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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를 위한 문명교류의 관계와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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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2,565 조회 날짜 22-10-1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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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를 위한 문명교류의 관계와 소통




김정하(지중해지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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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 우리는 글로벌 사회에 살고 있다. 동시에 타자(他者)의 가치를 상실한 시대를 호흡한다. 산다는 것은 혼자의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와의 공존은 불가피하며 필수 불가결하다. 혼자의 시간을 원한다면 그것은 함께하는 삶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 역시 사회적 삶의 연장선이다. 

우리는 교류와 관계 그리고 공존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삶의 실타래를 적절하게 풀어가는 것이 삶의 본질인 것이다.

타자의 가치를 언급했다. 타자의 존재가 필요한 이유는 나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함이다. 자신의 삶은 스스로가 주도하지만, 그 과정은 수많은 선택, 즉 사회관계의 매듭 풀이에 의해 좌우된다. 

(반복적인 관계의 성립) 우리는 개체로 존재할 수 있겠지만, 이 경우 삶은 정체(停滯)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흔적의 의미를 전달하지 못할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타인과 함께하는 삶에서 비롯된다. 타인은 나의 거울이며 나 역시 그러하다.

우리는 일상을 통해 관계의 매듭을 짓고 풀기를 반복하며 역사는 그 흐름의 연장선에 위치한다. 관계는 다양하고, 유기적이며 가변적이다. 관계의 성립은 삶의 시작으로 그 여정을 준비한다. 

(차이의 발생) 관계를 구성하는 주체들 간에는 차이의 여러 요인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차이는 관계 구도 성립의 요건이다. 역사는 차이에 의해 성립되고 변천을 반복한다. 공동체와 그 구성원 간의 사회성도 이러한 원리에 근거한다. 문제는 차이의 요인들을 어떻게 고려하는가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차이를 경계한다. 어쩌면 학습과 반복에 의한 선입관일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차이에 대한 인식에 앞서 이에 대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차이, 즉 서로의 다름에 대한 인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차이를 차별성(Discrimination)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다. 즉 나와의 다름을 나와는 공존할 수 없으며 삶의 동일한 여정에 있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타적 차이는, 과거 18∼19세기 서구문명권의 역사연구에서 생물학적이고 유전학적이며 때로는 우열의 논리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발상은 종시(終始)를 전제한 직선적 시간 인식의 문명권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둘째는 차이의 요인들을 다양성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다양하다는 의미는 획일적인 기준의 비교와 이로 인한 우열의 결과보다는 서로의 존재와 필요 그리고 상호작용에 부응한다. 이러한 사회성(社會性)은 시간의 시작과 끝을 전제하지 않는다. 시간은 그 방향이나 목적을 지향하지 않는다. 이처럼 차이는 문명권의 시간인식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었다. 다시 말해 시간인식은 문명권의 정체성 형성에 보다 큰 영향을 주었다. 

(상호작용의 필연성) 관계를 구성하는 요인들 간의 상호작용은 이들 사이에 형성된 차이의 실체와 정도에 비례한다. 차이가 크면 그만큼 상호작용의 폭과 깊이도 달라지는데, 상호 간 이해관계가 크다면 상호작용의 차원도 이에 비례한다. 

상호작용은 말 그대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흐름이다. 이는 성리학의 음양오행으로 볼 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미워하고 미움을 받는 것에 근거한다. 더불어 개별적인 관계 작용이 아니라 관계를 구성하는 주체들 간의 다원적이고 유기적인 관계성이다, 

관계의 큰 틀에서 보면 협력과 경쟁의 이중적인 흐름이다. 협력은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는 것을, 경쟁은 미워하고 미움을 받는 것이다. 그 자체로 이중적이지만, 동시에 상호 간 복합적으로도 작용한다. 페르시아 전쟁(499∼449 BCE)의 관계구도에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 특히 아테네는 페르시아 제국의 권력의지를 지향했고, 페르시아의 절대 권력은 도시국가의 자유와 평등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재 요인) 관계는 영원하지 않다. 성립된 순간부터 이미 변화의 여정에 들어선다. 관계의 요인들도, 유형도 그러하다. 자연이 생장염장으로, 우주가 원형이정을 따르듯이 우리의 삶도 생로병사(生老病死)에 따라 곡직(曲直), 염상(炎上), 추상(秋霜), 윤하(潤下)의 단계를 따른다. 

시간의 흐름에는 공간의 확장성이 동반된다. 이처럼 관계는 항상 새로운 양상을 지향한다. 그 과정을 통해 기존의 관계구도는 새로운 시공간의 관계구도로 변천되고, 역할의 변수 또는 외적인 요인이 역사의 무대에 새롭게 등장한다. 중재는 징검다리의 역할이다. 관계구도의 변천을 매개하기 때문이다. 중세 이베리아의 역사에서 소고트족과 로마/이베리아 원주민 간 관계를 중재한 이슬람은 새로운 변수로서의 중재요인(Mediation Factor as the Variable)이었던 반면,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페르시아의 관계구도를 중재한 알렉산드로스 제국은 개입형의 중재요인(Mediation Factor for Interventio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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