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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S City _ 지중해의 보석 같은 고대의 항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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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7,554 조회 날짜 19-06-0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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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보석 같은 고대의 항구도시 안탈리아(Antalya)


김율경(지중해지역원 차세대연구원)



2015년 6월 나는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 석사 과정 중 한 학기를 남겨 놓고 현지조사를 통해 약 한달 반 동안 나의 전공 지역에 다녀올 수 있게 됬다. 여기서 더 나아가 기존의 현지조사와는 달리 지난 해 지중해지역원과 MOU를 체결한  지중해 문명연구소(Akdeniz Uygarlıkları Araştırma Enstitüsü)에 가게 되었다. 해외경험이 부족한 나로선  독립심은 물론 견문을 넓히려는 마음과 함께 긍정적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중해 문명 연구소가 있는 지역은 터키에서도 지중해 최대의 휴양도시로 꼽히는 안탈리아에 위치해있다. 도시의 기원을 잠시 언급해보자면, 안탈리아는 세계랭킹 16위를 유지하고 있는 터키의 총 인구수에 비해 다소 적은 인구 약 95만명을 보유하고 있지만, 지중해 최대의 관광도시이자 리조트가 발달한 휴양도시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자체도 아름다운데다가 고대 문화유산도 풍부해 역사여행을 겸한 휴양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곳이다. 고대에는 팜필리아 (Pamphyila)라 불렸던 곳으로 기원전 2세기경 페르가몬 (Pergamon)의 왕 아탈로스 (Attalos) 2세가 이곳에 아탈레이아 (Attaleia)를 건설한 것이 도시의 기원이 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18년 잠시 이탈리아가 점령하기도 했으나 아타튀르크의 반격으로 1921년 터키 공화국으로 편입되었다. 안탈리아는 대도시지만 중세의 성채가 남아있는 마리나 항구와 옛 정취가 가득한 칼레이치 구시가지는 역사와 잘 조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페르게 (Perge), 아스펜도스 (Aspendos) 등 로마의 영광을 간직한 대 유적지도 인근에 있어 휴양 목적 외에도 안탈리아를 찾는 여행자들은 다양하다. 이렇듯 안탈리아는 지중해 제1의 관광지로 확고한 명성을 지키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제주도와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기는 안탈리아에서의 약 한달 조금 넘는 시간동안의 학교생활, 볼거리, 관광, 다양한 문화 및 생활 등에 대해서 언급해보고자 한다.  

 우선, 6월 18일 14시간의 비행 끝에 나는 수도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국제공항(İstanbul Atatürk Havalimanı)에 내렸다. 이곳에서, 나는 안탈리아 행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탄 뒤 한시간 뒤에 안탈리아 공항에 도착하였다. 안탈리아 공항은 소규모 공항이다. 친절한 연구소 관계자 분들께서 마중을 나와 있어서, 연구소가 위치한 아크데니즈 대학교 (Akdeniz Üniversitesi) 로 쉽게 향할 수 있었다. 공항과 안탈리아의 시내는 거리가 북동쪽으로 14km정도 떨어져 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갈 때는 600번 버스를 타고 1.75TL(1TL=한화 400~450원)을 지불하면 시내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놀랄 따름 이였다. 간접경험을 통해 외국의 캠퍼스 규모는 한국보다 크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여태껏 캠퍼스 중 최대 규모였다. 또한 지중해지역을 연구하는 나로선 지중해와 맞닿은 캠퍼스를 다닐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레였다. Akdeniz 대학교는 고대유적지와 같은 안탈리아의 특성에 따라 학문분야가 특화 된 듯 보였다. 연구소에 재학 중 인 대학원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결과 대다수가 고고학, 고대 그리스어, 고대 라틴어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로 경제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는 소통의 폭이 좁아 아쉬 었지만, 고고학전공자가 이 대학교에 와서 연구 및 현지조사를 병행 한다면 유용한 정보와 지식을 공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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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deniz대학교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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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캠퍼스 거리>


지중해문명연구소(Akdeniz Uygarlıkları Araştırma Enstitüsü),  www.mediterr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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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물>


지중해 문명연구소의 구성원의 숫자는 작지만,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연구소에 대한 의욕이 남다르다. 연구소는 역사의 분류에 따라 3개의 그룹의 연구팀(고대, 중세, 현대)으로 나뉜다. 한편 연구소에서는 1년에 4종류의 출판물을 제작하고 있다. 첫 번째로, Mediterranean Journal of Humanities는 1년에 두 번 6월 과 12월 출판된다. 이는 인류학 저널로서 고고학, 문학, 사회과학, 인문학 등의 각 분야별로 내용을 전반적으로 담고 있는 총저서이다. 두 번째로 연구소의 상징을 담은 CEDRUS는 1년에 한번 6월에 출판된다. CEDRUS안에는 고대, 중세, 현대의 시기가 모두 포함된 논문들이 실려있다. 마지막으로 Phasillis와 Libri 는 인터넷으로만 구독가능 하며 6월에 업로드 된다. Phasillis는 고대역사 위주로 구성되어있고,  Libri는 북리뷰, 칼럼, 비평문 등이 실려 있다. 모든 출판물은 6월에 발행되기 때문에 6월은 연구소의 죽음의 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6월 내내 연구소 구성원들과 함께 오전부터 다음날 새벽6시까지 연구소 생활을 함께했다. 비록 내가 연구소의 구성원은 아닐지라도 로마에 왔으면, 로마에 법에 따르라는 말처럼 일련의 적응과정으로 여기며 회의에도 참석하였다. 회의를 지켜본 결과, 역시 고고학을 전공의 특성상, 건축물, 유적에 담긴 의미와 중요성을 파악해내는 경향인 만큼 책이나, 출판물에 대한 로고를 선정할 때도 로고에 담긴 의미와 중요성을 신중하게 고민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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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문명 연구소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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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문명 연구소 도서관> 


모든 책과 출판물은 각각 2~3명의 심사위원이 선정되어 결과에 따라 논문들이 실리게 된다.  MJH는 영어논문도 개제되기 때문에, 영어논문교정 작업에 보탬이 되고자 참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연구소 출판물 표지에 기여자로서 한글이름 내 석자가 새겨지게 되었다. 비록 지중해지역원에서도 학술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이름이 실려지는 것은 처음이라서  기분은 특별했다. 모든 출판물들의 작업이 완료되면, 고생한 만큼 달콤한 휴식이 주어지며 약 3주정도 이상의 휴가를 얻게 된다. 보통 이 휴가 때는 연구를 위해 다른 지역이나 기관에 방문하고, 여가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따라서 이후 나는 필요한 논문자료 서치와 개인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도서관(Kütüphane)


Akdeniz 대학교의 도서관은 3층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1층은 입구를 따라 행정실, 보안실이 자리 잡고 있다. 2층은 다양한 여러 종류의 책들이 정리되어있고, 3층은 외국저널 중심으로 배치되어있다. 특히 각국의 신문사와 터키의 잡지회사 등이 주를 이루었다. 타대학교에서 발표되었던 학술대회 발표집들도 눈에 띄였다. 또한 3층에는 비디오와 CD를 감상할 수 있는 미디어실도 설치되어 있다. 각 층에는 복사실이 마련되어있다. 나는 학생증이 없는 관계로 필요한 자료를 부분복사 하였다. 학기가 끝난 직후라 많은 학생들이 있진 않았지만 각각 자신들의 학업을 성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6월 말부터 하계계절학기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7월초에 시험을 치룬 뒤 방중 일정이 마무리 된다. 그 이후부턴 학교에 학생들이 붐비는 것을 거의 볼 수 없었다. 


학교식당(Kafeterya)


캠퍼스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기에, 학교식당에 가기위해서는 충분히 걸어야한다. 구내식당에서 학생들은 학생증을 제시하고 식사를 할 수 있지만, 나는 한화로 약 2500원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하고 1일 식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한국의 학교 급식소와 마찬가지로 식판에 수저와 포크를 올리고 주방직원들이 담아준 음식을 받아서 앉고 싶은 자리로 이동 하면 된다. 주로 국(Çorba)에 해당하는 스프들과 주식인 빵은 고정메뉴이고 이 외에 메인요리, 샐러드 그리고 후식에 해당하는 타틀르(Tatlı)가 매일 바뀐다. 나는 학교식당에서 말로만 듣던 쾨프테(Köfte)를 맛볼 수 있었다. 쾨프테는 케밥(Kebab)과 더불어 터키음식의 양대 산맥으로 곱게 간 고기를 동글동글하게 뭉쳐서 굽는 미트볼이다. 지역에 따라 고기의 크기나 양념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고 한다. 케밥과 마찬가지로 샐러드나 밥을 곁들여 먹는다. 또한 식사 후에 후식을 꼭 챙겨먹는데  타틀르는 범접할 수 없는 맛과 상상을 초월하는 단맛이다. 타틀르는 날씨가 더운 터키의 남동부 지방에서 발달하여 터키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으며, 높은 온도로부터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한다. 타틀르 중 내 입맛을 사로 잡은것은 퀴네페(Künefe)였다. 퀴네페는 치즈가 들어간 파이로 부드럽고 쫀뜩한 식감을 즐길 수 있는데 중독성이 강하다. 퀴네페를 먹던 순간 다이어트 의지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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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의 점심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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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프테 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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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네페>  

 

구내식당 및 편의시설 


학교 캠퍼스 내부에는 학교식당 이외에 햄버거 프랜차이즈 버거킹, KFC 등도 보였고  케밥을 파는 식당과 음식점마다 테라스가 자리하고 있다. 주변부에는 핸드폰가게, 편의점, 마트, 사진관, 카페 등도 있다. 캠퍼스생활에 대한 소감을 간단하게 두 가지로 정리해보자면 도시의 특성상 고고학과 고대 역사 전공자에게 유익하다는 점, 학교 안에서 단과대학 구간마다 스쿨버스 운행을 하고 있다는 점, 각종 편의시설, 운동센터 및 운동경기장 등 다양한 구내시설들이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생활의 불편한 점은 느낄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부분은 언어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이였다. 내가 학교를 방문한 시기는 라마단 기간이라 모든 정기교육과정들이 끝났기 때문이다. 언어프로그램을 수강하기 위해서는 학기 과정 내에 와야 하는데, 보통 다섯 달 남짓 되는 한 학기동안 관광학부에서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매우 기초적인 과정부터 강의개설을 한다. 학교에는 많은 외국인 교수님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2학기는 9월에 학기가 시작되어 1월까지 진행된다. 또한 언어과정 수료 후 교수님들이 학생들의 전공에 따라 전문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학습방향을 지도해 준다고 하니 다음에 오게 된다면 꼭 이 언어프로그램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연구소 내부 사람들과 지속적인 소통, 연구소 활동을 통해 교내 어학과정 보다 단기간에 효율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일상회화에서 쓰는 말, 때로는 은어까지 파악할 수 있어서, 기초적인 수준을 가진 터키어 입문자라면, 굳이 수업을 듣지 않고도 터키인들과 많은 대화를 하는 것은 언어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이다. 

다음으로, 학교에서의 생활 이후 문화 활동으로 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지역학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종교, 역사, 문화 등 전 분야에서 지식을 골고루 갖춰야하기 때문이다. 먼저 안탈리아의 볼거리는 크게 시내와 외곽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고대유적 도시답게 고고학 박물관, 종교와 관련된 각종 자미(Cami)와 역사유적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고고학 박물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내의 중심지 칼레이치 입구(Kale içi)에 모여있다. 외곽지역에는 로마시대의 유적을 체험할 수 있는 페르게(Perge), 아스펜도스(Aspendos)와 쿠르순루 폭포(Kursunlu Waterfalls) 등 이 있다. 

안탈리아 박물관은 해변 옆에 위치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박물관에 가는 방법은 칼레 카프스(Kale kapısı)역이나 위츠 카플라르(Üç kapılar) 역에서 트램을 타고 종점인 뮈제(Müze) 역에 하차하면 길 건너에 위치해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안탈리아 인근 페르게와 아스펜도스에서 출토된 고대 유물을 중심으로 선사시대와 오스만제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다양한 전시품이 10여개의 관에 나뉘어 전시되어있다. 많은 전시물중 관람객의 발길을 가장 오래 잡아 끄는 것은 단연 로마시대의 유물. 4,5,6,7,8 번 관에 전시된 로마황제와 그리스신들의 석상, 화려하고 정교한 대리석관은 세계최대의 제국이었던 로마의 영광을 말해준다. 특히 페르게 극장홀 (The Hall of Perge Theatre)의 엄청난 신상과 부조는 마치 신화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다. 전시물이 다양하고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약 7000원에 해당하는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박물관의 2층에는 산타클로스로 유명한 성 니콜라스 (St.Nicolas)의 초상과 성모마리아와 성화도 전시되어 있다. 매표 카운터에서 오른 쪽으로 들어가 반시계 방향으로 관람하도록 되어있으며 천천히 둘러볼 시에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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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박물관 전시물> 


박물관에서 나오면 안탈리아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콘얄트(Konyaalt)해변이 펼쳐져있다. 콘얄트는 길이 약 2km에 달하는 긴 해변으로서 도시의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일반적인 모래 해변이 아닌 조약돌이 깔려있는 자갈 해변으로 수영과 선탠을 이미 즐기는 해수욕객들을 볼 수 있었다. 한편 안탈리아에서 전혀 동양인을 볼 수 없었으며, 지나갈 때 마다 현지인들의 뜨거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으로만 만나오던 지중해는 변하고, 흐르고, 멈추지 않는 것들 속의 '아름다움'을 붙잡아 잠시나마 눈앞에 펼쳐 보여주고 있었다. 콘얄트 해변을 따라서 쭉 걸어서 내려오면 시내 중심부에 우뚝 솟아있는 칼레이치 입구 시계탑이 멀리 보인다. 시계탑 옆에는 붉은 벽돌의 미나레가 보이는데, 안탈리아를 상징하는 높이 38m의 이블리 미나레(Yivli Minare)이다. 이블리는 '홈'이라는 뜻으로 미나레 외벽에 붉은 벽돌로 여덟 줄의 세로 홈이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13세기 룸 셀주크의 술탄이었던 알라딘 케이쿠 바드(Alaaddin Keykubad) 1세가 세웠다. 미나레의 북쪽 면에는 발코니 까지올라갈 수 있는 내부 계단이있는데 지금은 출입이 금지되어있다. 이블리 미나레는 시계탑과 함께 칼레이치의 이정표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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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얄트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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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시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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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 문> 


시계탑에서 트램길을 따라가다가 10분정도 걷다보면 하드리아누스 문(Hadrian Kapıs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드리아누스 문은 130년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us)가 안탈리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해 건립한문으로서 구시가지로 들어서는 메인게이트로 사용되었는데 지금까지도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입구에는 이오니아식 기둥이 받치고 있는 3개의 멋진 아치가 인상적이며 이것 때문에 위에서도 언급한 위츠 카플라르(3개의 문)이라고도 불린다. 아치위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가족의 석상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다. 문양 옆으로는 사각형의 탑이 있는데 왼쪽은 로마시대에 지어졌으며, 오른쪽은 13세기 셀주크의 술탄 알라딘 케이쿠바드(Alaaddin Keykubad)가 건립하였다. 하드리아누스 문에서 도보로 5분정도 떨어진 곳에는 특이한 형상의 미나레를 발견할 수 있다. 오랜 풍상의 흔적이 느껴지는 미나레였는데 2세기 사원으로 처음 건립된 뒤 비잔틴 시대에는 교회로 사용되다 셀주크 투르크 시대에 자미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1361년 다시 교회로 용도 변경된 후 15세기 오스만 제국 시대에 다시 자미로 바뀌는 등 풍상만큼이나 굴곡진 역사를 품고 있다. 1896년 까지 자미로 사용되다 큰 화재를 겪으며 미나레의 윗부분이 소실되어 잘렸다는 뜻의 케시크 미나레(Kesik Minare)가 되었다. 칼레이치 구역에 있어 오가며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칼레이치의 서쪽에는 안탈리아의 역사를 함께 이야기해주는 조그만 항구가 자리하고 있다. 2세기부터 안탈리아를 기점으로 지중해를 오가던 배들이 쉬어가던 일종의 정거장 역할을 해온 곳으로 지금은 콘얄트 해변쪽에 새로운 항구가 생겨 항구로서의 기능은 줄어들었다고 한다. 항구 뒤쪽으로 자리한 오래된 성벽과 파란 바다가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길을 지나가던 도중에 투어를 권하는 사설보트들이 줄지어있는 광경과 소리를 외치는 호객꾼들을 볼 수 있다. 또한 결혼식을 마친 뒤 보트에 탑승하는 어여쁜 새신부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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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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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알리오을루 공원>  

  

마지막으로 내가 발길을 향한 곳은 카라알리오을루 공원(Karaalioğlu Parkı) 이다. 칼레이치 구역 남쪽 끝 바닷가에 있는 공원으로 지중해와 맞은편의 우뚝 솟은 산을 조망하기에 좋다. 높이 14km의 탑은 2세기경 건립된 것으로 바다를 감시하던 망루였으며 한쪽 옆에는 대포도 놓여있다. 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무렵이라 야경은 어김없이 아름다웠다. 또한 공원에는 라마단 기간을 기념하는 각종 기념행사들이 개최되어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라마단 기간에는 저녁활동을 주로 하기 때문에 가족단위로 모두 거리에 나와서 아이들과 산책을 하고 공연을 관람하며, 야시장이 개장해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볼거리 만큼 중요한 것은 먹거리를 발굴하는 것이다. 칼레이치 주변에는 저렴한 되네르 케밥((Döner Kebab)을 파는 레스토랑 들이 많다. 되네르 케밥은 얇게 자른 고기를 포개어 수직으로 세워 돌려가며 굽는다. '회전하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되네르는 빵과 함께 야채를 곁들여 먹거나 샌드위치 형식인 '뒤림(dürüm)'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생선요리를 파는 가게도 몇 군데 있다. 그러나 단연 돋보이는 음식은 이스켄데르 케밥(Iskender Kebap)이다.  베스트 프렌드가 된 연구소친구들은 식사를 할 때 마다, 이스켄데르 케밥을 선택했으며, 나 역시 그 선택을 따랐다. 

양고기를 얇게 저며 소스를 발라 익힌 것으로 버터를 뿌려먹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접시의 오른편에 요구르트가 함께 나온다는 점이다. 여러 번의 식사를 터키인들과 함께한 결과 요구르트와 올리브는 단골메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이들의 빵이 주식인 만큼 양고기 밑에는 빵이 잘게 잘려 깔려져있다. 그렇게 내입맛에 꼭 맞는 케밥을 음미하던 중 특이한 터키의 식사문화를 경험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서빙 스타일이였는데, 음식을 다 먹고 포만감을 즐길 때까지 빈그릇을 치우지 않는 한국과는 달리 터키는 그릇을 비우자마자 치운다는 것, 심지어 숟가락을 내려놓자마자 치우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 음식을 천천히 먹는 사람은 주의해야한다. 이는 청결을 중시 여기는 터키인의 관습상 빈 그릇이 손님앞에 있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식사를 다한 뒤에는 차이(Çay)가 빠지지 않는다. 터키를 대표하는 음료수로 말갛게 우려낸 홍차이다. 터키 사람들에게는 차이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 일과가 시작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며, 식사 후 이외에도 낮에도 여러잔을 마신다. 터키인들과 하루종일 어울려 있다 보니, 하루에 무려 12잔을 마신적도 있었는데, 연신 화장실을 들락 날락거렸다.

또한  일부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성별과 연령,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즐기는 커피도 이들 문화의 일부분 이다, 터키의 커피는 크게 두 종류로 네스카흐베 (Neskahve)와 튀르크 카흐베 (Türk Kahve)가 있다. 튀르크 카흐베는 한국의 찻집에서 볼 수 있는 에스프레소 잔에 진하게 우려내 담아 마신다. 커피를 다 마신후에는 바닥에 남은 찌꺼끼를 이용해서 점을 치는데 커피잔을 뒤집어 놓고 잔 안쪽으로 흐르는 가루를 본 뒤 길흉을 점친다. 다행히도 나의 점의 결과는 매우 긍정적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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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DRUS>  


안탈리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학교와 도시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이 나무의 이름은 CEDRUS이며, 심지어 지중해 문명 연구소의 로고이기 때문에 상징성이 크다. 나무의 정확한 이름은 터키어로  (SEDİR AĞACI)라 불리우며,  CEDRUS는  라틴어에서 왔다고 하다. 항구도시의 안탈리아에서는 주로 배의 재료로 사용되어진다고 한다. ANTALYA외에도 ISPRTA, MERSIN, ADANA, LUBNAN, 동지중해 레반트지역에 주로 분포되어있으며, 내뿜는 산소가 풍부하다고 한다. 레바논의 국기에도 등장하는 이 나무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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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탈리아 풍경> 


안탈리아에서 기억에 남는 것 중 두 번 째는 바로 날씨이다. 안탈리아의 날씨는 다른 지역과 조금 차이가 있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와 6~7월초까지 기간 동안 날씨를 비교해보면, 앙카라는 그  외투를 걸치고 긴팔을 입고 다녀야 하지만 안탈리아 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한해  중 300일 이상 태양이 내리쬐고 한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아 유럽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휴양도시로 등극한 것은  안탈리아의 따뜻한 기후를 증명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푹푹 찌는 찜통 더위 속에서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다. 여름의 온도는 평균적으로 35도에 육박하며 습도가 높기 때문에 체감온도는 40도 이상이 넘는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은 도시의 낮이 길다는 점이다. 이른 새벽부터 해가 뜨기 시작하며 저녁 8시가 되어도 해가 완전히지지 않아 낮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터키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유난히 다른 지역에 비교적 낮이 길다고 한다. 또한 강한 바람이 불기 때문에 머리를 감은뒤 집밖에 나서면 10분 만에 머리가 마르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드라이어기도 필요 없고, 빨래 마를 걱정도 필요 없는 흥미로운 도시였다.                 

  마지막으로 지난 여름동안의 안탈리아의 생활을 비디오 테이프를 돌려보듯 떠올려 보면 그들의 환대와 따뜻한 정은 잊을 수 없는 기억들로 남아있다. 초면에도 ‘나의 친구다’ 라고 소개를 하면, 마치 가족처럼 아끼고 챙겨주며, 호의를 베푸는 모습에 감동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친구와 같이 식사하러 가던 도중 부모님을 길에서 마주쳤는데, 나를 데리고 가셔서 식사를 대접해 주셨고 집에 도착한 후 가족들은 마치 오래된 친척처럼 나를 대해주었다. 길거리에 지나갈 때에는 귀여운 유모차에 탄 아기들을 볼 수 있었는데, 아기들을 향해 웃고 지나가면, 아기의 부모님들은 나를 향해 방긋 웃어주었고, 터키인들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지나가다 아기들을 마주하게 되면 자기 자식인 양 아이를 예뻐해 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거리 곳곳에는 특별한 주인이 지정되어 있지 않은 강아지들과 큰개, 고양이 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는데, 나의 애완동물 인 것 마냥 직접 음식을 챙겨와 나눠주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너무 각박한 세상에서 자연과 멀리 살고, 좋은 감정들과 멀리 살고 있던 나에게 안탈리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우정, 배려, 친절함, 온정 그 모든 것은 나에게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마음을 ‘말랑’ 하게 해주었다. 비록 길지는 않은 시간이었지만 안탈리아 에서 한달 반 동안의 나의 생활은 두고두고 기억할  소중한 추억이 될 듯하다.

  끝으로  터키지역을 연구하고 있는 나는 가끔 공부를 하면서 지역에 대한 연구 동기에 의문을 던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안탈리아에서의 경험은 터키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만들었고 학문에 대한 동기부여로 이어졌다. 향후 석사과정 이후에도 얻은 경험과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지역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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