 운을 트이게 하는 기복적 성격이 짙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비단 물 뿐만이 아니라 투르크 민속에서 전통적으로 신성시하는 밀가루(빵), 숯, 불(연기), 나무 등도 흑주술의 매개체로 등장시킴으로써 해당 대상물과 관련된 민속 행위가 대중들에게는 이제 신성하거나 경외 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을 알 수 없는 옛날의, 혹은 타파대상의 미신의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물은 인간의 삶과 생명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으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신성하게 여기며,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보다 산업, 기술, 과학, 정보 등이 인간의 삶에 더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면서 물을 포함한 환경에 대한 인간의 무관심은 그동안의 전통과 문화를 퇴색시켰다. 


튀르키예도 이러한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통문화와 민속은 일상생활에서 멀어져갔으며, 박물관이나 관광지. 축제의 현장에서만 소비되거나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민속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전통사회에서 지닌 의미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연구자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민속이 과거나 옛것에 머물러 있지만 않고 현대, 지금의 사람들에게 소비되고 관심받기 위해서는 전통적 요소를 발굴하여 현대문화산업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알리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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