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과 접경, 지중해 3대 물목을 가다] <8> 에필로그·좌담-지중해에서 지혜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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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속에 묻힌 문명 충돌과 공존의 열쇠

하나의 권위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졌다. 그 질서를 토대로 또 하나의 권력이 생성됐고, 또 다른 문화가 잉태됐다. 무너질 때는 거침없었고 세워질 때는 지난했다. 지중해가 그랬다. 태평양이나 대서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바다였지만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3대 대륙을 동시에 포섭하는 유일한 바다로서 거칠고도 거대한 역사와 신화를 무수히 빚어냈다. 문화기획 시리즈 '통섭과 접경, 지중해 3대 물목을 가다'는 그런 지중해의 대립과 융화, 갈등과 소통, 전쟁과 평화를 그렸다. 유럽 속의 이슬람이라는 그라나다와 코르도바(스페인), 지중해의 천연요새로 굳건한 지브롤터(영국), 아프리카와 유럽의 대륙 관문인 탕헤르와 페스(모로코), 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의 북단 도시 포트 사이드(이집트), 커피의 원조인 터키 커피(이스탄불) 등이 그런 기획의 산물이었다. 이제 지중해지역원 교수들의 견문을 나눈 '지중해에서 지혜를 얻다'란 좌담으로 마무리한다. 좌담에는 부산외국어대 지중해지역원 교수들이 참석했다. 사회 겸 진행은 지중해지역원의 윤용수 HK교수가 맡았다.

지중해지역원 좌담회 참석자

윤용수 HK교수(아랍언어학)
최자영 HK교수(그리스역사)
황의갑 HK연구교수(이슬람학)
최재훈 HK연구교수(국제관계학,중동정치)
신성윤 HK연구교수(히브리성서학)
임주인 HK연구교수(스페인 문학)
장니나 HK연구교수(프랑스어학)
김희정 HK연구교수(이탈리아 문학)



△윤용수 HK교수=기획 시리즈 '통섭과 접경, 지중해의 3대 물목을 가다'로 지중해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이해가 깊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지중해를 연구하는 지중해지역원으로서도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모두 7차례의 시리즈를 통해 지중해의 이런저런 모습이 부각됐는데, 그 중 "대륙에 구분이 어디 있겠는가. 아시아니, 아프리카니, 유럽이니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너와 나, 우리와 너희 등으로 구분짓기한 산물이었다. 공존은 그런 분리와 분단의 '못된' 정치 개념에서 벗어날 때 완성된다"는 대목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연구하고자 하는 지중해도 바로 구분의 경계를 넘어선, 화합과 상생의 역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자영 HK교수=그렇습니다. 그리스 문화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는 지중해에서의 위치가 각별합니다. 알다시피 지중해 중심에 놓여 있고, 그런 지정학적 위치를 적극 활용해 유럽 각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나 소아시아, 유럽 어디를 여행하더라도 그리스 문명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로마문명도 그리스를 배제하고 이야기하기가 힘듭니다. 라틴어부터 그 어원을 그리스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는 지금도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합니다. 이번 기획에서 그리스가 빠진 것은 그래서 참 아쉬운 대목입니다.

△김희정 HK연구교수=지중해를 언급할 때 로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중해를 가장 넓게 통치한 것이 바로 로마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지중해를 아예 '우리의 바다'라고 불렀습니다. 그럼에도 로마는 주변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수용하는 관대함을 보였습니다. 그리스를 속주로 만든 뒤에도 그리스 문명의 이런 저런 부분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정복자가 아니라 관리자로서의 모습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런 관리 능력이 로마 제국을 오래 동안 번성하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황의갑 HK연구교수=그리스·로마의 영향이 컸지만 이슬람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중해를 다양한 세력권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그 중 종교적으로 나눌 때 유럽의 기독교에 대척된 지점에 늘 이슬람이 위치했습니다. 이슬람은 그리스·로마보다 훨씬 이후에 출현했지만 지중해 각 지역에 미친 영향이 대단했습니다. 특히 비잔티움 제국 이후 지중해를 장악한 것은 이슬람 세력이었습니다. 당시 이슬람은 암흑기를 보내던 중세 유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진화됐습니다. 조금 다른 사례입니다만, 그리스에 앞서 지중해 문화를 주도한 것도 역시 이슬람이 발흥한 중동과 나일강 주변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이었죠.

△임주인 HK연구교수=지중해는 서로 다른 종교와 민족이 부딪히면서 다문화가 자연스럽게 파종됐습니다. 그 중에서 다문화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 스페인입니다. 스페인은 말 그대로 지중해의 거의 모든 족속으로부터 지배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로 인한 저항도 컸습니다. 유럽 관광에서 유난히 스페인이 더 인기가 있는 이유도 그런 침략과 저항에 따른 유적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이 서로 교류하고 다양한 민족이 여러 갈래로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다문화 사회로 발전했다는 얘깁니다. 최근 아시아의 여러 민족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국내에 많이 들어오면서 우리도 다문화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데, 스페인의 다문화 경험을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민족과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국가라는 한 울타리 속에서 어떻게 타협하는지를 배워야 한다는 얘깁니다. 참고로 스페인은 개방과 폐쇄의 역사를 모두 경험했는데, 묘하게도 개방사회를 지향했을 때 세계적인 강국으로 발돋움한 반면에 그 반대였을 때는 불운한 역사를 겪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신성윤 HK연구교수=이스라엘도 지중해 국가이고 스페인 못지 않게 역사적 굴곡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유대 역사에서 지중해는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강과 산, 그 중에서도 산의 비중이 컸습니다. 서쪽에 위치한 지중해는 기껏해야 죄를 털어내는 바다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동쪽을 산 자의 땅, 서쪽을 죽은 자의 땅으로 여기는 중동 풍습 때문이 아닌가 짐작했다.) 그러나 이런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수 많은 현안들이 사실은 2천년 전에 그 작은 지중해라는 공간 속에서 수 차례 반복됐다는 겁니다. 선·후진국의 빈부 차,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도 마찬가집니다. 그런 점에서 지중해는 현재의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지혜의 바다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장니나 HK연구교수=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유는 그리스 문화가 꽃 피운 흔적이 유별납니다. 로마 제국이 가장 넓은 속주를 만든 것도 갈리아라고 하는 프랑스 땅이었습니다. 이처럼 프랑스는 고대부터 지중해와 관련이 깊었습니다. 그럼에도 프랑스가 주체적으로 지중해에 영향을 미치고 반응을 보인 것은 근·현대라고 해야 할 겁니다. 특히 18세기 이후 프랑스는 지중해 아래쪽을 마그레브(북아프리카를 지칭)라고 하여 수많은 식민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그런 과거사에 대한 성찰이 20세기 들어 조심스럽게 일어났고 북아프리카 이민자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프랑스는 지금도 지중해와 이슬람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세계 최고의 지중해 연구소로 이름이 높은 MMSH도 현재 프랑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 43개국으로 결성된 지중해연합도 프랑스가 주도했습니다.

△최재훈 HK연구교수=하지만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지중해 연구가 특정 국가나 지역 연구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지중해 연구의 진정한 가치는 지역 통합적이고 통시적인 연구에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는 한때 찬란한 문명의 창달에도 불구하고 지금 빚더미 국가로 전락해 유럽연합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또 그런 그리스의 과거와 현재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에게 왜 의미가 있는 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지중해 연구는 이런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득력있게 답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중해 연구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타산지석이 가능하지 않다면, 단지 지중해에 대한 지식만을 쌓는 것이라면 수많은 자료를 뒤지고 현장을 확인하는 따위의 연구는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윤용수 HK교수=그렇습니다. 지중해는 단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작은 바다가 아닙니다. 아시아나 남미처럼 비슷한 성질로 묶여진 지역 연구에서 얻지 못하는 역사적 경험과 지혜를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문명 충돌과 상생의 문화도 그런 연구의 키워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개별 지역이 아닌 지중해라는 울타리를 주제로 한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그다지 오랜 역사를 갖지 못합니다. 지중해 연구는 1990년대 이후 세계 각 국이 앞다퉈 진행하고 있는 학문 갈래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지중해 연구는 상당히 빠른 편입니다. 만약 아프리카의 천연자원에 관심이 있다면, 그 관심은 아프리카 경제나 지역 연구가 아니라 지중해 연구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말씀을 감히 드립니다. 지중해는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의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든 용광로 같은 곳이고 그 대륙과 국가, 민족이 서로 소통하고 갈등한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끝-

 정리=백현충기자 choong@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후원 : 지중해 지역원 부산외국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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