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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S Culture _ 그리스 신화와 2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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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135,654 조회 날짜 20-12-3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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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와 21세기


최혜영


1. 왜 신화인가?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은 세계화와 인터넷의 발달 등으로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의 차이가 쉽게 사라져버리는 '상상의 공동체' 시대에 살고 있는 듯 하다.  젠센(Rolf Jensen)은 21세기를 꿈의 사회(Dream Society)라고 불렀으며, 핑크(Daniel H. Pink)는 창의성, 감성, 거시적 안목이 중시되는 새로운 미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오늘날은 참신하면서도 꿈같은 아이디어와 콘텐츠가 개인 및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화는 옛 이야기이면서도, 미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신화에는 긴 세월에 걸쳐 인간들이 상상했던 온갖 신기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수없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요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 어린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신화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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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로고] 


신화가 유행하면서 자본주의 마케팅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브랜드를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 한다’는 슬로건 아래 많은 기업이 그리스 신화를 자신들의 브랜드 명으로 차용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로고인 머리를 풀어헤친 여성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이다. 사이렌들이 지극히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서 선원들을 꾀었듯이, 치명적일만큼 맛있는 커피로 손님을 끌겠다는 스토리가 담겨져 있는 것일 것이다. 스포츠용품 전문 브랜드 나이키는 승리의 여신 날개를 형상화한 로고를 쓰고 있다. 이 운동용품을 쓰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암시를 담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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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들이 먹고 마셨다던 불사의 음식 암브로시아와 넥타는 암바사와 넥타라는 음료로 출시되었다. 넥타와 암바사 보다 더 인기있는 음료는 박카스인데, 이 역시 신화에서  나왔다.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 신의 로마식 이름이 박카스인 것이다. 상품 브랜드 명에서 그리스 로마 신들과 관련한 용어를 많이 쓰는 것은 일종의 귀족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신들과 관련된 것이었다고 할 때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나, 약간의 권위의 느낌, 또한 문학이나 예술 등 요즘 여러 통로를 통해 친숙해진 정서감 등을 모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그리스 신화는 문학, 예술, 학술용어, 생활언어 등등에서 활용되고 재생산되면서 우리 삶 곳곳에 살아 있는 듯하다. 하늘에도 그리스 신들로 가득 차 있다. 행성 이름은 아예 금성(비너스), 화성(마르스), 수성(머큐리) 등 신 이름으로 되어 있다. 천왕성은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를, 해왕성은 바다의 신 넵튠(Neptune, 그리스명은 포세이돈)을, 명왕성(저승왕의 별)은 저승의 신 플루토(Pluto, 그리스명은 하데스) 이름을 번역한 것이다.  미 항공 우주국 NASA에서 달나라 여행에 쓰인 우주선 이름을 아폴론이라고 했던 이유는 자명하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태양의 신 아폴론이 오누이 관계이니, 동생의 이름을 달고 오는 우주선을 깐깐한 아르테미스가 환영해주기를, 즉 무사히 착륙시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이런 이름은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품에도 자주 쓰인다. 하늘의 신인 우라노스의 이름이 당시 새로 발견된 물질에 부쳐져서 우라늄이라 불리게 된 것처럼. 또 한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스테디셀러가 있었다. 화성은 영어로 마르스, 즉 전쟁의 신 이름을 딴 별이며, 금성은 비너스, 즉 사랑의 여신 이름을 딴 별로, 이 책의 메시지는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행성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다른 기질과 특성을 가지므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지혜롭게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게 하였다는 왕 미다스의 신화에서부터 나온 <마이다스의 손>, 목축신 판이 소리를 지르면 온 사방이 놀랐다고 해서 판의 이름을 딴 <패닉 panic>, 멘토, 아킬레스 건, 오이디푸스(혹은 엘렉트라) 콤플렉스, 나르시시즘(narcissism).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 등등, 천체에서 생활용어, 학술 용어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신화의 세계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2. 신화, 종교, 과학 


신화는 미토스(Mythos), 과학은 로고스(Logos)의 영역으로 구분되곤 한다. 과학은 자연계를 합리적,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이지만, “왜” 라는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물음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답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 그리하여 아인슈타인(A. Einstein)은 종교가 없는 과학은 마비될 것이며, 과학이 없는 종교는 눈멀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신화 혹은 종교와 과학이 서로 단순한 갈등 관계가 아니라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는 의미이다. 푸코(M. Foucault)도 현대 부르주아 사회의 생명은 합리성, 효율성, 기술성, 생산성에 있다고 보면서, 이의 대안으로 고대 그리스 사회를 제시한다. 실제와 환상, 역사와 신화, 자연과 인간, 이성과 쾌락, 로고스와 미토스가 의좋게 짝지었던 시대로의 복귀를 주장한 것이다. 실제로 신화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는 꼭 대립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과학이 발달할수록 신화적 상상력은 현실적으로 채워질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적 상상력과 관련하여서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 나우플리온에 있었던 카타노 샘은 헤라가 해마다 목욕하였다는 곳이다. 이곳에서 헤라가 목욕하고 나면, 처녀성과 아름다움을 회복하곤 했다고 한다. 2012년 노벨 의학상은 유도 만능 줄기 세포를 발견한 학자에게 돌아갔다. 이는 사람의 줄기 세포를 떼어내어 활성화시킨 다음에 다시 그 사람에게 주입하는 원리를 활용하고 있다. 요즘은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피부를 젊게 하는 시술이 유행한다고 한다. 마치 헤라가 샘에 가서 목욕하여 젊음을 되찾았듯이, 요즘은 줄기세포로 젊은 피부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지하의 왕 하데스는 착용하면 몸이 보이지 않게 되는 투구, 혹은 외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현대 최고의 판타지 문학이라는 <반지의 제왕>의 호빗족 프로도나 해리 포터도 몸을 보이지 않게 하는 투명 외투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오늘날 판타지 문학이나 영화에까지 투명 외투는 자주 등장하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 듀크대 전자공학과 교수팀 등이 빛의 반사 기술을 이용하여 사물을 숨길 수 있는 인공 신기루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는 뉴스가 나왔다. 아직 실제로 활용되기 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이도 어느 순간 현실이 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스 여신들은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 아프로디테의 매력이 가장 뛰어났던 것은 남편 헤파이스토스가 선물한 <케스토스>라 불리는 허리띠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 허리띠가 불러오는 성적 매력에는 어떠한 남성도 굴복하였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남자를 유혹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한 여성이 자신의 비밀무기가 <페로몬> 향수였다고 말하였다는 기사이다. 어쩌면 헤파이스토스는 대장장이의 신답게 화학 성분 등을 이용하여 ‘페르몬 향수’ 같은 것을 가득 묻힌 허리띠를 아프로디테에게 만들어 주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나만 더, 탈로스는 헤이파스토스, 또는 다이달로스가 만들었다는 청동 인간이다. 탈로스는 미노스 왕을 도와 크레타 섬을 지키는 역할을 맡아 적이나 법을 어기는 자를 처벌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요즘 나오는 로봇은 청동인간 탈로스를 실현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인간 모형의 로봇, 말하는 로봇 등 갈수록 다양한 종류의 로봇이 출시되고 있다. 

참고로 그리스 신화 및 문명과 더불어 서양 사상의 주요 흐름을 이루는 것은 유대-크리스트교이다. 구약 성서, 첫 장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고 되어 있다. 요즘 유비퀴터스 기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말로써 스마트 TV의 음량을 늘이거나 줄일 수 있고, 커피포트의 물을 끓이게 하고, 자동차의 시동을 걸 수도 있다. 우주가 하나님의 유비퀴터스 집이라면, 하나님이 음성으로 명령을 내려서 무엇인가를 이루게 하였다는 말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처녀 마리아가 아기를 낳았다는 이야기도,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였다는 기적 이야기도 요즘 같은 DNA 복제 시대에는 가능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런 점에서 종교와 과학과 신화는 <한 지붕 세 가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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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리시움>에서 지구 위의 낙원 엘리시움] 


아직 종교와 신화의 세계가 현실적으로 다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지만, 최근의 영화들은 직간접적으로 이를 보여주는 듯하다. 최근의 블록버스터 영화들 가운데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주제로 한 것들이 많았다. 퍼시 잭슨 시리즈 영화, 타이탄, 헤라클레스 등 직접적으로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것과, 해리 포터 시리즈나 나니아 연대기처럼 그리스 신화 캐릭터를 대거 활용한 것들이 있었다. 또한 그리스 신화의 세계관을 재현한 듯한 영화들이 있는데, <엘리시움>과 <인타임>이라는 영화가 이에 속한다.  

엘리시움의 뜻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만이 죽은 뒤에 가서 산다고 생각한 낙원의 섬 이름인 엘리시온에서 나왔다. 인류의 미래 사회를 다룬 이 영화는 인류 가운데 소수의 선택받은 자는 지구에서 떨어진 공중 낙원 엘리시움에서 거주하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황폐한 지구에서 열악한 삶을 산다는 설정이다. 엘리시움은 모든 환경이나 조건이 아름답고 쾌적한 낙원의 세계이다. 아파도, 얼굴이 반쪽 날아가도 치료하는 기계에 들어가면 세포가 완벽하게 재생되어 치료된다. 영원한 생명을 가졌던 그리스의 신들처럼 살게 되는 것이다. 파리의 최번화가인 샹젤리제의 뜻도 ‘엘리시온의 들판’이라는 의미이다. 

<인타임>이라는 영화에서는 선택받은 상류층 사람들은 20대의 모습 그대로 거의 영원히 살 수 있는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정된 시간이 되면 심장마비로 죽어 나간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는 상류층 한 가족의 여자 주인공과 그의 엄마, 외할머니가 동시에 나오는 장면인데. 모두다 20대의 외모를 가져서 나이가 구별이 안된다. 요즘처럼 ‘침대는 과학이요, 외모는 의학’이라는 우스개가 통하는 시대에서는 능력이 있으면 성형을 거듭하여서 미남미녀로 거듭나고, 역시 능력이 있으면 역분화 줄기세포를 이용하여서 치료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시대로 들어갈 가능성도 커지게 되었다. 이는 그리스 신들의 세계를 그대로 연상시킨다. 그리스 신들은 모두 불멸의 생명을 가졌으며, (헤파이스토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절대 미남미녀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 신들이 힘 있고, 아름답고 불멸하지만 성격적 허물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듯이, 가까운 미래에도 인간들 가운데서 인격은 제멋대로이지만 넘쳐나는 돈으로 성형한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오래 오래 살아갈 이들이 나타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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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타임>, 할머니, 어머니, 딸의 모습] 

    

3. 그리스 신화의 특징


신화라는 말의 그리스어 미토스(mythos)가 모든 종류의 이야기를 의미하였듯이,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는 인간 정신의 다양한 면모들을 이야기 속에 담아내었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과 나라가 저 나름의 아름다운 신화를 가지고 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는 양과 질에서 풍성하고, 높은 예술적 가치를 재생산해왔다는 점에서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신화 자체의 재미, 다양성, 깊이뿐만 아니라, 수천 년에 걸쳐서 유럽 문화, 문학과 예술적 상상력의 보고가 되어왔던 것이다.    

그리스인들에게 신화는 집단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적 코드였다. 삶 자체를 신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였으므로, 자연의 근원, 자연 현상, 계절의 주기, 동식물 등도 신화로 설명하였다. 천둥과 번개, 바다, 강, 땅, 곡물, 포도주, 무지개, 지하세계  등등 온갖 자연물이나 자연 현상뿐만 아니라, 조화, 아름다움, 분쟁, 용기 등 추상적인 것에도 신의 이름을 붙였다. 그들의 의식주 자체가 신화로 뒤덮여 있었다. 빵은 데메테르 여신의 선물이며, 포도주는 디오니소스 신의 선물이고, 벼락이나 천둥은 제우스의 힘이 표출되는 것이었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해와 달로서 그들을 비추이며, 바다에 나가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자리 잡고 있다. 또 지하 세계에는 지하의 왕과 왕비인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왕좌에 앉아있고, 저승의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뱃사공 케이론에게 노잣돈을 건네주어야 무사히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매일 사용하는 컵, 접시, 항아리 등에도 신화의 친숙한 내용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화폐에도 신의 모습이나 그 상징물이 새겨져 있게 마련이었다. 길모퉁이나 사거리 등에는 성기가 돌출된 헤르메스 석상이 장식되어 있었으며, 아고라의 공공건물과 아크로폴리스의 신전 박공도 마찬가지로 신들의 이야기로 장식되어 있었다. 젖먹이 때부터 어머니나 유모나 자장가와 같이 들려주는 신화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나서, 글을 읽을 즈음이면 호메로스 이야기를 줄줄 외울 정도가 된다. 정치가들도 신화를 국가와 가문의 위상을 확립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여, 국가나 가문의 시조를 이름난 영웅과 결부시켰다. 신화는 그들 최대의 공동 담론이자 생활양식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처럼, 신화는 그리스인들의 일상적 삶 그 자체와 더불어 있었으므로, 신화를 이야기하지 않고 고대 그리스인을 논할 수 없을 것이다.    

크리스트교와 비교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한 절대적이며 전지전능한 유일한 존재이지만, 그리스 신화에는 수많은 신들이 존재한다. 이들 신들은 각자에게 부여된 영역의 권한을 가지며, 인간보다는 강하지만 자연을 초월할 만큼 절대적인 힘을 가진 것은 아니어서, 신들의 왕인 제우스도 때로 운명의 여신에 대해서 복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스의 신들은 대부분이 최고의 미남미녀이며, 불멸의 존재이면서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등, 인간 가족처럼 혈연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처럼 명예욕, 자존심, 시기, 미움, 분노, 애정, 질투 등의 감정이 들끓으며, 각기 독특한 기질과 개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크리스트교에서는 하나님은 하나님, 인간은 인간, 동물은 동물, 자연은 자연으로 뚜렷이 구별된다. 딱 한번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온 성육신 사건만이 예외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로마 시대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신화집인 <변신(Metamorphosis)>이라는 책제목에서도 보여주듯이, 그리스 신화 속 주인공들은 항상 변신한다. 신들이 황금 소나기로, 흰 황소로, 비둘기로, 백조로, 구름으로 변신하며, 인간은 나무로, 강으로, 수선화로, 암소로, 곰으로도 변한다. 즉 신과 인간과 동물과 자연이 서로 경계가 없이 ‘변신’한다. 그런가하면 그리스 신화에서는 변신하는 가운데서도 인간적 모습이 주를 이루는 데 비해서, 중국 등의 동양 신화는 자연 중심적인 성격이 강하며, 무서운 괴물들도 보다 많이 등장한다. 그리스의 신들은 각기 총애하는 인간이 있어서 그들을 도와주면서도, 가끔 인간들에게 그리 우호적이라고 볼 수 없는 데 비해서, 중국의 신들은 인간을 도와주고자 애쓰며 노력하는 점이 재미있는 특징이다. 중국에서도 반고나 여와의 창세 신화로부터 시작하여 다양하고 풍부한 신화가 있었지만, 차츰 <괴력난신은 이야기하지 말라>는 유가 등의 영향으로 그리스처럼 다양하게 담론화되거나 전승되지 못한 면이 있다. 

그리스 신화는 통일되고 일관성 있는 신화가 아니라, 수많은 버전의 다양한 스토리가 존재한다. 그리스 신들은 이름 말고 여러 별명이나 형용사로도 불렸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성격과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고대 그리스에 오리엔트처럼 통일된 전제국가가 나타나지 않고, 많은 폴리스 국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 신이나 영웅들은 각자 총애하는 나라가 있고, 또한 각 나라는 저마다의 수호신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신들과 국가는 일종의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관련 신들도 함께 싸운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유력한 신의 도움을 청하거나 공격하는 관행도 있었다. 필요할 따 마다 각자 자기 측에 유리하게 신화를 만들어 내거나 각색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그때마다 다양한 버전의 신화가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헤라클레스는 전체 그리스의 영웅이면서도, 헤라클레스의 혈통에서 스파르타 왕가가 나왔다고 믿어졌으므로 특히 스파르타의 수호 영웅으로 간주되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사이가 좋을 때에는 아테네에서 헤라클레스 숭배가 성행하였다. 하지만 서로 싸우게 되자, 아테네인들은 헤라클레스를 폄하하는 새로운 신화-헤라클레스가 미쳐서 자기 아이들을 잔인하게 죽였다든가, 영웅답지 못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든가 하는-를 각색하여 비극 무대에 올렸다. 그럴 때 마다 새로운 버전의 헤라클레스 신화가 또 하나 생기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그리스 신화는 책으로, 만화로, 영화로 각각 새롭게 각색되고 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그리스 신화 새롭게 쓰기에 한번 도전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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