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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문명의 집적소 시칠리아(Sic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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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35 조회 날짜 21-03-2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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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문명의 집적소 시칠리아(Sicily) 



윤용수(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지역원)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고, 지중해의 배꼽이라 불리는 지리적 위치때문에 시칠리아에는 지중해에서 발생한 모든 문명들의 흔적이 중첩적으로 누적되어 있는 곳이다. 지중해의 주요한 역사적 굴곡마다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했던 페니키아, 고대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비잔틴, 아랍 이슬람, 노르만을 포함한 유럽 제국주의 국가 등 인류의 주요 문명들이 연이어서 시칠리아를 차지했고 그들의 흔적을 시칠리아에 남겼다. 지중해를 비롯한 전 세계의 대부분이 지역들이 문명과 문화의 교차로임을 자임하고 있지만, 지구상에서 문명의 교차로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지역으로 시칠리아를 지명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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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에 정착한 최초의 인류는 시칠리아의 북쪽의 이탈리아반도에서 남하해서 시칠리아의 동부 지역에 정착한 시켈로(Siculi)인,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주해 와서 중부 지역에 정착한 시카노(Sicani)인, 에게해 지역에서 이주해 와서 서부 지역에 정착한 엘리모(Elimi)인들로 추정된다. 즉, 시칠리아는 태생 때부터 지중해의 이민족들이 정착하여 살아온 혼종성의 특징을 지닌 지역으로서,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철기 시대인 BCE 12세기부터 혼종성의 특징을 가지고서 잉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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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시칠리아인들은 그리스 문명의 발상지인 미케네와 교류하며 펠로폰네소스반도의 그리스인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가졌다. BCE 8세기경 인구 과잉으로 인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펠로폰네소스반도를 떠난 그리스인들은 지중해 서쪽으로 항해하여 근거리에 있던 시칠리아에 정착했고, 시칠리아의 동쪽 해안지역인 시라쿠사(Syracuse) 등에 그리스식의 폴리스를 세우며 시칠리아의 그리스화를 시작했다. 연이어서 그리스의 주요 민족들이 척박한 그리스 땅을 떠나 풍요로운 시칠리아로 앞다투어 진출했고 그들의 폴리스를 건설해 나갔다. 이오니아인들은 메시나(Mesina), 칸타니아(Catania) 등에 정착했고, 도리아인들은 시라쿠사, 젤라(Gela), 아그리젠토(Agrigento) 등에 폴리스를 건설했다. 마그나 그라이키아(Magna Graecia)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다.

그리스인들이 시칠리아의 동부 지역을 그리스화하고 있을 때 시칠리아의 서부 지역은 지중해의 해상 왕국인 카르타고가 잠식하고 있었다. 지중해 동부의 페니키아인들이 건설한 카르타고는 뛰어난 항해술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거대한 해상 국가를 형성하며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며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현재의 튀니지에 거점을 구축한 카르타고인들이 그들의 세력을 이탈리아반도로 확장하기 위한 첫 번째 교두보는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반도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칠리아였다. 오늘날 시칠리아 주도인 팔레르모는 BCE 8세기에 카르타고인들이 건설했고, 이후 카르타고인의 본거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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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E 8세기경 시칠리아를 동서로 양분하고 있던 그리스와 페니키아의 충돌이 마침내 벌어졌다. 그리스식의 폴리스였던 시칠리아 북부의 메시나와 시라쿠사간 충돌이 일어나자, 메시나는 로마에 지원을 요청했고 시라쿠사는 카르타고를 끌어 들였다. 포에니 전쟁의 시작이다. 시칠리아 폴리스들의 대리 전쟁으로 시작된 로마와 카르타고간의 포에니전쟁은 지중해 패권국으로서 로마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였다. 3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완전히 제압한 로마는 시칠리아를 장악했고, 시칠리아를 로마의 첫 번째 속주로 삼았다. 지중해의 중심을 장악한 로마의 기세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비옥한 농토에서 풍부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시칠리아는 로마의 곳간이 되었다. 

이후에도 시칠리아의 운명은 지중해의 운명과 괘를 같이 했다. 로마가 쇠퇴하자 비잔틴이 시칠리아를 차지했고 연이어 아랍 이슬람이 시칠리아의 주인이 되어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반도를 연결하는 무역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아랍 이슬람 세력의 시칠리아 지배는 연대기상으로는 200여년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랍 이슬람 세력을 추출할 노르만왕국이 아랍 이슬람 문화와 제도를 전폭적으로 수용하면서 시칠리아 문화와 언어 지층에 아랍 이슬람적 요소가 축적될 수 있었다.

이탈리아반도 북쪽에서 남하하여 메시나(Messina) 해협을 건너 시칠리아를 장악한 노르만인들은 시칠리아에 공존하던 다양한 민족들에게 관용을 베풀었고 융합을 구현했다. 시칠리아의 노르만왕국은 그리스인을 팔레르모의 토후로 삼았고 아랍인에게는 재정 관리와 군의 지휘를 맡겼다. 시칠리아 도시 전역에 기독교 교회와 수도원과 이슬람 사원이 공존했다. 노르만·라틴·그리스인·아랍인이 함께 공존하며 번영을 누리는 문화 융합 국가로서 시칠리아 왕국이 탄생한 것이다. 시칠리아의 전성기였다, 시칠리아 왕국이 시칠리아를 넘어 이탈리아 반도는 물론 프랑크 왕국과 비견되는 지중해의 절대 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러한 융합과 관용의 힘이 아닌가 한다. 

시칠리아의 융합적 성격은 시칠리아의 주기(flag of Sicily)에서도 잘 나타난다, 시칠리아의 주기는 ‘트리나크리아(Trinacria)’로 불린다. 트리나크리아는 그리스인들이 시칠리아에 붙인 옛 지명으로서 시칠리아의 섬 모양을 의미하는 ‘삼각형 모양의 땅’이란 뜻이다. 트리나크리아는 세발 달린 메두사를 형상화하고 있다. 세 개의 발은 시칠리아 서쪽 마르살라(Marsala)의 릴리베오(Lilibeo)곶, 남쪽 빠치노(Pachino)의 파쎄로(Passero)곶, 동쪽 메시나(Messina)의 페로로(Peloro)곶을 가리킨다. 각각의 발은 지역적으로 유럽, 아프리카, 중동을 향하고 있고, 문화적으로는 시칠리아 문화 지층의 핵심인 그리스, 아랍과 유럽을 가리키고 있다. 뱀 대신 밀로 장식된 메두사의 머리는 시칠리아가 지중해의 대표적 밀 생산지임을 상징한다. 주기의 배경색인 붉은색은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의 상징색이고, 노란색은 코를레오네(Corleone)의 상징색이다. 팔레르모와 코를레오네는 시칠리아에서 폭정을 일삼은 앙주가에 대한 시칠리아인의 저항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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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한 섬이지만 시칠리아는 이탈리아와 색깔이 다른 공간이다. 시칠리아인들은 ‘우리는 시칠리아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시칠리아 사람은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다. 시칠리아인은 그들 나름의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괴테는 ‘시칠리아가 없었다면 이탈리아는 영혼에 아무런 잔상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모든 핵심이 있다’고 적고 있다. 시칠리아에는 이탈리아 반도에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의미다. 아마 그 무엇인가는 문화 융합과 교류가 만든 혼종의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시칠리아에 문명의 빛을 비춘 이들은 그리스인이었고, 시칠리아 문화와 역사를 풍요롭게 한 것은 라틴인, 아랍인, 노르만인이었다. 융합과 교류를 통해 집적된 시칠리아 왕국의 힘은 16세기에 시칠리아를 지중해의 강성 국가로 발전시켰다. 

지중해의 거의 모든 문화와 문명이 중첩적으로 퇴적되며 녹아 있는 시칠리아는 지중해 문명의 특징을 대변하는 문화의 다양성과 문화교류 및 융합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지역이다. 지중해의 각 시대별 패권 국가들의 발전된 지식과 문화는 시칠리아에 녹아 들었고 시칠리아의 문화를 살찌우고 풍요롭게 했다. 혼종과 융합을 자양분 삼아 배양되고 성숙된 문화의 결실을 시칠리아는 잘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과 문화, 역사는 교류하며 발전해 간다는 경험적 가르침에 흠뻑 빠져 있는 필자에게 시칠리아는 이런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시켜 주는 소중한 연구의 자산이자 보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휩쓸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진정되면 맨발로 시칠리아를 밟고 느끼며 그 문화와 역사의 교훈을 직접 체험하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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