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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S Culture _ 짧았던 만남 : 아디오스, 에스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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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6,753 조회 날짜 20-03-3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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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짧았던 만남 : 아디오스, 에스파냐!


박석태(인천문화재단, logos71@naver.com)



인생 친구들과의 행복한 동행


기껏 열흘 머물렀던 경험을 구구하게 늘어놓기에는 남사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스페인으로의 여행을 계획한다면, 수도원 한 군데쯤은 꼭 들리라고 권유하고 싶다. 스쳐 지나가는 것이 여행의 속성이라 하지만, 적어도 그곳에서는 구태여 시간을 내어 하룻밤쯤 묵어 갈 일이다. 그래야 비로소 수도원이라는 실제적 건물이 아닌, 그곳이 품고 있는 여러 겹의 층이 어렴풋이나마 느껴질 터이니.


지난 2월 나는 내 인생의 도반 열다섯 분과 함께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때는 바야흐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온 나라가 막 뒤숭숭해지려던 참이었다. 2월 중순만 해도 스페인은 청정지역에 속했고, 그때의 나는 돌아올 때쯤이면 모든 것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우리의 낙관적인 기대는 볕 좋았던 마드리드에서의 어느 날 ‘신천지’라는 낯선 존재를 뉴스로 접하면서 막연한 불안감으로 돌연 바뀌었다. 귀국 길, 캐리어 깊숙이 넣어두었던 마스크를 찾아 쓰는 모두의 눈빛은 지나온 여행의 충만함보다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로 흔들렸다. 


10박 12일로 진행된 우리의 스페인 여행의 목적은 책으로만 접해왔던 미술사 현장의 탐방에 있었다. 마드리드-세고비아-톨레도-빌바오-사라고사-바르셀로나로 이어지는 만만치 않은 여정의 대부분은 스페인의 미술과 건축을 공부하기 위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어려운 시기임에도 함께 길을 나선 분들은 인천에서 나와 함께 미술사 공부를 하는 수강생들이었고, 나는 그중에서 가장 나이 어린 선생이었다. 그분들과 벌써 네 번째 해외 현장답사를 진행하는 셈이었으므로 누구보다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미술사를 주제로 귀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공부 모임 ‘인천미담’은 올해로 10년째. 서로에 대한 깊은 인간적 신의와 배려가 바탕을 이루고 있기에 큰 문제 없이 긴 시간을 이어올 수 있었던 듯하다. 좋은 여행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함께 떠나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스페인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카타르 도하를 경유, 꼬박 열여덟 시간 만에 마드리드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첫날부터 분주히도 돌아다녔다.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과 산미구엘 시장의 일렁이는 인파와 티 없이 맑은 햇살을 즐기며 마음껏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행의 자유를 실감한 후 세고비아 투어로 두 번째 날을 열었다. 마드리드는 여행 초반 우리의 베이스캠프 격이어서 그곳에 숙소를 정해놓고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의 세고비아와 톨레도를 오가는 방식이었다. 



세고비아 대성당의 가족예배실 이야기


세고비아의 로마 수로교는 과연 놀라웠다. 로마 건축이 보여주는 아치와 열주 형식의 모범답안과도 같은 수로교가 있는 광장에는 아침부터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세고비아에서 수로교는 랜드마크의 역할을 한다. 모든 길은 그곳을 향한다. 그 길을 따라 한가롭게 걸음을 옮기다 보니 세고비아 대성당의 고아한 자태가 우리를 반긴다. 하지만 한껏 멋을 부린 파사드와 달리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내부로 들어가서는 텅 빈 채 철문까지 채워진 가족예배실들의 황량함과 마주해야 했다. 가족예배실은 르네상스 시기로부터 서양미술사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세 이후 유력해진 가문은 성당의 작은 예배 공간을 분양받을 수 있는 권리를 교회로부터 살 수 있었는데, 이는 교회에도 상당한 이익이 보장되는 사업이었다. 교회는 교회 나름대로 유력한 가문과의 연대를 통해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함은 물론, 교회건축을 아름답고 권위 있는 공간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교회 측은 심지어 이용권을 사들인 가문과 가족예배실의 장식과 운영을 영구적으로 책임지겠다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렇게 거금을 들여 예배실을 소유한 유력 가문이 그 공간을 그저 순진하게 종교적 행위를 위해서만 사용하지는 않았을 터. 가진 권세와 부를 과시하기 위해 가문들은 앞다투어 당대의 가장 잘 나가는 예술가를 초빙하여 그 공간의 장식을 맡겼다. 우리가 아는 수많은 예술품은 그런 과정에서 태어났고, 예술가의 지위도 자연스레 향상할 수 있었다. 찬란한 르네상스 미술은 그렇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예배실은 대단히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의 기호로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설적으로 한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높인 동인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성당마다 있어 쉽게 지나치기 쉬운 가족예배실은 결코 만만하게 볼 만한 그런 공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세고비아 대성당의 먼지 가득한 가족예배실은 쇠락해져만 가는 종교와 그의 토양이 되는 스페인의 경제적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 안타까움이 앞섰다. 지금의 이베리아반도를 ‘먼 땅’이라는 뜻의 ‘히스페니아(Hispania)’라 불렀던 고대 로마인들, 그 후예들의 종교적 제도를 닮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았던 스페인 사람들. 세고비아 대성당의 가족예배실은 어두운 표정으로 조용히 동양에서 온 여행자에게 은근한 말을 건네는 듯했다. 

반면 대성당의 고즈넉함과는 달리 세고비아의 거리는 뜻밖의 활기로 분주했다. 중세풍의 거리 곳곳은 생필품과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들로 호황이었고, 명동을 떠올리게 하는 인파로 가득한 축제 분위기였다. 절대 옛 기억에 기대어 근근이 살아가는 쇠락한 동네가 아니었다. 역시 동시대성이 그 이유였다. 지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세고비아의 상점들은 보여주고 있었다. 세고비아 대성당에 갇힌 채 침잠한 쾌쾌한 시간의 질감과는 전혀 다른 싱그러움이 풍긴다. 사실 유럽의 옛 시가지들은 놀랄 만큼 비슷하다. 좁은 골목, 비슷비슷한 모양새의 건물들, 울퉁불퉁한 도로, 그리고 쥐 죽은 듯한 고요함까지. 그런데 이곳은 조금 다르다. 오래됐지만 현재의 도시가 보여주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왜일까. 과거가 아닌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결국 미래로 이어지리라는 건강한 기대감이 파닥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연유로 세고비아의 옛 거리는 오늘도 분주하리라. 



스페인 사람들의 올리브 오일 사랑


여행이 길어지면서 스페인 사람들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먹는 이야기. 그들은 아침 식사를 아주 간단히 한다. 거친 질감의 식빵에 질 좋은 올리브 오일을 충분히 적시고 토마토를 갈아 넣은 걸 쓱쓱 발라 한두 조각 먹는다. 신선한 오렌지 주스와 향기로운 커피는 필수. 스페인 전역에서 나는 올리브가 전 세계 생산량 중 6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당연히 그들의 올리브 사랑은 유별나다. 등급도 무척 섬세하게 나뉘어 크게 등급별로 람판테(Lampante), 오디너리 버진(Ordinary Virgin), 버진(Virgin), 엑스트라 버진(Extra Virgin)이 있고, 엑스트라 버진도 그 안에서 30단계로 구분된다. 그 기준은 산도(신맛의 정도)고, 최상급 오일을 만드는 올리브는 일일이 손으로 딸 뿐만 아니라 따고 나서 24시간 안에 기름을 짜야 하는데, 그래야 신선함이 유지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 그들이 저녁식사 만큼은 여유를 부리기 일쑤라는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보통 8시 넘어서 저녁을 먹기 시작하는데, 늦으면 거의 10시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그것도 전채요리부터 메인요리, 그리고 후식까지 이어지는 성찬을 2시간 이상 즐긴다고. 그러다 보니 스페인 사람 중에는 우리가 볼 때 무척 뚱뚱해 보이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도 스페인이 대표적인 장수 국가 중 하나인 이유가 올리브를 많이 먹어서 그렇단다. 올리브 오일은 만성 성인병인 고혈압, 심혈관질환, 당뇨, 비만뿐 아니라 일부 암에도 효과가 있다는데, 그렇다면 내가 본 뚱뚱한 스페인 사람들은 어찌 이해해야 할까. 또 하나. 우리가 가는 식당을 스페인 사람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우리가 식사하는 시간과 그들의 시간이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우리는 저녁 6시만 되면 후다닥 저녁 먹고 숙소에 들어가서 쉬어야 하니 현지인들의 시간과 맞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또 하나 스페인에서 느낀 흥미로움은 식사를 즐기는 순서에 있었다. 보통 서구권이 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빵이나 스튜 혹은 샐러드 같은 전채요리를 천천히 먹으며 이야기를 즐긴다. 그리고 다 치운 다음 메인 요리를 먹는다. 그리고 역시 다 먹었음을 확인하고 어디선가 나타나 접시를 재빠르게 치운다. 그런 다음 디저트가 나오는 식이다. 그런데 우리 일행은 영락없는 한국 체질인지라 메인 요리로 나오는 고기를 샐러드 없이 먹기에 무척 힘들어했다. 메인 요리로 나오는 고기도 대부분 비계 하나 없이 퍽퍽한 살코기로만 이루어져 더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서 우리가 낸 묘안 하나. 식당 매니저에게 부탁해 전채로 나온 샐러드를 치우지 말고 메인 요리와 함께 먹을 수 있냐는 요청이었다. 현지의 습관에 맞지 않지만 어쩌랴. 다행히 매니저도 그 부탁을 들어주어 우리 일행은 그나마 조금 덜 퍽퍽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그러고 보면 우리의 식문화는 순차적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서양의 시간 지향적 식문화와 전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는 모든 음식을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한 상에 펼쳐놓고 먹기 때문에 공간 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순차적으로 검색하며 들어가는 구글과 첫 페이지에 모든 정보를 펼쳐 보여주는 다음과 같다고나 할까. 우리가 성질 급한 이유가 다 있었다. 



톨레도에서 점유를 생각하다


마드리드를 찾는 여행자는 대부분 고전미술의 보물창고인 프라도 미술관을 꼭 들리기 마련이다. 한데 그 길 대각선에 위치한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Thyssen-Bornemisza Museum. 줄여서 티센 미술관으로 부른다)은 잘 몰라서인지 향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여러 과정을 거쳐 사설미술관에서 국립미술관이 된 그곳은 정말이지 기품 있는 외관과 함께 놀랄 만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만일 없는 시간을 쪼개어 티센 미술관에 간다면 2층만 보고 와도 좋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틴토레토, 카날레토와 같은 이탈리아 미술사의 페이지를 화려하게 수놓은 작가들, 정교함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스 홀바인 등의 북구 미술가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가 거기 있다. 만약 그곳에 전시된 엘 그레코의 작품에 반했다면 이제 발길은 자연스럽게 톨레도로 향할 터. 스페인 태생이지만 톨레도를 사랑했던 엘 그레코, 그를 아끼고 사랑한 톨레도. 그 둘의 행복한 동행을 확인하는 일은 그대로 축복이다. 


톨레도는 들어서는 순간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고도임을 느끼게 해 줄 만큼 그 고색창연함이 남다르다. 높은 구릉 지대를 휘감아 흐르는 타호(Tajo)강의 거센 물결을 배경으로 천연의 요새임을 짐작하게 하는 뾰족한 건물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한데 톨레도의 한 골목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엉뚱하게도 어떤 집의 창과 문이었다. 창문은 모두 벽돌로 막혔고, 문은 철로 된 셔터로 굳게 잠겨 얼핏 보면 버려진 듯한 집.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은 집주인이 오랫동안 집을 비울 경우 집 없는 누구라도 열린 빈집 문으로 들어가 살 수 있는 법이 있다. 아무리 사회적 약자라도 최소한의 살 공간은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집주인 편에서 생각하면 날벼락 같은 일이 아닐까? 그래서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아예 창과 문을 모두 막아버린 집들도 간혹 있는데, 바로 그런 집이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몇 해 전에 베를린과 뉴욕에서 예술가들의 빈집 점거(occupation) 운동이 펼쳐졌다.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에 맞서는 예술적 시도로 읽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즉, 빈집에 들어가 예술 활동과 공동체운동을 벌이는 운동이 확산하였다는 이야기인데, 아마 우리나라에 그랬다가는 당장 주거침입이나 사유재산 침해 등의 명목으로 체포되어 철창신세를 질 것이 뻔하다. 아니, 그보다 먼저 주먹다짐이 오가겠지만. 예술가가 한 사회에서 어떤 존재로 인식되는지를 생각해볼 만한 이야깃거리가 아닐까.



영원한 디아스포라, 엘 그레코 


어쨌든 톨레도는 엘 그레코의 도시다. 모든 곳을 걸어서 볼 수 있는 그 작은 도시에 엘 그레코의 흔적을 간직한 곳만 해도 무려 톨레도 대성당, 산토 토메 성당, 엘 그레코 미술관 등 세 곳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엘 그레코는 고전미술의 전형성을 과감하게 부수어버린 과격함이 매력적인 화가로 이해할 만하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묘사하던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던지고 물감의 거친 질감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붓의 속도로 화면을 지배했다. 엘 그레코는 현대미술이 그토록 도달하고자 했던 물성(objecthood)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표현주의적 경향을 보였을 뿐 아니라, 길게 쭉쭉 뻗은 인체 표현과 자유로운 공간 설정으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마저 제시했다. 단 하나의 진보가 아닌 동시다발적 성취를 이룬 몇 안 되는 화가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톨레도는 그런 엘 그레코를 품은 도시로 기억되어야 한다. 


말이 나왔으니 엘 그레코 이야기를 조금 더 하기로 한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는 단체관람객이 들어가는 현대식 입구 말고 예전에 지어진 커다란 세 개의 문이 있다. 고야(Goya y Lucientes, Francisco José de, 1746~1828)의 문, 벨라스케스(Velázquez, 1599~1660)의 문, 무리요(Bartolomé Esteban Murillo, 1617년 ~ 1682)의 문이 그것이다. 재미난 사실은 스페인 사람들이 그들의 3대 화가를 바라보는 눈인데, 고야나 벨라스케스는 그렇다 치고 거기에 엘 그레코를 넣을 경우 무리요가 빠지고, 엘 그레코가 빠지면 무리요에게 차지가 돌아간다. 결국 그리스 출신이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톨레도에서 보낸 엘 그레코를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로 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문제로 남는데, 프라도 미술관은 엘 그레코보다는 무리요를 스페인의 3대 화가로 넣는 인식을 보여주는 듯했다. 작품의 인지도나 수준을 생각하면 당연히 엘 그레코에게 영예가 돌아가야겠지만, 세상의 인식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 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디아스포라는 서럽다. 


우리의 여정은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빌바오를 거쳐 북동부 아라곤 지방의 중심도시 사라고사에 잠시 머문 후 동쪽 카탈루냐의 중심도시 바르셀로나로 줄달음쳤다. 과연 바르셀로나는 모든 시간의 켜가 쌓인 도시답게 크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푸른 지중해처럼 표정 지었다. 바람은 비릿했지만 상큼했고, 고딕지구의 건물과 광장들은 소박하지만 장중했다. 



수도원에서 되돌아본 여정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는 몬세라트 수도원(Montserrat Monastery)이었다. '톱으로 잘린 산'이라는 뜻인 이 수도원은 바르셀로나 외곽의 기묘하게 생긴 산 정상에 위치한다. 오래전부터 마지막 일정으로 염두에 두었던 곳이었다. 세상과 떨어진 수도원에서의 명상으로 마무리하기, 괜찮은 선택이기를 바랐다.  


몬세라트 수도원에 오르는 길은 마치 천상으로 통하는 계단처럼 느껴졌다. 양의 창자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버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듬직하게 올랐다. 길옆은 천 길 낭떠러지. 희끄무레 저물던 해는 마침내 완전히 사라져 사위는 완전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무서웠던지 급기야 천천히 가달라는 요청까지 뒤에서 들려왔다. 넉살 좋은 버스기사는 한국어로 '사십 킬로, 사십 킬로!' 외친다. 제한속도 50킬로 길에서 40킬로로 가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뜻이었다. 다들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몬세라트 수도원 주차장에 도착한 일행의 입에서는 아, 하는 낮은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야말로 완전한 침묵이 지배하는 성스러운 공간이었다. 흑단 같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묵직하고 기묘한 바위, 그 밑에 자리 잡은 흰 수도원 건물, 졸린 듯 꾸벅꾸벅 빛을 토하는 가로등. 그 길을 따라 ‘검은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는 바실리카의 입구까지 돌아본 우리는 호텔에 체크인했다. 객실은 마치 묵상의 방처럼 검소하고 좁았으나 어떤 호화로운 방보다 편안했다. 작은 침대 옆 탁자에는 신약성경이 놓여 있었다. 아주 가끔은 즐거움보다 거룩함을 택하고 싶을 때가 있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그런 곳이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느끼는 신선한 공기와 투명한 햇살. 간밤 실루엣으로 보이던 바위와 능선들이 구체적인 형상으로 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성스럽다. 밤의 풍경과 낮의 그것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듯하지만, 결국 성스러움으로 수렴된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한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을 경험해야 할 일이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동은 조용하다. 밤과 낮은 고요히 교차했다.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나는 설악산의 공룡능선 같기도 하고, 지리산의 고사목지대 같기도 한 풍경을 무심히 보며 다녔다. 깎아지른 듯한 풍경을 감상하며 일행은 우리만의 방식으로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즐겼다. 누군가는 노래를 불렀다. 신께 향한 경이와 사람을 위한 애정을 담긴 목소리였다. 왠지 모를 울컥함이 발아래 운해 속으로 사라진다. 그런 기분은 전염이 되는지 같은 표정을 모두가 짓는다.


낯설기만 한 스페인이란 곳으로 향한 여행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과 연대를 맺게 해주었는지,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얼마나 자랐는지, 나는 이름 모를 봉우리에게 물었다. 그리고 머물다 떠나는 이 땅에서 진정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또 물었다. 케이블카로 낮은 땅으로 내려와 고개를 들어 다시 시야를 가득 채운 몬세라트를 보았다. 거대한 몸집과 갈라진 바위들, 그리고 사이사이 자리 잡은 사람의 집들이 보였다. 세상은 넓고도 넓어서 도무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가득한 곳. 나라는 존재는 그 속에서 어떤 이유로 이 땅에 발 딛고 사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이 시간. 다시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그러나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사는 그곳으로 우리는 다시 걸어 들어간다. 꿈결 같은 시간으로 가득 채워준 에스파냐여, 아디오스! 




박석태_서울에서 태어나 10살에 가족과 함께 인천으로 이주한 후 내내 그곳에서 살고 있다. 미술사 연구, 미술비평, 전시기획 활동을 꾸준히 하였다. 중앙대·인천대 등에서 강의를 했으며 지금은 인천여성가족재단에서 미술사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창작지원부 소속. 



캡션

1. 마요르 광장 동쪽의 산미구엘 시장.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타파스와 와인의 천국이다.(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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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요르 광장 전경. 마드리드의 대표적인 만남의 명소다.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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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세고비아 수로교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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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고비아 대성당의 외관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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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고비아 대성당 내부의 한 가족예배실의 모습 (이미지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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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참고)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내부의 브랑카치 예배당. 피렌체의 브랑카치 가문의 주문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가족예배실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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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세고비아 시가지. 전통과 현대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생기가 넘친다.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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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스페인의 전형적인 아침식사. 바케트에 올리브 오일을 듬뿍 뿌린 후 간 토마토를 발라 커피, 오렌지 주스와 함께 즐긴다. (이미지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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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리 일행의 점심 밥상. 전채 요리부터 후식까지 한꺼번에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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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티센 미술관 정원과 입구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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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높은 곳에서 바라본 톨레도 전경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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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톨레도 대성당 안의 성물실(Sacristia). 엘 그레코의 대표작 <엘 엑스폴리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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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엘 그레코, <엘 엑스폴리오>의 부분. ‘그리스도의 옷을 벗기다’는 뜻의 이 성화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 로마 병사가 예수의 옷을 벗기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톨레도에서의 엘 그레코의 첫 작품이자,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돌며 오랜 수업을 거쳐 만든 엘 그레코만의 양식이 처음으로 나타난 걸작이다.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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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프라도 미술관 3개 문 중의 하나인 벨라스케스의 문과 벨라스케스의 조각상(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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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저녁 늦게 도착한 몬세라트 수도원(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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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아침 무렵의 몬세라트 수도원(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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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바라본 풍경(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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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케이블카로 내려와 바라본 몬세라트 수도원(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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