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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S Travel _ 아름다운 모순에 요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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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3,451 조회 날짜 19-06-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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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모순에 요르단


박진이(지중해지역원 차세대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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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모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모순은 그 자체로서 반가운 것은 아닐지도 모르나,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모순 속에서 마찰을 통해 발전하고 퇴보하는지도 모르겠다. 

요르단이 갖는 모순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2013년 2월 이후 2014년 2월까지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IMS)의 지원으로 현지조사를 다녀오게 되면서이다. 꼬박 1여년간 요르단에서 생활하면서 다양한 체험들을 하며 이전까지 몰랐던 다양한 요르단의 색깔과 모양들을 느끼고 알게 된 소중한 경험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 전까지 내가 요르단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는 중동에 있는 비산유국으로 물가가 비싸고 별 볼일 없으며 인근국가를 성지순례하기 위해 스쳐지나가는 작은 이슬람 국가 중 하나에 불과했다. 요르단에는 이슬람 문명보다 기독교와 로마 유적들이 더 많으므로, 아랍어와 문화를 전공하는 나는 그보다는 주변의 이집트, 시리아 등의 이슬람 국가들이 전통의 문화유산을 지금까지 간직한 의미 있는 국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요르단에는 오래된 이슬람 유적을 찾아보기 쉽지 않으며 일찍이 개방된 정치와 사회 시스템으로 인한 서구화가 이슬람 국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일찌감치 지워버렸다. 그래서 모순된 문화가 혼재하고 그 자체의 정체성이 없는 국가 같이 보였다. 

 그러나 길지 않은 시간이나마 1년간의 시간을 요르단에서 보내며 요르단의 많은 곳들을 여행하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현지인들의 이야기와 체험을 통해 요르단이 뿌리 없는 이슬람이라는 생각을 넘어 그들의 이런 모순적 모습이 오늘날 중동지역 분쟁 위기에서 완충 역할을 하며 유일한 평화의 땅으로 존재하고 있는 이유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르단은 이슬람을 국가의 근본으로 하고 있지만 이미 오랜 시간 타 종교와 문명의 유적을 곁에 두고 있어왔고 요르단 정치 시스템 역시 타 종교를 반대하거나 박해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중동 이슬람 국가 중에서 요르단만이 간직하고 있는 다양하고 관대한 모습들이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정치적, 종교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동 이슬람 국가들은 향후 국내정세 안정 이후의 시스템을 요르단의 모습에서 본보기삼아 이슬람 국가들이 겪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모순을 창의적 영역으로 확장 시키리라 기대해 보기도 하였다. 


 요르단은 국교가 이슬람으로 지정되어 있는 이슬람 국가이나 오랜 시간 동안 기독교의 유적지로써 많은 성지 순례객들이 이곳을 방문하며 성경책에서 언급되어 있는 많은 지명이 있는 땅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슬람을 국교로 하면서 기독교 유적을 팔아 관광수입을 올린다는 것은 왠지 모순 그 자체로 보였다. 현지 기독교 인에 따르면 요르단 정부는 기독교 인구를 매년 조사하지 못할 정도로 요르단 내 기독교가 급속히 증가 하고 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요르단에는 고대 기독교의 많은 도시들이 아직도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그것들은 무슬림의 옆집에 혹은 마을 한가운데 혹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기도 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요르단의 많은 도시들 중 대표적인 기독교 도시 두 곳을 소개하고 그곳의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1. 잔잔하고 너그러운 도시, 마다바


마다바는 출애굽하던 이스라엘이 정복한 도시로 성경에 메드바로 일컫어 진다. 우선 마다바에 대한 약간의 종교적 설명을 걸치자면 느보 산으로 가는 길에 모세가 거처간 땅으로 1500년경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단강을 건너가기 전에 아모리 족을 정복한 후 12지파의 하나인 르우벤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었던 곳으로 이른바 ‘왕의 대로’상에 위치하여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역사속의 숱한 역경을 거치며 파괴되었던 이 땅은 1880년 카락에서 아랍인 크리스찬들이 집단 이주해 와 정착함으로써 다시 재정비 되었다고 한다.

특히 유명세를 타고 있는 마다바의 모자이크 성당은 1879년 클레오파스 키킬리디스 (Cleopas Kikilidis)신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지도는 지금까지 발견된 로마-비잔틴 시대의 가장 오래된 지도로 성경에 언급되고 있는 고대 지명이 그대로 나타나 있고 섬세한 묘사를 바탕으로 고대 역사과 종교적 관점에서의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또한 19세기말 이 모자이크 지도를 바닥으로 해서 희랍 정교회에 속하는 성 조지 교회가 세워졌고 지금까지 세인트조지 성당은 요르단 관광에 있어 필수 코스가 되어 번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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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조지 성당 (마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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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지도 (세인트 조지 성당의 바닥)> 



마다바로 가기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지만 가장 간편한 방법은 버스 터미널에가서 마다바행 버스를 타는 것이다. 그러나 유학생들이 모여사는 요르단 대학교 근처에서 택시를 타면 거의 3.5jd (대략 6,000원 정도)정도의 차비가 나오게 되고, 버스를 탈 경우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이 단점이다. 그래서 내가 주로 이용한 방법은 요르단 대학교 정문 근처에 있는 치타버스를 타고 마다바까지 가는 것이었다. (회사이름이 치타가 아니라 버스 옆면에 치타가 그려져 있기 때문에 평의상 치타버스라고 칭했다) 단돈 0.8jd에 편하고 저렴하게 마다바까지 갈 수 있는 이 버스는 정말 최고의 혜택인 것 같다. 수도 암만의 요르단 대학교에서 버스로 40여분 걸리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마다바는 도시 입구부터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삭막하고 빽빽한 암만의 도시 풍경과는 달리 푸르르고 넉넉한 여유가 느껴지고 세인트 조지 성당을 가기전 지나치는 시장들과 거리들은 여기가 진정 암만에서 여구 한 시간도 안떨어진 가까운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직 별 개발이 안되어 있다. 소문에 의하면 암만 갑부들이 마다바에 별장을 지어 지낸다는데 말이지..... 어쨋거나 암만 근교의 지리적 위치와 푸르른 풍경으로 인해 마다바 자전거 트레킹 코스가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에게 인기가 있다. 그래서 가끔 넓을 도로를 줄지어 자전거 트래킹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마다바 만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마다바의 사람들은 참 친절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아오긴 하지만 잠시 세인트 조지 성당을 구경하곤 느보산으로 가버리기 때문에서인지 내가 슈퍼를 가든 기념품 가게를 가든 모두들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현지인들은 자기 동네의 유적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그곳이 있는 자신들의 요르단을 굉장히 자랑했다. 아무리 그래도 남의 종교 유적을 가지고 그렇게 장사를 하고 광고를 하는 것이 처음엔 좀 이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나라에 그러한 유적이 있는 것을 잘 활용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또한 마다바는 세인트조지 성당을 중심으로 번화가를 이루고 있는데 이 주변에는 아직 수백년된 건물들이 남아있어 주변을 지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절로 건물들 하나 돌 모양하나 하나마다 눈길이 가곤했다. 특히 세인트조지 성당 근처에는 우리나라의 차없는 도로같은 길이 있는데 그곳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수공예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가게들이 늘어져있다. 대부분이 모자이크 기념품이긴 하지만 물건을 사든 사지않든 누구에게나 친절한 현지인들 덕분에 절로 즐거워지는 거리이다. 그 길들을 지날 때면 요르단 어디서나 경험할 수 있는 호객행위와 “차이나~ 차이나~야반?? 야반??”이라는 말을 수십번도 더 듣게 되어 무척 짜증이 났던 어느날, 한국인이냐고 묻는 한 아저씨가 자신이 얼마전까지 한국어를 배웠다고하며 한국어 교재를 가지고와서 몇 줄 읽더니 “나 잘 읽었어”라고 물어보는 바람에 굉장히 마음이 즐거웠던적도 있었다. 이처럼 다른 관광지들과는 다르게 마다바는 그나마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이다.

요르단에 체류하는 동안 나는 특히 많은 도시들 중 마다바를 특히 좋아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이곳에 오면 번잡하고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암만의 복잡함과는 다른 여유와 넉넉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인근에 있는 식당과 숙박업소등은 이미 국내에도 몇 차례 소개된바 있는데 중세풍의 구조에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한데 어울어져 거리낌없이 교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술을 금기시하는 무슬림들의 율법상 식당에서 술을 판매한다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데, 적어도 마다바에서 만큼은 식당에서 자유롭게 술을 주문할 수도 있고 술을 곁들인 식사가 가능하다. 물론 술을 마신다고 해서 깜짝 놀라며 황당해하는 현지인도 없다. 마다바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에게는 그것은 그냥 그들과는 다른 종교들 가진 사람들의 모습중 하나일 뿐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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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마다바의 풍경>


 

2. 푸르름이 살아있는 맑은 도시, 살트


 처음 살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살트의 영어표기 때문이었다. 요르단 대학교 근처에 살트를 향하는 방향 표지판이 있는데 거기에 큰 글씨로 ‘salt'써져있는데 첨에 그것을 보고 ’왠 소금?‘이라는 생각을 먼저 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이 살트라는 곳에 놀러갔다 왔다는 소리를 듣고 그곳이 암만에서 아주 가까운, 다시 말해 요르단 대학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근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트는 암만에서 차로 20여분정도 가면 위치한 작은 도시로 발카주에 속하며 성서상의 야셀(Yaser)이다. 야셀은 메드바, 헤스본과 함께 모압 왕국의 영지였으나 모세 당대에는 아모리 족의 시혼 왕이 차지하고 있던 것을 모세가 정복하여 요르단 산악지대에서는 이곳 야셀에서 마하나임까지를 요르단 계곡 평야에서는 모압과의 경계인 베트 님라에서 갈릴리 호수 끝까지를 갓 지파에게 기업으로 배정했던 것이다. 이곳 살트 즉 야셀은 구약 시대에는 한 지파의 수장의 무덤이 있고 요단 강 동편의 지배가문이 살았던 행정 센터였으며, 신약 시대에 와서는 헤롯 안디바가 베레아 지방의 행정수도로 삼고 오스만 터키 시대에서도 트랜스 요르단의 첫째 도시의 지위를 누렸던 유서 깊은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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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살트 시내의 모습



살트는 특히 암만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으로 살트 사람들은 암만으로 출퇴근을 많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암만과 살트를 오고가는 많은 세레비스들이 많이 있고 꽤 늦은 저녁시간까지 세레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다(암만에 있는 대부분의 세레비스들은 저녁 8시정도면 운행을 중단하지만 살트는 밤 9시 40분정도까지 운행을 계속한다). 이 때문에 언제든지 손쉽게  이곳을 방문 할 수 있다. 


 나 역시 살트에 사는 친구덕분에 이 도시를 몇 차례 방문했는데 내 친구는 살트 초입에 있는 완지신에 산다고 했다. 처음 세레비스를 타고 완지신을 찾아가던 날, 세레비스 컨트롤은 낯선 외국인인 나에게 “너 어디로 가니?”라고 물었고 난 당당하게 “완지신”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표정은 갸우뚱 이었고 결국 난 살트 시내의 세레비스 종점까지 가야했다. 친구에게 재차확인해서 다시 “난 완지신으로 가야해”라고 다시 말했더니 컨트롤은 “여긴 그런 동네가 없어”라고 말했고 한 참 운전기사와 뭔가를 주고받더니 “너 혹시 무한디신으로 가?”라고 되물었다. 순간 난 내 친구가 배운 생존 아랍어에 대해 아차 하는 생각을 했고 “거기가 맞는거 같아”라고 말하자 컨트롤과 운전기사는 막 웃으면서 괜찮다고 그까지 나를 대려다 주었다. 그 후로 나의 친구는 완자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지만 살트 주민의 친절함을 잊지 못하게 됐다. 살트 시내 역시암만과는 사뭇다른 모습으로 골목골목 오래된 도시의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언뜻봐도 암만의 새 건물들과는 다른 시간의 역사가 묻어나고 좁은 골목과 굽은 길들에서는 이 도시가 예전에는 굉장히 화려하고 권위로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내가 궁금했던 것은 이 도시는 고대 기독교의 중심지로 아직도 많은 기독교적 색채가 남아 있는데 살트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였다. 한번은 친구의 기관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서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살트 주민들은 누가 어떤 종교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들은 캐롤송을 좋아하고 크리스마스날에는 트리축제에 참석하며 크리스찬들이 그들의 공휴일에 쉬는것에 대해 인정한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것은 이슬람을 반대하거나 타 종교의 비전도가 전제에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이슬람의 종교적 폭력성과는 굉장히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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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트에 위치한 현지교회>

 

 지난 2013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암만 시내의 신도시인 뉴압달리 거리에는 초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졌고 뉴압달리 거리는 크리스마스 조명장식과 화려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것은 요르단 왕비의 주관아래 펼쳐진 이벤트였고 이 행사는 몇 주 동안이나 계속되어 눈길을 끌었다. 현지인들과 외국인들은 요르단에서 신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즐겼으며 요르단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제품들이 선보여졌고 이 거리를 비롯한 대형 쇼핑몰에는 몇층을 아우르는 커다란 크리스마트 트리가 홀을 장식하였다. 무슬림들 역시 크리스마스에 “메리크리스마스”라는 인사에 대해 거부감 없이 받아드리고 패스트푸드 점에서는 크리스마스 특별 셋트가 출시되기도 했다.  

 매스컴에서 보도하는 모습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크리스찬 홀리데이를 인정하고 자신들과는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박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가 무슬림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일부 과격한 모습들은 단지 매스컴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됐고 이슬람국가 역시 많은 인식의 변화와 관대함이 자리 잡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2013년 겨울, 크리스마스에 설치된 뉴압달리 거리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단편적으로 요르단의 개방적 태도를 대변해주는 모습이자 이슬람 이외의 타종교에 대한 화합과 평화에 대한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매스컵을 통해 익혀온 기존의 이슬람에 대한 이미지에 비해볼 때 이는, 종교적 자유가 없는 무슬림 국가의  모순적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더욱이 팔레스타인 출신의 무슬림인 요르단 왕비가 주도했다는 점 또한 굉장히 눈여겨 볼만한 것이다. 이러한 요르단의 모습은 종교와 문화를 초월해 협력과 상생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적 현상을 넘어 이슬람 세계의 발전적 모습을 보여준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지금 요르단의 이런 모순적인 모습은 그들이 타 종교를 인정한다는 것을 뛰어넘어 적극적인 태도로 국제사회를 향해 요르단이 보여주고 있는 아름다운 모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행보야 말로 향후 이슬람 세계가 만들어나갈 새로운 공존의 작은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보며, 타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야 말로 모순적이지 않은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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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압달리의 크리스마스 축제와 기독교 성지 헤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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