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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S Culture _ 중세의 향기를 머금은 붉은 도시, 시에나Si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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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96 조회 날짜 19-06-0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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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중세의 향기를 머금은 붉은 도시, 시에나Siena



김희정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시에나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지방에 위치한 이 도시는 고대 에트루리아인이 건설한 뒤 로마 시대 때 개설된 도시였으나, 현재 고대의 유적 보다는 놀라울 정도로 중세 시대의 특징과 가치가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로마로 향하는 도로망이 이 곳 시에나를 지나가면서 오래전부터 이 곳은 영토 정복길이나, 순례길 등 다양한 용도의 거점지가 되었다. 이 후 교황청과 관계되는 대금업의 핵심 중심지이자 양모 무역의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중세 상업을 대표하는 도시 국가로서 번영할 수 있었다. 교황을 지지하는 피렌체 같은 주변도시와 에스파냐 세력에 둘러싸여 끊임없이 경쟁을 벌였던 도시라고 하기에는 오늘날 중세의 서정적인 풍경과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매력적인 여행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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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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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포 광장> 


14세기 시에나의 르네상스는 꽃을 피웠는데, 이미 그 전부터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 축조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왔다. 도시의 주요 도로가 만나는 부채꼴 형태의 조개껍데기 모양을 한 캄포광장(Piazza del Campo)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훌륭하게 설계된 개방형 광장 중 하나다. 중세 도시의 성장과 도시 공동체 권력의 대두와 때를 같이하여 형성된 이 광장은 금융과 상업 활동의 중심지였다. 

12세기 말부터 광장과 주변 건축물의 외관은 고딕 양식아래 통일성을 유지하며 설계 되었다. 대표적인 건물로는 오늘날 시에나 시청사인 푸블리코 궁전(Palazzo Pubblico)과, 토메이(Tomei) 궁전과 부온시뇨레(Buonsignore) 궁전 등이 있다. 그 외 광장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만자탑 (Torre di Mangia)은 시에나의 멋진 시가지 전경을 제공하며, 광장 중앙에는 위치한 야코포 델라 퀘르치아(Jacopo della Quercia) 작품 《가이아의 분수》의 복제품이 있는데, 진품은 시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중세도시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골목길을 걷노라면 때론 시간을 거슬러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시간 여행에 동참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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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의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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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 대성당> 


중세 보물과 같은 거리를 따라 걷다보면 시에나의 가장 눈부신 걸작이라 여겨지는 대성당과 마주하게 된다. 흑백의 대리석으로 장식된 정면과 주변의 붉은 빛깔 건물과 더 대조되는 크림  색의 둥근 지붕을 갖춘 대성당은 이탈리아적인 모습으로 가장 잘 정돈된 고딕양식의 절정이라 평가받는다. 시에나대성당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화려하고 웅장한 정면의 파사드 아래로, 니콜라 피사노Nicola Pisano의 설계한 뒤 사후 아들 죠반니 피사노Giovanni Pisano가 조각한 로마네스트 양식의 작품이 새겨져 있다. 중세의 두 건축 양식을 동시에 품고 있는 대성당은 14세기 가장 거대한 교회 건설을 목표로 1196년 착공되었지만, 14세기 도시를 휩쓴 전염병과 16세기 토스카나 공국 피렌체의 침입으로 기존 계획인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착공되지 못한 채 미완성으로 남겨져 있다. 내부 기둥에도 검고 흰 줄무늬가 이어진다. 기둥에는 시에나의 17개 지역을 상징하는 깃발들이 걸려있다. 대리석 그림과 조각품, 바닥의 대리석 모자이크, 금빛 화려한 돔 장식 등으로 눈이 바쁘다. 내부 장식을 위해 니콜라 피사도가 설교단 조각을 만들었으며 베르니니가 조각한 성 제롬과 막달라 마리아의 조각상도 있다. 성당 내에는 작은 방이 있는데 대성당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보고 감탄하는 피콜로미니도서관(Biblioteca Piccolomuni)이다. 벽, 천장 할 것 없이 화려하고 악보와 조각품, 성서 등이 전시돼 있다.

푸른 하늘에 깨끗하게 빛나는 대리석의 이 성당은 가히 시에나의 얼굴이 되었다. 



시에나의 살아 있는 역사, 팔리오(Il Palio) 축제


 이태리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 도시인 시에나는, 톡특한 구조의 캄포 광장에서 매년 치러지는 행사 덕분에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바로 이 곳에서 시에나의 전통축제인 팔리오Palio가 열린다. 수백 년 동안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는 이탈리아 대표 축제이자, 오늘날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참여하는 열광의 도가니, 팔리오. 지방 자치제가 발달한 이탈리아에서 이 축제는 단순히 시에나라는 한 도시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행사라 할 수 있다. 

시에나 팔리오 축제는 시에나의 수호성인인 성모 마리아의 영광을 기리는 경마 경주로, 매년 7월 2일과 8월 16일에 두 차례 개최되고 대회 3일 전부터 축제가 시작된다. ‘시에나의 영혼은 콘트라다(Contrada : 일종의 시 구역을 부르는 명칭)의 다양함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열일곱 개 콘트라다는 각 자치구의 명예와 자부심을 걸고, 팔리오 축제를 통해 건전하게 경쟁하고 화합하며 시에나의 전통과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팔리오의 기원은 시에나의 역사에서 기인한다. 로마와 피렌체 사이에 위치한 시에나는 중세 때 독립 공화국이었는데, 수백 년 동안 경쟁관계에 놓여있던 피렌체와는 끊임없는 싸움을 벌여 왔다. 

 1186년 호엔슈타우펜 왕가의 프리드리히 1세(1122~1190)가 이 도시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자체적으로 마을의 영주를 뽑고 주화를 주조할 권한을 부여했다. 시에나의 도시 구조는 11세기 말부터 15세기 초까지 300년 이상 발전을 거듭했다. 이 기간 동안 다소간 대내외의 분쟁이 있었다. 분쟁의 사건들은 대체로 직접적으로 교황과 황제 사이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영토 확장에 관한 시에나 공화국의 정책은 경쟁국가인 황제 당원 피렌체에 대한 부러움에서 촉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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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 17개 콘트라다 상징물> 


 1260년 몬타페르티Monotaperti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번영을 맞았으나 결국 피렌체의 공격으로 16세기에 토스카나 공국으로 편입되고 말았다. 이 후 시에나는 1729년 여 군주 베아트리체(Beatrice Violante von Bayern)의 칙령으로 지금도 이어지는 17개의 콘트라다으로 나누어졌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 콘드라다는 단순히 지역만을 나눠놓은 것이 아니다. 각 콘드라다 별로 깃발, 헌법, 정부 그리고 자신의 콘드라다를 상징하는 동물이나 자연(용, 늑대, 거북이, 기린, 조개, 고슴도치, 독수리, 거위, 나비유충, 달팽이, 올빼미, 유니콘, 바다, 표범, 코뿔소, 탑, 산양)이 있어 도시 속의 또 다른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팔리오 축제는 분쟁을 피하고 화합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시작되었지만, 몬타페르티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여 과거 영화로웠던 시에나를 기린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안장 없는 말을 타고 벌이는 경마대회인 팔리오의 어원은 라틴어 '팔리움 Pallium'에서 비롯된 것으로, 경주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직사각형 모양의 깃발에서 파생되었다. 

 팔리오는 17개 콘트라다 간의 경주지만, 조개 모양의 시청 캄포 광장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10개의 콘트라다 뿐이다. 7개는 전년에 뛰지 못했던 콘트라다가 뛰게 되고, 나머지 세 팀은 이전에 참가했던 팀이 추첨을 통해 다시 뛰는 행운을 얻는다. 

팔리오 본 경기 이전 삼사일부터 시장의 감독 하에 경기에 참여할 말 10필이 제비뽑기를 통해 각 콘트라다에 배정된다. 기수 선발 역시 말을 선정하는 비슷한 시기에 몇 차례의 시험을 거쳐 이뤄진다. 

팔리오는 7월과 8월 두 번에 걸쳐 열리지만 시에나 인들에게는 일 년 동안의 기대와 희망이 고스란히 걸려있는 행사다. 팔리오가 열리기 몇 달 전부터 17개의 콘드라다가 주말마다 한 주씩 돌아가며 시가행진을 벌이면, 자신들의 깃발을 집집마다 내 건 주민들은 온통 축제분위기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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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오 경기 직전 퍼레이드> 


행사 당일에는 아침 10시경 각 구역의 성당에서 승리를 위한 미사가 집전되며, 오후에 접어들면서 도시 구역의 퍼레이드팀들이 도시 전체를 돌면서 퍼레이드를 시작오후 4시부터 경주에 참가하는 10개 콘트라다가 중세 기사 복장을 하고 깃발을 앞세운 채 골목골목을 누비며 화려한 퍼레이드를 펼친다. 팔리오 축제는 퍼레이드 행렬이 오후 5시경에 캄포광장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각 콘트라다의 기를 앞세운 퍼레이드 행렬이 캄포광장에 도착하면 오전부터 광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의 함성은 극에 달한다. 2시간 정도 광장을 돌며 깃발 던지기 시범 등 각종 행사를 벌이던 퍼레이드 행렬이 빠져 나가면 곧이어 경기가 시작된다. 10명의 기수가 출발선에 도착하면 캄포광장은 극도의 긴장감에 빠져들게 된다. 경기는 안장 없는 말을 타고 D자형의 캄포광장을 세 바퀴 도는 것으로 보통 90초정도면 끝이 난다. 

팔리오 축제에서 벌어지는 경주의 가장 큰 특징은 ‘최소한의 룰’이다. 기수와 경주마간의 몸싸움은 당연시 되고 심지어는 상대방의 말에다 채찍질을 가하는 것도 허용된다. 또 기수는 안장 없이 말에 기승하기 때문에 낙마는 흔히 있는 일이기에, 기수 없이 말만 결승선에 먼저 들어와도 우승을 인정한다. 

이런 공격성 때문에 경주가 끝난 후, 콘트라다 끼리 패싸움이 붙기도 하지만 경찰들은 굳이 말리려 들지 않는다. 경기가 끝난 후의 싸움 또한 팔리오의 오랜 전통이기 때문이다. 경주의 우승자는 비단으로 된 팔리오(기)를 수여 받고 영웅 대우를 받는다. 우승자에게는 엄청난 액수의 상금이 주어지는데 패배한 팀에게 우승자가 위로금을 준다. 

이렇게 우승한 콘드라다 시민들은 병에 포도주를 담아 마시며 시가행진을 한다. 

팔리오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그 경기 자체가 아니라 이탈리아 특유의 열정적인 민족성덕분이다. 몇 달 전부터 축제를 준비하는 모습과 축제가 열리면 서로를 응원하며 열광하는 모습들은 지금의 현대 사회에선 찾아보기 힘든 소중한 모습일 것이다. 뜨거운 태양아래 자신과 콘드라다의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기수들과 그런 그들을 응원하는 시민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민속축제와 가족축제가 결합된 진정한 이탈리아 축제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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