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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S Culture _ 시칠리아의 찬란한 보석, 아그리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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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중해지역원 조회 4,029 조회 날짜 19-05-3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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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의 찬란한 보석, 아그리젠토


 최혜영 (전남대학교 사학과)



지중해의 수많은 섬들 가운데 가장 큰 섬은 어디일까? 바로 시칠리아 섬이다. 그런데 시칠리아 섬의 원래 이름은 트리나크리아였다.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에 의하면, 시칠리아의 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는데, 처음에는 트리나크리아(Τρινακρία), 그 다음으로 시카니아라 불리다가, 마지막으로 시켈리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시카니아와 시켈리아는 모두 시칠리아로 이주해온 민족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지만, 트리나크리아는 민족의 명칭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시칠리아 섬의 지형에서 나온 것이다. 트리나크리아, 그리스단어 triskeles 는 treis  akra  (라틴어 triquetra)로서  세 개의 봉우리라는 뜻이다. 즉 시칠리아 섬 북동쪽, 즉 메시나 쪽의 펠로로스 봉우리, 남쪽 시라쿠사의 파세로 봉우리, 서쪽 마르살라의 릴리베오 봉우리를 일컫는다. 트리나크리아의 모습은 메두사의 머리에 세계의 다리들이 교차하여 붙어있는 형상으로, 오늘날도 시칠리아 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트리나크리아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시칠리아 섬의 영원한 상징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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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시칠리아 타오르미나 길거리 장식으로 있는 예쁜 트리나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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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뾰족한 모습인 트리나크리아 모양의 시칠리아 섬. 남쪽 바닷가의 아그리젠토와 겔라, 

동남쪽 바닷가의 시라쿠사, 북서쪽 바닷가의 팔레르모(판오르무스), 

이탈리아와 가장 가까운 북동쪽의 메시나 등이 있고, 동부 중심에 아이트나 화산이 있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바다를 동서남북 사방으로 접하고 있는 아름다운 시칠리아 섬은  문명 교류의 바다인 지중해 안에서도 문명 교류와 갈등이 가장 치열하게 이루어졌던 곳이었으며, 역사적으로 보나 자연환경으로 보나 지중해 최고의 방문지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고대로부터 주요 곡물 생산지로서 비옥한 토지를 가졌으면서도, 아이트나 화산 폭발을 위험을 항상 안고 있던 위험한 지역이기도 한 시칠리아 섬!  ‘태양의 도시’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던 시칠리아 섬 곳곳은 각기의 아름답고 흥미로운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고대 시칠리아의 최강대국이었던 시라쿠사라든가, 중세 이후로 시칠리아의 수도 역할을 한 팔레르모, 카타니아, 하데스로 가는 입구로 고대인들이 생각하였던 아이트나 화산, 그 옆의 고급 휴양지 타오르미나 등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남쪽 바닷가의 아그리젠토가 가장 좋았다. 핀다로스도 나와 비슷하게 느꼈던지, 아그리젠토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 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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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말 아그리젠토 화폐> 


아그리젠토는 기원전 582-580년 경 겔라 인에 의하여 세워진 나라였다. 고대 시칠리아 섬 주민은 특히 매우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베리아 계통, 이탈리아 계통, 소아시아 계통, 페니키아계통, 그리스 계통 등 여러 인종과 민족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서 살고 있었다. 그리스 계통 가운데서도 도리스 계통과 이오니아 계통 등 여러 계통의 인종이 서로 교류하고 싸우고 있었는데, 그 중 겔라는 지중해의 장미라 일컬어지며, 지금도 그리스인들의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로도스섬의 주민과  크레타 섬 주민에 의하여 세워진 곳이었다. 겔라의 이주민이 세운 아그리젠토는 고대에는 아크라가스라 불렸는데, 이 평원을 흐르던 아크라가스 강의 이름을 딴 것이다. 오늘날 인구가 오만명을 웃도는데 비해서, 고전기 인구가 이십 만에 달하였다고 하니 고대의 번영을 짐작할 수 있다. 


아그리젠토는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그리스의 자연철학자인 엠페도클레스-만물의 기원(아르케)를 물, 불, 흙, 공기로 보았던-의 고향이기도 하고(그래서 아그리젠토의 가장 좋은 항구 이름도 엠페도클레스 항이다), 노벨상 문학상을 수상한 루이지 피란델로의 고향으로서도 유명하다. 또한 산타 마리아(Santa  Maria dei Greci) 성당 등 중세나 바로크 시대의 건축물도 세워져 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아그리젠토를 찾는 이유는 바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유적지인 이른바 ‘신전의 계곡(valley of the temples) 때문일 것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이 신전들은 <신전의 계곡>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계곡이라기보다는 고대의 아크로폴리스가 있었던 남쪽 산등성이를 따라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20여개가 넘는 신전이 있었다고 추정되는데, 그 가운데서 헤라, 콩코르디아, 올림피오스 제우스, 헤라클레스 신전 등이 특히 유명하다.  그 가운데서 가장 먼저 세워진 신전은 기원전 520년경 세워진 헤라클레스 신전으로, 현재 38개중 8개의 기둥만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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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세워진 헤라클레스 신전, 동그란 주두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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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 신전 기둥을 장식하던 거인상조> 



기원전 5세기경 지중해 해상강국 카르타고에 승리한 기념으로 세워진 제우스 신전은 길이 113미터, 폭 56미터, 높이 20 미터의 어마어마한 규모로, 현재는 비록 주춧돌 정도가 남아있지만, 고대에 세워진 가장 큰 신전 중의 하나였다. 제우스 신전 기둥을 받치는 거인 조각상의 크기가 약 7.5미터 정도였다고 하니, 전에 신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겠다. 탈라몬이라 불리는 이 거인 조각상은 두 팔로 지붕을 받치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아그리젠토 박물관에 그 진품이 잘 전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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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이 잘 된 콩코르디아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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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에 만발한 파파루나> 


하지만 현재까지 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으면서 가장 압도적인 풍모를 자랑하는 신전은 아무래도 페리프테랄 및 6주식(株式) 형태의 헤라 라키니아 신전과 콩코르디아 신전이라 할 것이다. 콩코르디아 신전은 길이 약 42m, 폭 19m, 높이 6.7m의 총 34개 기둥들이 직사각형의 신전을 받치고 있다. 한국의 한 유명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시칠리아를 탐방한 여행가는 “시칠리아 도시들 간의 치열한 관광객 유치 경쟁은 결국 압도적인 한 장의 이미지를 가진 아그리젠토의 승리로 귀결될 것 같은데, 이 한 장의 이미지는 바로 콩코르디아 신전이다” 말하기도 하였다. 화합이라는 뜻을 가진 콩코르디아 신전은 파르테논 이래  현전하는 가장 아름다운 신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동쪽 끝에 자리잡은 헤라 여신의 신전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아마도  현재 34개중 25개의 기둥이 잘 남아있는 헤라 신전이 가장 마음에 남은 이유는 그 자체의 신비함과 아름다움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이곳 신전에 앉아서 멀리 보이는 코발트 블루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신전 주변 곳곳은 올리브 나무, 아몬드 나무, 아칸소스 잎, 선인장, 파파루나를 비롯한 이름모를 많은 꽃 등이 아름답게 우거져서, 이곳의 황토빛 흙과,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와 너무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외에도 예전에는 카스토르와 폴룩스 신전으로 알려진 신전도 아름답고, 특히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등의 여신 숭배가 두드러져 보이는 곳들도 있었다. 아그리젠토 뿐 아니라, 시칠리아 섬 곳곳에서는 페르세포네를 비롯한 여신 숭배가 두드려져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제우스가 페르세포네에게 시칠리아 섬을 그녀의 결혼 선물로 주었다는 신화도 있다. 



   그런데 2011년 봄, 내가 방문하였을 당시는 폴란드 출신 조각가 Igor Mitoraj(이고르 미토라이)의 조각 전시회가 <신전의 계곡>에서 진행 중에 있었으므로 더욱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내가 보았던 광경이나 사진은 이제 누구도 다시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한번 흐른 강물에는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듯이, 그 날의 그 조각은 다시는 그 구도에서 볼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나, 전시회가 끝난 뒤에 이곳에 헌정된 조각품 이카로스는 아직도 남아있다. 이카로스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날개가 녹는 것도 모르고 태양에 가까이 나르다가 죽었다는 바로 그 이카로스를 기념한 조각인데, 날개가 달린채 추락하여 넘어져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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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코르디아 신전 앞의 이카루스 조각. 고대의 아그리젠토는 오늘날 이카루스 처럼 추락하였지만, 

유적의 잔해 그대로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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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르 미토라이의 조각 오른쪽 너머로 콩코르디아 신전이 살짝 보인다> 


  사실 아그리젠토, 즉 원래 아크라가스라 불렸던 이 나라도 이카로스의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 유명한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 때만 하더라도 아크라가스는 아테네와 시라쿠사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번영할 수 있었으나, 기원전 406년경 카르타고에 의하여 파괴되면서부터는 시들해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카르타고와 로마 사이의 전쟁인 1차 포에니 전쟁 당시는 로마에 의하여 일시 함락되어 기원전 262년 아그리젠토의 주민 25,000명 이상이 노예로 팔리는 참상을 맞이하였다. 나아가서 2차 포에니 전쟁 당시인 기원전 210년에는 완전히 로마에 함락되어 이때부터 이름도 아크라가스에서 아그리젠툼으로 바뀌게 된다. 그 뒤로도 동고트 왕국, 비잔틴 제국, 이슬람세력, 노르만족 등등의 지배를 받았으며, 20세기에 와서 제 2차 세계 대전 때 엄청난 폭격이 가해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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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르 미토라이의 조각 왼쪽 너머로 헤라클레스 신전이 보인다> 


   내가 유학하였던 그리스의 바닷가를 늘 동경해오던 나는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동일한 마음이 생겼다. 어느 시골 한적한 곳, 특히 아그리젠토 근처에 오두막을 마련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지중해의 에메랄드 빛 바다와 코발트 블루 하늘 아래서 나의 전공인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것이다. 시칠리아에 가보시길, 그리고 꼭 아그리젠토의 헤라 신전터에서 저 멀리 푸른 지중해를 바라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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