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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와 모로코의 외교관계 : 부테플리카 대통령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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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1,706 조회 날짜 24-04-2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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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와 모로코의 외교관계 : 부테플리카 대통령을 중심으로



명민기(지중해지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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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알제리와 모로코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하여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이다. 양국은 다수의 베르베르인이 거주하고, 아랍화되었으며, 프랑스로부터 식민지배를 받는 등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식민지배와 독립의 과정에서는 이 공통점들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현재 양국은 알제리의 독립과 함께 점화된 영토 분쟁 이후 약 60여 년간 대립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모로코가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서사하라 지역 역시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대립은 2021년 알제리의 단교 선언 이후에도 각종 언론전을 이어오고 있으며, 2023년 9월에 있었던 모로코 지진 당시 알제리가 인도주의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이마저도 모로코가 거부를 하는 등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러한 대립의 과정에서 화해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화해의 시도는 1998년 벤제디드(Chadli Bendjedid) 전 대통령 시기에 있었다. 해당 시도는 알제리 내의 이슬람 테러단체가 모로코에 가한 테러 행위로 인하여 무산되었다. 반면 두 번째 시도인 1999년부터 2019년까지의 시기에는 실질적인 화해의 시도와 함께 대립 역시 약화된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이 직접 양국을 방문하기도 하였으며 양국이 교류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독립 이후 지속되어오던 대립의 관계가 해당 시기에는 어떻게 화해의 시도가 가능했을까? 또 어째서 현재에는 다시 대립의 관계로 돌아선 것일까? 국가의 관계는 한 국가, 한 명의 국가 원수로 인하여 좌지우지될 수는 없다. 여러 상황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해당 시기가 부테플리카(Abdelaziz Bouteflika) 전 대통령의 집권기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당시 대통령이었던 부테플리카와 알제리의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알제리의 내전이 끝날 무렵 국정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정권을 잡았다. 당연하게도 그의 목표는 혼란스러운 알제리의 안정과 경제력의 향상이었다. 그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중에서도 <대국민화합정책>, 국내 정치세력 변동, 국내 테러 종식이 해당 시기 양국 관계의 안정을 가지고 왔을 것으로 파악된다.


<대국민화합정책>의 쟁점은 국민화합이었다. 이슬람 세력과의 내전으로 인해 분할되어 있는 자국민들을 화합시키고자 하는 정책이었다. 이전까지 있었던 전쟁, 국경 폐쇄와 같은 여러 대립들은 양국에 많은 수의 난민, 이산가족을 양산한 상황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모로코를 배척하는 행동은 자국민의 화합을 오히려 방해했을 것이며 추가적인 문제를 양산했을 가능성도 높다. 모로코를 포함한 국민화합 정책이 양국에 화해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두 번째 정책은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정치세력의 변동을 꾀한 것이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집권했을 당시 알제리는 군부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군부 세력은 부테플리카 대통령 집권기에 약간의 힘을 잃었지만, 그가 사망한 현재 다시 군부 세력으로 권력이 이동한 것을 통해 기존 기득권이었던 군부 세력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부테플리카는 기존의 군부세력에서 자신의 정치세력으로 권력의 변동을 꾀해왔다. 변동은 성공적이었고 장기집권 동안 유지되었다. 권력층의 변동은 그가 다양한 정책들을 유동적으로 선택하고 시행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을 것이며 화해의 기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국내 상황이 다소 안정되고 군부 세력이 권력을 재독점한 현재 다시 대립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테러를 종식하고자 한 정책 역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의 테러단체들은 이전의 화해 시도를 무산되게 만든 전력이 있었다. 이들을 종식시킴으로써 국내뿐만 아니라 인접국에도 테러 위협 감소의 효과를 가져왔으며 이후 테러 문제에 관한 모로코와의 협력 또한 가져온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테러를 종식시키는 과정에서도 <대국민화합정책>을 통해 용서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평화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이는 양국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평화와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파악된다.


양국이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었던 것에는 시기적으로도 적절한 영향이 있었다. 1991년 양국 대립의 기저에 있던 서사하라 문제는 UN 국민투표에 들어갔다. 또 모로코 전 국왕 하산 2세와, 현 국왕 무함마드 6세 역시 지속적으로 경제적 이익의 증대를 위해 아랍 마그레브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으며 협력을 주장하는 시기였다. 


부테플리카 전 대통령의 화해 시도는 이러한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움직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권의 목표는 국내 안정과 경제성장이었고 모로코와의 화해 시도는 그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양국의 관계는 여러 상황과 이해관계가 맞아야 이루어질 수 있다. 즉 화해의 시도는 시대적 상황과 부테플리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목표, 알제리의 국내적 상황이 맞물려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로코와 알제리의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못할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기저에 위치하여 지속적으로 양국에 문제를 가져다주는 서사하라 문제는 쉽게 해결될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으며, 관련된 타 국가와의 외교관계 역시 계속해서 얽매여 가는 중이다. 거기에 더해 알제리 내의 군부 세력은 권력을 다시 독점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모로코와 화해의 필요성 또한 없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미래세대와 SNS와 같은 변수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현시점에서의 양국의 외교관계는 당분간 쉽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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