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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S Culture _ 동부지중해의 예술 – 투르크 이슬람 세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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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13,861 조회 날짜 22-07-0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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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지중해의 예술 – 투르크 이슬람 세밀화



강태희(터키 유누스엠레 문화원, felsefe@naver.com)




이슬람 세밀화는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 예술, 나아가서는 당대의 생활 모습까지도 보여주는 이슬람 세계의 축소판이다. 이슬람에서 형상을 창조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기에 회화와 조각이 크게 발달하지는 못했지만, 세밀화는 예외적으로 기록과 교육의 목적성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이슬람의 절제된 회화 예술의 규칙을 준수하며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이슬람 세밀화는 과학과 의학, 문학, 종교, 역사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며 당시의 시대상을 세밀화에 반영하였다. 즉, 이슬람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이 이슬람 세밀화로 재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슬람 세밀화 중에서도 투르크 족이 남긴 세밀화들은 투르크 족의 이동 경로를 따라 다양한 스타일로 발전하며 이슬람 세밀화의 정수를 선보였다. 투르크 이슬람 세밀화의 기원은 일반적으로 위구르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위구르 투르크 인들이 남긴 벽화와 천에 그려진 인물들의 얼굴과 의상, 장신구, 머리 모양은 투르크 이슬람 세밀화에 몇 백 년 동안 반복하여 나타나는 특징이다. 위구르 시대 세밀화 속 인물들은 둥근 얼굴과 얇은 눈썹, 가느다란 눈, 얇은 코와 작은 입을 가지고 있으며 중앙아시아 스타일의 의상과 장신구와 함께 묘사되었다(GRUBE, Ernst J., The Classical Style in Islamic Painting, Edizioni Oriens, 1968, p.16)

머리 모양으로는 어깨 아래로 길게 땋아 늘어뜨린 모양이 지배적이었는데 때로는 계급이나 인물의 정체성과 관련된 머리 장식이 추가되기도 하였다(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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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9세기 위구르 베제클리크 벽화 속 여성의 모습(베를린 주립 박물관)


위구르 시대의 세밀화 화법은 셀주크 투르크에 의해 더욱 발전해나갔다. 셀주크 시대에는 첫 이슬람 세밀화 학교가 바그다드에 세워졌는데 이곳에서 다수의 위구르 투르크 인들이 세밀화가로 활동하였다. 시간이 흐르며 셀주크 시대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첨가되기도 했지만, 셀주크 시대의 세밀화는 위구르 투르크 인들과 같은 심미 취향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그 계보를 이어나갔다고 할 수 있다(Hicabi Gülgen, Ana Hatlarıyla Türk İslam Sanatları Tarihi, Emin Yay., Bursa 2012, s. 101.)


터키의 톱카프 궁전에 보관되어있는 압드 알라흐만 알수피(Abd al-Rahman al-Sufi)의 ‘붙박이별의 서(Kitab Suver el-Kevakib es-Sabite)’ 사본에서는 위구르 세밀화 스타일이 잘 반영된 셀주크 시대의 세밀화를 확인해 볼 수 있다(그림 2). 이 사본에 그려진 카시오페이아와 처녀자리를 나타내는 인물의 얼굴 묘사와 양 볼을 향해 구부러진 머리 모양, 늘어뜨린 땋은 머리는 위구르 시대에 그려진 벽화 속 인물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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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처녀자리(좌), 카시오페이아(우), 붙박이별의 서(톱카프 궁전 박물관 A. 3493) 

 

아나톨리아로 세력을 넓힌 셀주크 왕조는 아나돌루 셀주크라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했다. 그리고 아나돌루 셀주크 왕조의 수도인 이코니움(현재 터키의 콘야)에서 13세기 셀주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 탄생하였다. 아나돌루 셀주크의 세밀화가 압뒬뮈민 엘 호이(Abdülmümin el-Hoyi)는 7세기 등장한 아랍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왈카와 귤샤(Varka ve Gülşah)’를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71장의 세밀화로 그려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위구르 회화 속의 얼굴 표현을 따르고 있으며, 13세기 아나돌루 셀주크 시대의 의복과 머리 형태, 장신구들로 묘사돼 있다.  

투르크 인들이 착용하던 소매가 달린 긴 상의인 카프탄은 소매의 폭과 모양, 옷깃의 여밈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왈카와 귤샤는 일반적으로 소매가 넓고 옷깃이 V 모양으로 깊게 파인 카프탄을 입고 있다. 때로 비극적인 장면에서는 소매가 긴 카프탄을 입고 소매를 이용하여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그림 3). 후대의 세밀화에서도 긴 소매는 장례식에서 눈물을 닦거나 슬픔에 젖은 얼굴을 감쌀 때 사용되었다. 혹은 춤을 추는 무희들의 움직임을 따라 소매가 늘어지며 흥겨운 몸짓에 동세를 더하기도 했다. 이에 카프탄의 긴 소매는 장면에 걸맞은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기 위하여 사용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카프탄 아래에는 폭이 좁거나 넓은 형태의 바지를 입고 있는데, 대개 남자들의 바지가 더 좁았다. 이는 전쟁에서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투르크 족의 전형적인 스타일이었다. 이 모습은 전투 장면을 보여주는 왈카와 귤샤 세밀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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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귤샤의 죽음, Varka ve Gülşah(톱카프 궁전 박물관 H.841)



압뒬뮈민 엘 호이는 상징적인 동물들을 그려 넣음으로써 이야기의 의미를 더욱 가중시켰는데, 왈카와 귤샤가 처음으로 이별하는 장면에는 인내를 뜻하는 수탉이 함께 그려져 슬픔에 잠긴 연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보태고 있다(그림 4). 이러한 상징들과 함께 ‘왈카와 귤샤’ 세밀화의 가로 형태의 넓고 안정적인 구성과 대칭적인 인물의 배치 그리고 배경을 꾸미는 루미 모티프와 다양한 색들은 아나돌루 셀주크 시대 세밀화의 특징들을 보여준다.

 ‘왈카와 귤샤’는 오늘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투르크 이슬람 세밀화 중 하나이자 셀주크 시대의 회화 예술에 근간이 되는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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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왈카와 귤샤의 첫 이별, Varka ve Gülşah(톱카프 궁전 박물관 H.841) 



오스만 시대 세밀화는 셀주크 시대의 스타일을 따랐으며, 티무르 조와 투르크멘의 세밀화에도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단순한 색과 구성을 선호했던 셀주크 시대와는 달리 오스만 제국은 화려한 색과 모티프로 장식된 건축물로 공간을 나누면서 보다 계획적으로 장면을 구성하였다(그림 7).

오스만 제국의 세밀화는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현 터키 이스탄불)을 정복한 후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오스만 제국의 7대 술탄 메흐멧 2세(Fatih Sultan Mehmet, 1432-1481)가 통치하던 15세기에는 투르크멘 스타일과 함께 이탈리아의 사실주의적 기법이 도입되어 새로운 스타일의 세밀화가 탄생하였다. 이때 그려진 것이 메흐멧 2세의 초상화로 유명한 세밀화이다. 그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 음영과 사실적인 얼굴 묘사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회화 기법으로 투르크 세밀화에 서양의 화풍이 도입된 중요한 예로 남아있다(그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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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메흐멧 2세의 초상화, (톱카프 궁전 박물관 H.2153, y.10a)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쉴레이만 1세(Süleyman I, 1494-1566)의 통치 시기에도 기존의 세밀화와는 다른 오스만 제국만의 독창적인 세밀화가 제작된다. 이는 예술가이자 수학자, 역사학자이기도 했던 마트락치 나수(Matrakçı Nasuh, 1480-1564)가 쉴레이만 1세의 첫 이란 원정을 세밀화로 그린 “Mecmu-i Menazil”이라는 이름의 필사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트락치 나수는 완전히 자신만의 스타일로 이스탄불과 다른 도시들을 지도로 그려냈으며, 여기에 각 도시의 건축 양식과 그 지역의 동식물들까지도 자세히 묘사해두었다. 그는 도시의 모습을 위에서 바라본 전체적인 시각을 통해 그려냈으며, 소실점을 활용하기도 하면서 지금까지의 대상을 보는 관점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그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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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힐라의 모습(일부), Beyân-ı Menâzil-i Sefer-i Irâkeyn, (이스탄불대학도서관, TY, nr. 5964, vr. 68a) 



이후 무라트 3세(Murad III, 1574-1595)가 집권하던 시기에는 뛰어난 궁중 세밀화가들에 의해 오스만 제국 세밀화의 걸작들이 많이 탄생하였다. 또한 이 시기부터 오스만 제국 왕조의 역사와 당대 술탄들의 이야기가 필사본으로 제작되어 오늘날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궁중 생활을 세밀화를 통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그림 7).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와 함께 꽃을 피우던 오스만 제국의 세밀화는 17세기 말부터 시작된 제국의 쇠락과 서구 문물의 영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튤립 시대를 대표하는 세밀화가 압뒬제릴 첼레비(Abdülcelil Çelebi, 1680-1732)의 세밀화에는 오스만 제국의 회화가 서양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들이 명백히 드러난다. 필명 레브니(Levnî)로 활동한 압뒬제릴 첼레비는 세밀화에 인물의 외형적 특징들을 포함시켰다. 이는 위구르 시대에 그려진 인물들을 모사하던 전통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변화였다. 이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고 유사한 형태를 고수해온 이슬람 세밀화의 정신이 오스만 제국 말기 크게 요동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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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메흐메드 3세의 할례 연회 中, Sûrname(톱카프 궁전 도서관 H. nr. 1344, vr. 338-339)



투르크 이슬람 세밀화는 이렇듯 세대를 거치며 투르크 세밀화의 근간이 되는 요소들을 답습하기도 하고, 때론 변화시키기도 하면서 발전해나갔다. 마치 한 사람이 그린 듯 비슷하지만, 또 자세히 들여다보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몇 백 년 동안 이어진 이슬람 회화의 엄격한 규칙 속에서 예술가들의 혼과 각 시대의 숨겨진 특징들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밀화를 보는 즐거움이자 묘미이다.




<참고 문헌>

ÇAĞMAN, Filiz - TANINDI, Zeren, Topkapı Sarayı Müzesi İslam Minyatürleri, 

Ali Rıza Baskan Güzel Sanatlar Matbaası Yay., İstanbul 1979.

GRUBE, Ernst J., The Classical Style in Islamic Painting, Edizioni Oriens Yay., Germany 1968.

GÜLGEN, Hicabi, Ana Hatlarıyla Türk İslam Sanatları Tarihi, Emin Yay., Bursa 2012. 

MAHİR, Banu, Osmanlı Minyatür Sanatı, Kabalcı Yay., İstanbul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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