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S Culture _ 2017년 프랑스 대선의 이변 – 마크롱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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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프랑스 대선의 이변 – 마크롱 대통령
유종숙(부산대학교)
2017년 정유년(丁酉年)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위치한 대한민국에서 장미 대선이 치러질 무렵, 같은 대륙의 서쪽 끝 대서양에 면한 프랑스에서도 대통령선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대통령 선거를 거의 동시에 치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한국에서 2016년 가을에 시작하여 2017년 봄에 이르기까지 사상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가 벌어짐에 따라, 새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선거 시기가 앞당겨진 특별한 상황에 의한 결과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를 보면, 1958년 10월 4일 제5공화국 헌법이 제정되고, 원래 간접선거 제도로 선출하던 대통령을 1962년 국민투표에 붙여 국민 직선제로 변경한 결과, 1965년부터 올해 2017년까지 총10회의 대통령 선거를 치렀고 이는 모두 봄철에 진행되었다. 현직 대통령의 잔여임기 최소 20일, 최대 35일 사이에서 선거일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정치노선과 득표율을 기록한 표로 만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위의 표에서 드러나는 대선 후보가 두 명인 이유는 프랑스의 선거제도에 기인한다. 프랑스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은 유효표의 절대다수 득표, 즉 50% 이상의 득표를 해야 당선이 확정된다. 여러 명의 후보가 난립할 경우 절대다수 득표는 매우 어려운 목표가 된다. 사실 총10회의 선거에서 일차 투표에서 50% 이상 득표를 한 후보는 없었다. 그래서 일차 투표 결과, 가장 많은 득표를 한 후보들끼리 제2차 결선투표를 14일 이후, 즉 2주 후에 치르는 결선투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하여 2017년 대선에서도 4월 23일 일차 투표 이후 5월 7일 결선 투표를 하였다. 이미 우리가 해외 소식을 통하여 주지하고 있는 바이지만, 이번 프랑스 대통령 선거는 여러모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상황으로 전개되었던 선거이다. 대선 선거의 과정은 예년과 같이 진행되었다. 제일차 투표일은 4월 23일 일요일, 후보자 총수는 11명이었다. 그리고 일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한 두 명이 제이차 투표 경선을 하여 위의 표가 보여주듯 전진 운동(Mouvement En Marche!)의 기수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의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다. 선거과정 자체는 예년과 다름 없이 진행되었으나, 올해 프랑스 대선을 통해 가장 많이 언급된 표현을 들자면 ‘처음으로(pour la première fois)’라는 표현이었다. 그만큼 변수가 많았다는 뜻이다. 프랑스의 권위있는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Le Monde diplomatique)에서 다룬 일련의 선거 관련 기사를 보면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여러 정치적 변혁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대선 1차투표 이전 간행 된 4월호 기사에서 세르쥬 알리미Serge Halimi는 이번 선거가 보여주는 완전히 새로운 성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Nous entrons dans une ère politique où bien des phrases qui commencent par « Ce serait la première fois que…» semblent annoncer la réalisation d’une éventualité jusqu’alors inconcevable. En ce printemps 2017, l’élection présidentielle française marque ainsi la première fois que l’on ne s’interroge plus sur la présence du Front national (FN) au second tour : on pose l’hypothèse, encore très improbable, de sa victoire. La première fois que nul ne défend le bilan d’un quinquennat alors même que deux anciens ministres du président sortant, MM. Benoît Hamon (Parti socialiste) et Emmanuel Macron (En marche!), participent au scrutin. La première fois aussi que les candidats du PS et de la droite, qui ont gouverné la France sans discontinuer depuis le début de la VeRépublique, pourraient être conjointement éliminés dès lepremier jour. (“Etcettefoisencore,lepiègeduvoteutile?”,Le Monde diplomatique, avril 2017)
이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 현실로 드러난 2017년 대선. 극우정당 국민전선(FN) 후보의 결선 진출이 확실하며, 심지어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그 후보의 승리 가능성까지 가정한다는 점, 현 정부에 몸담았던 두명의 전직 장관(브누아 아몽, 에마뉘엘 마크롱)이 대선에 참여하면서도 이 정부의 업적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점, 제5공화국 출범 이래 줄곧 프랑스를 통치해온 사회당과 보수우파 정당의 후보가 둘다 일차 투표를 통과하지 못하리라는 점 등이 알리미가 지적한 이번 대선의 새로운 현상이다. 그리고 재선에 출마할 수 있는 현 대통령(프랑수아 올랑드)이 출마포기를 선언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2017년 대선의 여러 변수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던 것은 약 3년전만 해도 대중의 인지도가 그다지 크지 않았던 에마뉘엘 마크롱의 약진일 것이다. 대선의 결과가 알려진 이 시점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의 승리의 원인을 분석해보자.
<제1차 tv 생방송 토론 참여 후보들. 좌로부터 프랑수아 피용(보수 우파),
에마뉘엘 마크롱(중도), 쟝뤽 멜랑숑(급진 좌파), 마린 르뻰(극우 국민전선), 브누아 아몽(사회당)>
제일차투표의 입후보자는 총 11명이었으나 그중 비중있는 후보는 다섯명으로 축약된다. 일차 대선후보 TV 생방송 토론에는 이 다섯명이 참여한다. 이 생방송이 나간 직후의 여론조사에서 각 후보의 예상득표율은 다음과 같이 집계되었다.
마린 르뻰과 에마뉘엘 마크롱이 비슷한 득표율로 선두를 차지하고, 2위 그룹에 보수정당의 프랑수아 피용•급진좌파 ‘불복종 프랑스France insoumise’ 정당 지도자 쟝뤽 멜랑숑이 자리잡고, 마지막 5위에 사회당 후보 브누아 아몽이 포진하였다. 현직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의 소속정당이 사회당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회당의 부진이 가장 눈에 띄는 결과였다.
이 예상은 그대로 적중하여, 4월 23일 제1차 투표 결과 마크롱 24.01%, 르뻰 21.3%를 각자 획득하며 두 사람은 결선투표에 진출한다. 투표일인 일요일 5월 7일의 나흘 전 수요일, 두 후보는 양자대결 토론을 했고 결과는 명확한 르뻰의 패배였다. 일간지 리베라씨옹의 인터넷 판 표지는 « 마린 르뻰이 에마뉘엘 마크롱에 대한 공격과 도발성 발언을 반복함으로서 진지한 주제에 대한 토론을 회피하였으며, 이에 맞선 마크롱은 합리적 태도를 견지하였다. »라는 주석을 달았다. 굵은 제목 « BASSE DU FRONT »은 이중적 의미로 해석이 되는데, 첫째, « 납작 이마 » 표현의 ‘좀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르뻰이 우둔하여 전날 토론성적이 기대 이하였음을 뜻하며, 둘째, « Front »이 그녀의 정당 ‘국민전선Front national’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면, 그 정당의 입장 약화를 의미한다. 결선투표 승리 후 에마뉘엘 마크롱은 프랑스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5월 14일 엘리제궁으로 입성한다. 2017년 12월이 되면 만40세가 되는 그는 179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30세의 나이로 국가원수직에 오른 이후로 가장 젊은 나이의 국가원수로 기록된다.
<Marine Le Pen a multiplié les attaques et les provocations,
évitant ainsi de débattre sur le fond face à Emmanuel Macron qui a joué la carte de la raison>
이제까지 프랑스의 정부 권력을 장악해왔던 기존 양대 정당을 거의 와해 시키며 혜성처럼 등장한 신진 정치인 에마뉘엘 마크롱, 그의 성공스토리는 다음 몇 개의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프랑스식 엘리트주의의 산물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5월호에서 마리 베닐드Marie Bénilde 기자는 마크롱을 프랑스식 엘리트주의의 산물ce pur produit de l’élitisme à la française로 묘사한다. 사실, 마크롱의 학력과 경력은 프랑스 사회가 배출할 수 있는 엘리트과정을 보여준다. 파리의 앙리4세 명문고등학교에서 그랑제꼴 준비반을 수료한 후, 파리 낭떼르 대학에서 철학 석사논문을 쓰고, 세계적 지명도를 가진 심리학자 뽈 리꾀르Paul Ricoeur의 휘하에서 학계 인사들과 인맥을 형성한다. 대학 수학과 동시에 파리정치학교(IEP, Institut des Études politiques)와 국립행정학교(ENA École nationale de l’administration)를 거친 후, 정통 엘리트 공무원 코스인 재무심사관inspecteur des finances 직을 맡는다.
이후 그는 승승장구하는 이력을 보여준다. 2016년 4월 자신의 정치운동 ‘전진En marche!’을 창설할 때까지, 그는 보수와 진보, 공기업과 민간기업을 아우르는 정•관•재계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두터운 인맥을 형성하고, 그 인맥을 통해 기업 인수 합병 전문 민간은행인 로스차일드Rothschild 은행에서 근무한 후, 사회당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의 엘리제궁에 입성, 비서실 차장을 거쳐 경제장관 직에 올라 ‘마크롱 법’이라 명명한 개선 노동법을 2015년 8월에 통과시키고, 자신의 정치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2016년 8월 장관직을 사임한다.
2) 언론, 기업이 지지하는 후보
마크롱 성공의 두 번째 요인으로는 언론의 적극적 지지를 들 수 있다. 그는 주요 언론의 편집진이 꿈에 그리던 정치지도자의 덕목을 갖추고 있다. 그의 대선 공약 내용, 즉 자유경제주의, 친유럽적, 친대서양적 입장, 세계주의 무역을 신봉하는 논리 등을 보면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프랑스 주요 언론(Monde, Libération, L’Obs, L’Express)의 편집주간들이 주장하는 바와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언론의 마크롱 편애를 잘 보여주는 예가 있다. 2017년 2월 21일 주간지 마리안Marianne의 보도에 의하면 프랑스의 전 방송매체가 지난 4개월 동안 마크롱의 선거운동 발언에 426분의 방송시간을 할애한 반면, 나머지 주요 후보 네 명을 합쳐서 할애한 방송시간은 이와 비슷한 총 450분이었다. 그만큼 언론의 집중 조명 혜택을 누렸다는 말이다.
업계의 호감도도 이에 못지 않게 높다. 프랑수아 올랑드의 엘리제궁에서 마크롱은 정부와 업계의 연결 창구 역할을 담당하며, 신자유주의 경제 이념을 신봉하는 기업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다. 다수의 기업인들이 마크롱의 의욕적 태도, 경쟁에 기반을 둔 자유경제 신념을 높이 사면서, 마치 한 눈에 뿅 가버린 사랑에 빠진 느낌coup de foudre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 tel M. Marc Simoncini, le fondateur de Meetic, qui parle de sa rencontre avec [Emmanuel Macron] comme d’une “histoire d’amour le lendemain d’un coup de foudre”. – Le Monde diplomatique, mai 2017, p. 9.
3) 협치 주의rassemblement
사회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는 마크롱은 정작 엘리제궁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사회당을 탈퇴한 상태였다. 대선 선거운동 기간에 그의 정치적 노선에 대한 질문에 그는 진보, 보수 이념대결을 벗어날 것을 촉구했다. 프랑스 사회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세계경제를 추구하며, 이 두 가지 목적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기존 정치적 대결구도를 벗어나 프랑스 사회에서 건전하게 사고하며 자신의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의식이 깨어있는 모든 활동하는 시민들과 함께 앞으로 전진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그의 입장을 일부 언론에서는 « 극중도 노선Extrême centre »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그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었지만 올랑드의 통치 노선과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음을 기회 있을 때마다 주지 시켰고, 대선 운동의 파트너로는 비중 있는 중도 노선 정치지도자 프랑스아 바에루François Bayrou와 손을 잡았다.
그의 전진 운동에 소속된 정치인의 인적 구성으로 판단하면, 진보 계통 인사가 70%이며 나머지는 중도우파에 속한다. 이런 인적 구성을 통해 마크롱은 프랑스를 미래지향적으로 전진시키기 위해서는 진보와 중도, 보수가 힘을 합쳐 협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4) 공정성 추구와 기존 정치인 물갈이renouvellement politique
대통령으로 선출된 마크롱은 정부를 구성하며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였다. 첫째, 모든 장관은 자신들의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둘째, 어떠한 사법적 제재도 받지 않아야 한다.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즉시 장관직을 사임한다. 셋째, 전진당은 모든 인적구성에서 남녀 동수 원칙을 지킨다. 이 원칙에 입각하여 현재 국무총리 에두아르 필립Édouard Philippe 정부도 장관의 수가 남녀 동수이며, 6월 11일 제1차 선거를 치른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전진당(대통령 당선 후 마크롱의 전진 운동은 LREM - La République En Marche의 약자 - 로 불리고 있다) 후보들은 철저하게 남녀 동수 원칙을 지키고 있다.
이 몇 가지 원칙은 마크롱이 생각하는 프랑스 사회를 이끌어갈 지도자의 자질에 대한 밑그림을 보여준다.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공정해야 하며, 정치인들의 부패•타락은 용인되지 않을 것이고, 이는 남녀 구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회의원 선거를 대비하여 후보들을 전국에 걸쳐서 모집할 때, 전진당은 전혀 정치경험이 없는, 그러나 자신이 속한 직업 사회에서 어느 정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인물들을 대거 발탁하였다. 이들 시민 후보들은 마크롱의 원칙에 기본적으로 찬성하며 그의 운동에 동참하고 싶어서 2016년부터 지원서를 보내온 자발적 참여자들이었다.
5) 개인적 매력, 카리스마
마크롱의 돌풍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그의 개인적 매력과 카리스마일 것이다. 그의 사생활, 특히 고교 시절 은사 관계로 만났던 프랑스어 선생님 브리지뜨 마크롱과 결혼에 골인하기까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열정적인 성격과 개인적 매력을 시사한다. 지금은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브리지뜨는 그녀의 젊은 남편이 «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었으며, 어떤 분야일지 짐작하지는 못했지만 어디서건 한몫을 하며 프랑스에 기여할 인물로 생각했다. »라고 피가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2015년 엘리제 공식만찬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브리지뜨 마크롱>
또한 그가 정•관•재계 뿐 아니라 학계, 언론계, 기업인,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주요 동인은 그의 개인적 매력에 기인할 것이다. 6월 11일 일요일, 제1차 국회의원 선거에서 총 577석 중 400석 이상의 전진당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결과는 강력한 너울성 파도가 몰아오는 해일에 비견되는 정치적 사건이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자신의 선거구에 출마한 전진당 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 마크롱 »이라는 이름을 보고 찍었다고들 한다. 이러니, 정치평론가들의 입에서 조금씩 이 젊은 대통령을 과거 드골, 미떼랑에 비유하거나 삐에르 멘데스-프랑스(un nouveau Pierre Mendès-France), 나아가 나폴레옹(Bonaparte post-moderne)에 견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이 놀라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