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화장품은 할랄 화장품을 대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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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화장품은 할랄 화장품을 대체할 수 있을까?
김 지 수 (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지역원)
얼마 전 ‘달팽이 크림’이 할랄 인증을 취득했다는 헤드라인의 기사를 읽었다. 기사중에는 달팽이 크림에 대한 설명도 있었는데, 소비자 대부분이 달팽이 크림을 ‘달팽이를 “가공”하여, 다시 말해, 달팽이를 갈거나, 다지거나, 죽여서 만드는 화장품’ 이라고 알았지만 사실은 달팽이를 미지근한 물에 목욕시켜서 (달팽이가 기분좋을 때) 생성되는 점액질 성분(뮤신)을 첨가한 것이 우리가 아는 달팽이 화장품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댓글에 ‘할랄 제품은 비건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썼다. 아니라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할랄의 개념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시대다. 국가와 세대마다 할랄에 대한 인식은 다를지언정 ‘할랄’이라는 용어는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 말이 된 듯 하다. 그럼에도 단순한 듯 복잡한 이 행위는 오랫동안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을 뿐 아니라, 할랄 인증을 받은 국내 기업의 소식도 심심찮게 보인다.
[말레이시아 배달앱 ‘Grab’ 내 할랄 교촌치킨 메뉴]
그 중 할랄 화장품은 할랄 산업의 초기 확장분야로 그 역사(?)가 길다. ‘모든 무독성 식물은 기본적으로 허용된다(할랄이다)’는 대전제와 공정과정의 건전성까지 심사하는 할랄인증 기준이 더해진 오늘날의 ‘할랄 화장품’은 K-뷰티 열풍에 힘입어 국내 화장품 기업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해외진출 전략으로 꼽힌다. 동시에 국내 뷰티시장에서는 MZ세대의 ‘가치소비’ 일환으로 비건뷰티(혹은 제품)가 인기몰이 중이다. 치킨과 삼겹살의 나라에서 채식주의자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은 아니고, 반려가구(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구) 수가 증가하면서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식물위주의 성분을 사용하며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비건 제품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커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독성)식물은 할랄이고, 비건 화장품은 식물을 사용했으니 비건 화장품을 개발/사용하면 되는 일 아닐까? (스포일러 : 아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건 제품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 ‘비건’은 채식 식습관에서 비롯된 용어이나, 오늘날에는 생활 전반에 쓰인다. 주로 동물성 원료가 첨가되지 않은 제품이나 음식을 뜻하는데, 화장품의 경우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cruelty-free) 제품까지 아울러 일컫기도 한다. 설명이 모호한 이유는 ‘비건’에 대한 단일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인증 기준도 기관마다 상이하므로 비건 인증 마크 하나로 식물성 원료사용 외 정보는 (공정상 발생할 수 있는 교차오염 여부, 동물실험 여부, 포장재 성분 등) 알 수 없다. 그리고 이 ‘알 수 없음’은 무슬림 소비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알콜이 함유된 화장품은 비건 인증을 취득할 수 있으나 그 함유량이 1% 이상이라면 할랄인증은 취득할 수 없다. 따라서 할랄 네일 폴리쉬는 (아세톤 리무버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수용성 제품이 많다. 반대로, 밀랍을 사용한 립밤은 할랄 인증을 취득할 수 있지만, 동물유래 성분이기 때문에 비건 인증은 취득할 수 없으므로 비건 립밤에는 시어버터, 코코넛 오일 등 식물성 성분이 주로 사용된다.
[이니스프리 말레이시아 홈페이지 내 할랄제품 판매내용]
공정 및 유통과정 역시 할랄 산업에서는 중요한 인증대상이지만 비건 산업에서는 기관마다 다르게 인식한다. 할랄은 생산설비의 분리, 인도적 도축, 원료의 분리보관, 인증제품 단독유통 등 생산시설부터 소비자에게 닿기까지 전 과정의 투명성(Transparency)를 중시하는 반면, 비건은 식물성 원료사용, 동물실험 금지, 친환경적 포장재 사용 등 개별제품의 친환경성에 초점을 맞춘다. 과정의 투명성을 위해 단독 유통망을 개설하는 것도 환경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의견 때문이다.
비건 뷰티와 할랄 뷰티는 소비자의 가치관이 가격책정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내는 대표적인 예시다. 다양한 가치는 추구되고 소비되어 개인의 삶을 착실히 구성한다. 그것은 매일 먹는 밥에 있기도 하고, 매일 쓰는 샴푸에 들어가기도 한다. 또 그것은 우리 집 강아지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신성한 종교의 이름을 걸고 오기도 한다. 참고로 달팽이크림은 최근 오크라 열매에서 점액질 성분의 대체재를 찾아 비건 제품으로 생산되어 지난해‘두바이 뷰티월드’ 박람회에서 선보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